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0년대 어느 낭만파 가장과 그 가족이야기 - 로맨스빠빠 [영화]

글 입력 2019.08.0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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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고 온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저녁 먹고 침대와 하나되던 일상을 반복하던 중, 문득 잊고 있던 나의 취미 중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보다 훨씬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때, 내가 즐기던 취미 중 하나가 고전 영화 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유투브 및 다른 사이트에서도 시간이 많이 흘러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의 영화를 보는 것이 꼭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로 시간 여행 하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하고, 시대 배경과 영화 속 상황, 배우 스타일 등을 찬찬히 보는 것만으로도 내 나름의 공부를 하는 것 같은 나름의 유쾌함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전 영화 중에서 한국 영화를 감상할 때는 외국 영화와는 다른 재미가 있었는데, 바로 부모님 청춘의 시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인공들의 말투, 옷차림,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다 아빠, 엄마도 저런 옷을 입고 다녔을까, 그 때는 집에 저런 장신구를 뒀을까 이런 저런 상상에 혼자 흐뭇하곤 했다.


어느 날, 또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유투브에서 누가 봐도 60, 70년대 한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썸네일을 발견했다. "로맨스빠빠(1960)".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1960년대, 아니 1960년에 개봉했으면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건데, 그 시기에 로맨스빠빠? 그게 가능한가? 하기야 가능하지 않으니까 영화로 만들었겠지, 뭐 한번 보자."


1960년에 개봉한 만큼 지금 관객들에게 뻔하다면 뻔하고 예측 가능하다면 가능한 내용이지만, 보고 난 후에 다시 생각나게 하는 따스함이 있는 영화, 로맨스빠빠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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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빠빠"의 주인공, 로맨스빠빠]



"제가 로맨스빠빠예요.

이제 겨우 쉰두 살밖에 되지 않는 날 보고

노망을 부린다고 해서 애들이 붙여준 별명이 로맨스빠빠예요.

인생에 낭만을 갖는다는 게 왜 노망이죠?"



영화는 등장인물이 모두 나와 자기 소개를 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로맨스빠빠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뒤이어 아내와 세 딸과 두 아들, 그리고 그 외의 극중 인물들이 각각 자신들의 생활과 남편, 아버지에 대한 소외를 밝힌다. 이렇게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이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의 자기소개가 끝난 후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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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아내와 두 아들, 세 딸과 사는 가장이다. 출근하면서 꽃을 사고, 사무실의 빈 꽃병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꽂는 낭만을 지닌 중년이다.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자식들도 부모의 노고를 모르고 용돈 주세요, 신발 새로 사주세요, 할 때도 좋은 말로 타이르는 성품을 지녔다.


형의 물건만 계속 물려받는 둘째 아들이 어머니 아버지는 꼭 나를 형의 찌꺼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푸념할 때는 "너는 내 찌꺼기도 네 형의 찌꺼기도 아니고 너는 어디까지나 네 자신의 너야"라고 말하고, 결혼한 큰딸에게는 힘들면 언제든지 걱정하지 말고 부모에게 돌아오라고 말해주며, 막내딸에게 익명의 연애편지가 왔을 때 아내가 빨리 뜯어보자고 재촉하자 이렇게 답한다. "안돼, 인권 침해야" (영화가 1960년에 개봉한 것을 감안하면 딸, 아들 가리지 않고 마음 해아릴 줄 아는 당시에는 매우 부드러운 아버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맨스빠빠"의 이런 따스한 낭만적 성품은 가족들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가족 모두가 놀러 나가고 "로맨스빠빠" 혼자 있던 날, 집에 도둑이 든다. 도둑과 마주한 "로맨스빠빠", 자신을 위협하며 너, 이 집 주인이냐 하는 도둑에게 나도 이 집 털러 들어온 도적이라고 답하고 위기를 모면한다. 천연덕스럽게 도둑인 척하며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왜 도둑질을 하느냐고 묻자 도둑은 자식이 12명인데 아내가 또 아이를 가진 이 시점에 평생 일한 곳에서 감원으로 쫓겨났다, 미역국 끓일 돈도 없어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가만히 사정을 듣던 "로맨스빠빠"는 아무 말 없이 부엌에 있는 미역을 도둑에게 건네고, 마침 가족들이 돌아온다. 지금껏 마주 앉았던 사람이 집주인이라는 걸 깨달은 도둑은 미역을 내던지고 부리나케 줄행랑을 치고 "로맨스빠빠"는 그런 그를 뒤쫓아 가며 외친다. "이 사람아, 미역 가지고 가! 미역 가지고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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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궃은 운명으로 도둑이 겪은 시련을 "로맨스빠빠"도 겪게 된다. 오래 일했던 회사는 본사에서 내려온 감원 고지와 나이를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그는 가족들의 반응, 앞으로의 재정을 고민하며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쓰디쓴 시간을 보낸다. 자존심 숙이고 전 동료의 회사에 찾아가 사정을 해봐도 여기저기서 다 감원을 하고 있다. 사람을 쓰려면 젊은이를 쓰지 않겠냐는 말만 되돌아온다.

홀로 거리를 걷고 공원에 앉으며 시간을 보내다 월급날이 되자 자신이 아끼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월급인 척 아내에게 건넨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그를 안쓰러워하며 철없이 굴지 않고 가계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로맨스빠빠"도 가족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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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 같이 보자" 하면서 엄마 손 잡아끌고 같이 영화를 봤다. 옛날 꺼, 오래전 영화나 드라마 보면 괜히 서글퍼져서 싫다고 하던 엄마는 어느새 가만히 보다가 가족 중 맏딸이 화면에 비치자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 최은희잖아." 엄마에게는 당대 최고의 영화 배우로, 필자 또래의 세대에게는 아마 김정일에게 납북당한 한국 현대사의 한 에피소드의 인물로 어렴풋이 알려졌을 배우. 나는 그 배우를 이름만 알았지 그 얼굴은 몰랐었다.  "저기 둘째 아들이 신성일, 막내딸은 엄앵란, 야 다들 젊다."

영화를 보면서 엄마는 잊고 있던 어릴 때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엄마가 말해주는 추억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몰랐던 엄마의 시간을 배운다. 그렇게 함께 웃고 대화하며 잠시 생각해본다. 아, 이거도 꽤 낭만적이네. 좋다.


[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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