[Opinion]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구할 수 있을까? [음악]

절망의 끝에서 붙잡은 음악
글 입력 2019.09.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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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구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음악일까? 지친 몸과 마음에 달콤한 잠을 선물하는 음악일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일까. 아니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다른 형태의 음악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마음을 구할 수 있는 음악이라면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기 자신의 마음을 바꾼 한 음악가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 있다. BBC 라디오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고 클래식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스티븐 존슨은 세 번의 조울증 판정을 받고, 한때 자살까지 생각한 자신의 경험을 밝힌다. 그때 그의 생명줄은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었다. 그가 쓴 책의 제목은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원제 How Shostakovich Changed My Mi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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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스타코비치



한 사람의 정신을 바꾸고 책까지 쓰게 만든 쇼스타코비치. 그는 과연 누구일까?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의 작곡가로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75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하기까지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실내악, 발레, 오페라, 영화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쇼스타코비치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소련이라는 사회적 맥락과 어우러져 펼쳐진 드라마틱한 삶에 있다.


대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봉쇄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헌정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나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군의 맥베스 부인>을 공격한 일간지 <프라우다>의 '음악 대신 혼돈' 기사,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의 관계는 수많은 책과 영상 매체 등을 통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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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와인스타인의 다큐멘터리
<Shostakovich against Stalin - The War Symphonies>와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



2.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과연 어떤 음악이길래 한 사람의 정신을 바꿨다고까지 말하는 걸까?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에 언급되는 그의 수많은 작품 중 두 곡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교향곡 7번>이다. 다장조의 위풍당당한 선율로 시작되는 <교향곡 7번>은 음악 자체만 들으면 다소 밝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1악장 초반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잠시 잦아들면 저 뒤편에서 작은북이 연주하는 경쾌한 리듬이 천천히 다가온다. 계속되는 작은북의 리듬에 맞추어 관악기들이 하나 둘 번갈아 어떤 선율을 연주한다. 반복되는 멜로디는 경쾌하며 다소 중독적이기까지 하다.


관악기의 노래가 한차례 지나가면 이제는 현악기 군이 등장해 같은 선율을 연주한다.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반복되는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모두 동원될 때까지 확장된다. 계속 같은 리듬을 연주하던 작은북의 소리 역시 점점 더 커진다. 여기에 금관의 연주가 더해지면 초반의 경쾌하던 느낌은 다소 위압적으로 변한다. 반복되는 작은북의 리듬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도대체 뭘까.


여기서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가자. 두 번째 곡은 <현악사중주 8번>이다. 이 곡의 시작은 첼로가 담담히 연주하는  네개의 음(레-미b-도-시)이다. 첼로의 연주가 끝나면 이 선율은 천천히 다른 악기로 확장된다. 중간중간 다른 선율이 등장하지만 음악은 매번 레-미b-도-시, 이 네 음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네 개의 악기가 느리고 비통하게, 때때로 격렬하게 만들어내는 선율은 듣는 이의 마음을 말 그대로 '긁는다'. 그 중심에는 레-미b-도-시 네 음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3. 음악 너머의 것



확실히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다. 이는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연주하는 공연장에 가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백 명에 가까운 연주자를 총동원하는 그의 교향곡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력한 효과를 낳으며 곡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귀가 아프기까지 하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도 실제 공연장에서 그의 교향곡 연주를 들어보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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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위에서 언급한 <교향곡 7번>과 <현악사중주 8번>의 연주 효과 역시 대단하다. <교향곡 7번>은 '두 주먹을 꼭 쥐고 하늘을 향해 치켜든다.'라는 설명이 어울릴 정도로 단언적인 환희로 끝난다. <현악사중주 8번>은 반대로 하염없이 침잠하는 선율로 막을 내린다. 물론 음악을 감상할 때에는 여기서 멈추어도 된다. 음악을 들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뒷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찾아본다면 또 하나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왜 쇼스타코비치가 이런 음악을 썼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향곡 7번> 1악장의 반복되던 구절에는 '침략 주제'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에 쓰였다. 나치에 의해 철저히 봉쇄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헌정된 곡이 바로 <교향곡 7번>이다. 이 도시는 쇼스타코비치의 고향이기도 하다.


1941년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시작되고, 독일군이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레닌그라드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7번>을 작곡한다. 그는 다행히 봉쇄 초반 정부의 지원으로 레닌그라드를 탈출해 곡을 완성하지만, 레닌그라드 봉쇄는 그 뒤로 2년 넘게 이어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완성한 <교향곡 7번>을 레닌그라드에 헌정한다. 이 곡은 1942년 3월 쇼스타코비치가 피난 간 쿠이비셰프(현 사마라)에서 초연되고, 이어서 1942년 8월 9일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된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이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라다. 물론, 실제로 이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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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초연 과정을 다룬
M.T.앤더슨의 책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현악사중주 8번>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곡을 집요하게 지배하던 주제, 레-미b-도-시는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을 독일식 철자법으로 쓰면 Dmitri Schostakowitsch이다. 여기서 이니셜인 D.Sch는 독일식 음이름으로 레-미b-도-시에 해당한다. 따라서 <현악사중주 8번>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던 이 선율은 바로 쇼스타코비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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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많은 곡에 들어있는
DSCH(레-미b-도-시) 모티프


왜 그는 이토록 집요하게 자신의 이름을 되풀이했을까? 여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숨어있다. 쇼스타코비치가 <현악사중주 8번>을 작곡한 1960년 여름, 그는 공산당 가입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소위 강제로 떠밀린 것으로 가입을 결정한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친구의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 모습을 보인다. 이후 그는 영화 음악 작업을 위해 드레스덴으로 향하고, 여기서 쓴 곡이 바로 <현악사중주 8번>이다. 그는 <현악사중주 8번>을 쓴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내가 죽고 나면 아무도 나를 추모하는 곡을 쓰지 않을 거니까. 내가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네. 표지에는 이 사중주를 쓴 작곡가의 영전에 바침이라는 헌사를 박아도 좋겠지"

- 1960년 7월 19일 이작 글리크만에게 보낸 편지,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140쪽



절망의 나락에서 <현악사중주 8번>을 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새 곡을 연주해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하도 짐짓 비극연하는 사중주가 돼놔서 그걸 쓰는 동안 맥주 반 다스는 마시고 누웠을 만한 오줌 분량을 눈물로 다 쏟았지 뭔가. 집에 돌아와 두어 번 연주를 해보기도 했는데 항상 눈물바람이었어. 물론 이 곡에 비극적인 요소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완벽하게 통일된 형식이 안겨준 경이로움이 유발한 반응이었다고 봐야겠지."

-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140-141쪽



편지 말미에는 약간의 빛이 보인다. 살아있는 작곡가 자신을 추모하기 위해 쓴 <현악사중주 8번>은 어쩌면 쇼스타코비치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고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절망의 나락에 빠진 쇼스타코비치를 구해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음악이었다.




4.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한 사람의 정신을 바꾸었는가?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교묘하게 엮는다. 이 과정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내밀하고 고독한 행위이다.'라는 생각을 무너뜨린다.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교향곡 7번>을 연주했던 클라리네티스트 빅토르 코즐로프,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자 작곡가인 보리스 티셴코, 역시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본인까지. 이 책에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던 수많은 동시대인이 등장한다. 그들의 경험은 저자의 경험으로까지 이어진다.


2006년 제작한 BBC 라디오 다큐멘터리 <쇼스타코비치 - 빛 속으로의 여행>에서 저자 스티븐 존슨은 세 번의 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던 자신의 경험을 내보인다. 자신의 내밀한 트라우마를 공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는 전무후무한 공감을 받는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통해 받은 위안은 그 자신만의 경험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고 위안을 받았던 '나'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때의 '나'는 저자 스티븐 존슨이며,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는 현대인이자,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본인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각자의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간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하나의 경험을 한다. 이 경험에 청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오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의 음악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절반은 상상 속에 있고 절반은 실재하는 공동체'에 대해 말한다.



"길고 긴 고립의 한가운데에 빠져 있던 나에게 쇼스타코비치는 내가 완전히 혼자가 아님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누군가도 알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195쪽



*


절망의 나락에서 홀로 고통받는 당신에게 어떤 음악이 손을 내민다. 단 한 가닥의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것이 필요하던 당신은 정신없이 그 손을 잡는다. 시간이 지나고 당신은 절망의 나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긴 당신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것, 절망의 끝에 서있던 자신의 귀에 들린 그 음악을 나만 듣고 있던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마치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다가온 그 음악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이상하고, 무섭고, 슬프고, 씁쓸하며,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위안을 받은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 연대는 단순한 안도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저자 스티븐 존슨은 음악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 내게 준 것이 무엇인지 대라면 나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 하나만 제시하겠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고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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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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