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라디오가 선사한 위로, 29년을 지켜온 "배철수의 음악캠프"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8.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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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6시, <배철수의 음악캠프>



아주 사소한 일도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영험한 기운이 깃든다고 한다. 그런데 무려 29년이나 매일 저녁 6시를 지키며 음악을 소개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배철수 씨다. 올해 3월로 벌써 29주년이 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내가 즐기는 유일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하루의 마무리를 시작하는 6시, 힘찬 인트로 팝송으로 시작되는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 오래도록 하루의 위로를 주곤 했다.


사실 팝송이라고 하면 자칫 어렵다거나 내 영역이 아니라며 <배철수의 음악캠프>라는 프로그램을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이 별건가? 그저 느끼고 흥얼거리다 마음에 들면 재생 목록에 ‘툭’ 넣어버리면 되는 것을!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오직 음악과 사연을 소개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나에게 가장 라디오 다운 라디오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넷플릭스, 왓챠를 구독해서 언제 어디서든 영상 콘텐츠를 본다. TV 조차 옛 시대의 것이 되었다. 그런 2019년에 라디오가 웬 말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라디오라 하면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이 큰 라디오 기계 앞에 앉아 듣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영상들이 만연한 이 시대에 여전히 라디오라는 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삶 속에 스며들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저녁 6시의 라디오란 누군가에겐 퇴근길 노을을 바라보며 차 안에서 듣는 것, 누군가에겐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듣는 것, 또 어떤 이에게는 야자 시간 선생님 몰래 일탈을 꿈꾸며 듣는 것, 야근을 하며 회사에서 고된 몸으로 듣는 것이다. 사람마다 라디오를 듣는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겠지만 우리의 하루에서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 6시가 아닐까 싶다.


저마다의 6시 속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군가는 새로이 시작한다. 그리고 라디오가 전해주는 음악들과 함께 위로와 즐거움을 얻고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낮 방송, 겨울에는 밤 방송이 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일 년을 함께해보면 6시에 대한 기억이 꽤 또렷하고 아련해진다. “겨울에는 깜깜한 거리에서 산책하면서 들었는데, 여름인 지금은 대낮처럼 환한 밖에서 버스를 타며 듣는구나.” 그렇게 라디오는 나의 저녁에 낭만적인 기억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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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화의 희열2>



세월에 깃든 힘



29년. 감히 쉽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특히나 라디오는 평일과 주말에 관계없이 ‘매일’ 방송이 되는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TV 프로그램보다 더 성실성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가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군더더기가 없다. 오직 배철수 씨와 팝송,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들. 이것이 전부다. 가끔 등장하는 스페셜 게스트들도 오직 음악을 위해 함께한다. 2시간을 내내 들으며 마음이 넉넉해지는 이유는 한적한 LP 카페에 앉아 오롯이 좋은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이 라디오 역시 오직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떤 인위적인 코너가 있거나 애써 청취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연을 담담히 들어주고 음악으로 함께하기에 더욱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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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화의 희열2>



배철수 씨가 젊을 적, 라디오를 처음 시작하면서는 사연에 대해 까칠하게 답변하기도 하고 시청자들과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송골매 시절의 배철수 씨의 모습을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자들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철수 씨는 그때의 자신을 회상하며 60살이 훨씬 넘은 이제는 스스로를 ‘사과 전문가’라고 부른다. 조금이라도 사과할 거리가 생기면 주저 없이 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29년이라는 시간은 배철수 씨에게도 많은 변화를 준 것이 아닐까. 활자와 사진으로 청취자와 소통할 뿐이지만 사람들이 보내준 사연들을 소개하고 소통하면서 생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이제는 자신의 일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9시에 눈을 떠 낮부터 방송국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4시부터 라디오를 위해 미리 도착한다고 한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는 배철수 씨가 직접 음악을 선별하여 소개하기 때문에 미리 가서 음악도 듣고, 그날의 분량을 준비한다고 한다. 라디오를 끝내며 그는 늘 자신을 ‘디스크자키’ 배철수라고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수식어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공감하는 ‘배캠’만의 매력



한 시대를 풍미한 락스타였던 그가, 백발의 60대가 되도록 DJ 자리를 지킬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은 모를 일이다. 라디오 부스 안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듣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29년을 ‘디스크자키’로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진행을 들으면 나까지 소리 내어 웃을 일이 생긴다.


배철수 씨 진행의 매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솔직함이라 답할 수 있다. 사연을 소개하며 애써 위로하거나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러시면 안 됩니다.”와 같은 단호한 멘트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아재 개그와 너털웃음은 오히려 사탕 발린 위로보다 우리를 웃음을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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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DJ로 나오신 김영하 작가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해진 씨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저녁마다 챙겨듣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연예인의 연예인’과 같은 존재인 이 라디오는 많은 스페셜 DJ가 방문한다. 앞서 말한 유해진 씨를 비롯해 작가 김영하 씨, 작곡가 유희열 씨, 배우 김혜수 씨 등 지금껏 많은 아티스트 분들이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칭하며 스페셜 DJ를 맡아왔다. 그때마다 청취자의 입장으로서 새로운 선물을 선사받는 듯 즐거웠다.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왠지 어려운 존재였던 사람들이 라디오를 통해 더 친근해진 것이다. 영상이 아닌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것은 더 가까이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코너도 <배철수의 음악캠프>만의 재미 포인트다. 특히 월요일 코너인 ‘김세윤의 영화음악’은 내게 영화라는 예술을 바라보는 폭을 넓혀주고, 차트 안에 등장하는 상업적 영화보다 더 의미 있는 영화들을 알게 해주었다. 또 칼럼니스트 임진모 씨와 함께하는 ‘스쿨 오브 락’도 좋아하는 코너인데, 배철수 씨와 함께 티격태격하며 음악을 소개하시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렇게 배철수 씨뿐만 아니라 작가분들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오랜 시간 동안 지키고 계신다.




무언의 약속, 라디오가 주는 위로의 힘



매일 불안과 의심이 없이 무엇인가 나의 하루에 찾아온다는 것은 내게 큰 위로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래와 불안정한 마음속에서 저녁 6시, 그 자리에 언제나 있었던 배철수 씨와 <배철수의 음악캠프>라는 프로그램은 나의 20대에 마음의 안정과 따뜻함을 선사했다. 또 29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여전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디스크자키’ 배철수 씨를 보며 나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라디오란 그런 역할인 것 같다. 우리의 하루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청취자와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곳에 존재한다는 약속을 한다. 그래서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찾아오라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속삭여준다. 때로는 음악을 선물로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많아지는 시대라도, 나는 소리뿐인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 앞으로도 애정이 깃든 마음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함께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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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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