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임은 가장 마지막에 있다. 사람은 먼저 동기를 가지고, 그다음 근육에 신호를 보내 움직이게 한다. 이 마지막 단계로만 구성해 표현한 예술이 마임이다. 움직임도 대사도 없이 하는 무언극은 연극이나 춤과 비교해 다소 찾아 보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마임은 분명 독자적인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다. 표현할 뿐인 움직임은 원래 가지고 있는 기능을 겨냥하지 않는다. 차를 따르는 똑같은 동작을 수행하지만, 차를 따른다는 그 기능은 없다. 마임은 그래서 예술적이다. 사실, 우리도 애호가를 자처하고 누군가는 예술가임을 밝히지만, 예술의 진정한 쓰임을 딱잘라 말하기 어렵지 않은가.
필자는 춘천 페스티벌에서 마임 무대를 몇 개 감상했었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예술로서의 마임을 감상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혼란이 있었다. 당시에 필자는 춤과 마임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둘 다 움직임을 주 재료로 하고 있었고, 표현의 장이 더욱 모호해진 오늘날, 리듬이 없다고 해서 춤이 성립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이번 공연을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은 마임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마임은 연극보다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표현 방법이 신체에 한하기 떄문에 배우는 온 몸의 근육을 통제해야할 뿐만 아니라, 소품 없이 미세한 뉘앙스를 표현하여야 한다.

이번 공연 <지금 여기, 마임>은 한국의 마임계를 대표하는 마임이스트 유홍영, 고재경, 류성국, 최정산의 최신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5일의 공연 중 24일과 25일에는 유진규 마임이스트가 특별 출연한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일상이 지니는 단순한 소재에서 발견한 인간 본성과 점점 잊혀져가는 인격과 인정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마임의 특성을 고려할 때 꽤 잘맞는 주제라는 인상을 받았다.
인간 본성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 번 마임이라는 표현방식을 돌이켜보면, 마임이야 말로 인간의 근원적 예술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아주 태초의 인간에게 종교나 예술이 있었다면, 음악보다 먼저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모방한다는 것은 가장 가까운 표현방식이고, 조금 과감하게 말해서 인간 정신의 시초일지도 모르겠다.
실존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로서는 24일 공연의 <있다, 없다>에 관심이 쏠린다. 이 공연에서 마임이스트는 죽음과 삶, 상상과 현실에 대해서 다룬다. 필자가 이 공연의 주제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는 마임이야말로 존재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능은 온데간데 없지만 육체적 표현으로서 존재하는 움직임으로의 회귀는, 육체와 무목적성에서 멀어진 현대인에게 더없이 주제일 것이다. 모든 예술은 결국 인간의 근원을 복원하기 위해 내달리고, 마임도 그만의 방식으로 그 주제에 다가설 것이다. 고도화된 문명 속에서 우리가 예술을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멀리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마임 공연은 더욱 생소하지만 좋은 기회다.
한 가지 기능으로만 몸을 움직여온 모든 사람들에게 이번 공연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