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당신은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 연극 킬롤로지 [공연]

미디어와 범죄, 그리고 우리
글 입력 2019.09.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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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킬롤로지 티저 포스터.jpg
 

미디어와 범죄는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을까. 미디어가 범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범죄 예방을 명목 삼아 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을까.

꽤나 해묵은 고민이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큰 자극을 원하고, 미디어는 그들의 욕망을 해갈해주기 시작했다. 재미있으면 그만, 스릴 넘치면 그만. 이렇게 하나 둘 외면해 온 윤리는 화려한 미디어 뒤에 산처럼 쌓여 그림자를 드리웠다. 실체 없는 폭력성이 점차 모방범죄라는 구체적 형상을 띠기 시작한 지금, 미디어는 그 책임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미디어를 생산하는 우리는 무죄를 주장할 수 있을까.


킬롤로지 공연사진1.jpg
 

연극 ‘킬롤로지’는 미디어와 폭력에 주목한다. 현대 사회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버린 폭력성의 근원과 미디어의 부채질에 관하여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 과연 당신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에 대하여.

개인의 문제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하여 바라보는 연극 ‘킬롤로지’는 세계적으로 흥행한 온라인 게임 ‘Killology’에서 사용된 방법으로 살해된 소년 ‘데이비’,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를 결심한 ‘알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살인을 위한 게임 ‘Killology’를 개발했던 게임 개발자 ‘폴’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속 잔혹 범죄와 미디어의 연관성, 그리고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비춘다. 결국 ‘킬롤로지’가 묻고 싶은 질문은 ‘폭력은 어째서, 그리고 왜 발생하는가’이다.


[데이비]

"절대 돌아갈 수 없어요.
그래서 이게 꿈이란 걸 알아요."

늘 혼자다. 소풍도, 댄스파티에도 갈 수 없고, 집으로 친구를 데려오지도 못한다. 9살 생일 이후 한번도 아빠를 본적이 없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지친 엄마의 작은 등을 바라본다. 엄마는 거리에 사이코패스 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날도 그랬다. 같은 반 에디 랜달이 집 앞 공원에서 날 불러 세웠다. 그게 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폴]

"생일 선물 고마워요.
사랑해요. 당신의 아들이."

아빠는 끊임없이 기대하고 늘 실망하셨죠. 그 기대는 부담과 두려움이 됐고, 결국 분노가 됐습니다. 스무 살 생일, 나의 노력으로 처음 갖게 된 자랑스러운 아파트에 가족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날도 아빠는 실망하셨죠. 나는 게임 속에서 아빠를 두드려 팼습니다. 그게 이 성공의 시작입니다.


[알란]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하지 못한 걸 해 줄 사람.
제대로 복수해 줄 사람."

아들의 아홉 번째 생일날,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하고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들을 만난 곳은 아들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법정에서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든 놈들을 만났는데,  아직도 히죽거리며 웃고 있더라구요. 다시는 내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이 복수의 시작입니다.


킬롤로지 공연사진2.jpg
 

연극 ‘킬롤로지’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서로 다른 상처와 배경을 가진 세 주인공들이 오로지 독백으로 무대를 채우며 서사를 만들어나간다. 마치 1인극처럼 텐션과 흥미를 팽팽히 유지하며 관객들의 상상을 유도한다.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계를 맺는 대신 관객들이 직접 공백을 채워가며 집중력 있게 공연을 따라오도록 만든다. 방대한 독백으로 무대가 채워지는 동안 연극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건 덤.

*

미디어의 홍수, 4차 산업혁명...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고, 그 단어들이 지칭하는 우리 사회의 성격 역시 다양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단순한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고,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쉽게 이분할 수도 없다. 미디어가 나쁘다, 좋다를 떠나 문제와 해결책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임과 영화, 드라마를 비롯한 매체들에게 지상 최고의 윤리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최고로 윤리적인’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윤리의 기준과 폭력의 근원 역시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덜 폭력적인’, ‘더 윤리적인’이라는 수식어 정도는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미디어의 폭력성과 윤리성으로 세계 모든 범죄의 근본을 뿌리 뽑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꽤 커다란 영향은 미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 미디어와 폭력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전문필진.jpg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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