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국인을 관두는 법: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영화]

글 입력 2019.08.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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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는 한국 구애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원래는 젠더X국가 카테고리의 영화들까지 보고 싶어 문화초대를 신청한 것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당일 볼 수 있었던 영화가 “한국인을 관두는 법”뿐이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과, 그 내용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낭랑한 나레이션이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이 작품은, 근 몇 십 년간 한국을 지배해 온 흐름을 신랄하게 묘사해서 자극적인 시각적 요소가 없는데도 집중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안건형 감독의 작품으로, 원래는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60분짜리 전시 영상을 극장용으로 재편집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작품을 이끄는 주제는 “기회주의”인데, 일상에서 많이 쓰지는 않지만 낯설지 않은 용어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신념과 약속을 저버리고 태도를 바꾸는 행태. 이를 밥 먹듯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기회주의자이다. 영화는 중간 중간 기회주의자들이 그 우상에 대해 쓴 기록을 삽입하여 일제 강점기부터 군부 독재 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존재해 온 수많은 그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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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태극기 집회와 군중들의 모습, 한국의 위인 동상들을 비추고, “출세의 소리”라는, 기회주의자들의 강령을 낭독하는 음성이 그 화면에 어우러진다. 그 내용이 꽤 도발적이어서 때로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실제로 한국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관행들을 “한국 사회의 빼어난 장점”이라 칭하거나,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해 폭력과 반 이성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이처럼 빼곡히 나열된 아첨의 기록들과 기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 집단의 이미지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기회주의의 역사가 곧 한국의 역사인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군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며, 집단이라는 정체성에 의존하는 기회주의의 특성을 묘사한다. ‘한민족’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집단성은 표준화, 튀지 않음을 모티브로 하는데, 종종 개인은 그 정체성에 가려지기도 한다.


카메라는 태극기와 광장, 위인들의 동상을 비춘다. 집단적인 믿음과 그 안에서 오랫동안 굳어진 집단주의적 가치를 형상화한 듯한 동상은 더디게 흘러가는 화면 속도와 흑백의 화면으로 인해 더욱 어둡고 무거워 보인다.


동상은 멈춰 있고 집단은 살아 있는데도, 동상처럼 박제된 이미지들과 집단이 흘러가는 속도는 같다. 한 때 박제되었던 가치, 그를 실천한 인물들에 대한 찬양, 아첨의 기록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을 때 그것을 마주보며 너무도 당연하게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득 현재 찬양 받는 가치들 또한 훗날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결국 “한국인을 관두는 법”이란 어떤 집단적 가치들이 형성한 제약과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이기에 더 와 닿았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영화였고, 이미지의 아카이빙을 통한 기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느낀 작품이기도 했다. 한국 구애전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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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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