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입술색 촌스러워요, 조심하세요!’ ‘겨드랑이 털 보여요, 조심하세요!' -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공연]

그들의 노력이 웃픈 이유
글 입력 2019.08.05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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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황가림



하이드 비하인드 사건 발생!

도시에서 미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여성들이 소리 없이 실종된다.

 

도시의 여성들이 실종하는 사건이 증가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라졌다는 증언만 있고, 납치범의 실체가 없다! 이에 누리꾼들은 이 사건을 ‘하이드비하인드 사건’이라 명명한다. 밝혀진 사실은 단 하나.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거나, 트렌드에 뒤쳐진 여성들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한 단체가 “하이드비하인드에 맞서 아름다워질 필요가 있다”며 새뷰티운동을 전개한다. 뷰티 열풍은 점차 도시에 광적으로 퍼져나간다.





이유는 단 하나, 예쁘지 않으니까!



하이드 비하인드에 대한 공포가 갈수록 심해진다. 외출하기 전 옷을 여러 벌 갈아입는다. 이 상의에 이 하의를 매치하는 게 맞을까? 색 조합은 어떻게 하지? 여기에 어울리는 신발은 뭐가 있지? 사람이 많은 거리를 걷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없다. 사람들의 옷을 보며 요즘 트렌드를 읽고, 나는 그 흐름에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걱정한다. 왜? 그 기준에 나를 맞추지 못하면 나는 하이드 비하인드의 표적이 되고 마니까.

 

하이드 비하인드에 대한 공포감이 나날이 커지면서 길에서 마주친 두 주인공이 서로를 걱정해주기까지 한다. ‘입술색 촌스러워요, 조심하세요!’ ‘겨드랑이 털 보여요, 조심하세요!’ 미의 기준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을 마치 연쇄살인마에 쫓기는 것처럼 생각한다. 서로 공포에 떨며 조언하는 말들은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요즘 사회에서는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무서운 일 아닌가? 배우들 대사에 그냥 웃기엔 뭔가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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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노력은 웃프다



하이드 비하인드에 맞서기 위해 새 뷰티 운동이 일어나고, 아름다움 경연 대회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서로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야기한다. 붓기를 빼기 위해 온몸을 랩으로 감는 사람, 전기 충격기로 근육에 충격을 줘서 본인의 몸매를 가꾸는 사람. 고통스러울 정도로 본인을 학대하면서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하고, 그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오버스러운 대사와 행동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웃프다. 웃고 난 뒤에 씁쓸함이 남는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너무 과장된 행동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결국 뷰티 콘테스트의 우승자는 바비인형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강요하는 미의 기준은 인간이 가공적으로 만들어 낸 상품이 아니고서야 도달할 수 없는 걸까? 인간이 아닌 바비인형이 우승자가 되다니, 굉장히 웃긴 상황이다. 그런데 또 마음 놓고 웃을 수는 없다. 우승자 축하 화면 아래에 경연 대회 참가자가 쓰러져 있다. 전기 충격으로 본인 근육 부피를 줄이려던 사람. 과한 전기 충격으로 쓰러지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다들 아름다운 우승자를 축하하고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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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결에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아이돌이 나오는 음악 방송에 손이 멈췄다. 반짝거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눈 주변에 반짝거리는 가루들을 붙인 어린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현실과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뭐랄까, 잘 꾸며진 인형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난 너무 예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너 남자친구 감수 잘해, 왜냐면 내가 빼앗을지 몰라’ 뉘앙스의 가사들과 클로즈업 되는 얼굴들이 낯설다.


춤과 가창력, 그러니까 그들이 노력한 퍼포먼스나 예술의 표현 방식이 보이기보다는 마트에 잘 진열된 상품들을 보는 기분이다. 내가 낯설게 느끼는 것은 미디어에서 보이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 그리고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연출이다. 그토록 획일화된 미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는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그런 것들을 두텁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성에게 부여된 획일화된 미의 기준은 우리를 갉아먹는다. 미의 기준만큼 강제적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기준도 없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걱정하고,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하이드 비하인드의 표적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장면에서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과장되어 있는 연출을 보며 이건 우리 현실이 아니야, 그저 연극일 뿐이야 하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우리의 현실이 정확하게 찍혀있다. 과장되고 은폐된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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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은 동그랗게 자신들을 둘러싼 울타리 밖으로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팔 한쪽. 그다음에는 다리. 과감하게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가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팔 하나 내미는 것도 너무 무섭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하고 나면 그다음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건 더 쉬워진다. 그 밖을 나가도 내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오히려 즐겁기까지 하다. 내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간다. 몸을 한쪽만 걸치고 있어도 좋다.

 

내가 그랬다. 집에서는 안경을 쓰는데, 외출을 할 땐 항상 렌즈를 꼈다. ‘안경을 쓴 이미지와 벗은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 제발 안경 벗고 다녀라’라는 말을 안경 쓸 때마다 들어서, 렌즈를 끼지 않고 외출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불가피하게 안경을 쓰고 외출한 날에는 마치 하이드 비하인드에 쫓기는 사람처럼 모자를 눌러 쓰고 땅을 보고 걸었다.


지금은 안경 쓴 내 모습을 좋아한다. 거의 대부분을 안경을 쓰고 지낸다. 두려움을 물리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주인공처럼 처음에는 팔 한쪽, 나중에는 몸 전체를 울타리 밖으로 내밀어도 나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던 것 같다. 그 울타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미디어 매체에서 만들어낸, 타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고정관념이라는 것들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 하이드 비하인드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없애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도 하인드 비하인드의 존재를 느낀다. 연극 속의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겨드랑이 털이 부끄러워 팔을 들지 못하고, 튀어나온 뱃살이 부끄러워 달라붙는 옷을 꺼린다. 내가 뷰티 트렌드에 맞지 않다고 느낄 때 주인공들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가빠 오는 공포감을 느낀다. 하이드 비하인드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공포감을 벗어나는 방법을 안다. 자유롭게 울타리 안과 밖을 날아다니는 주인공들처럼 내 의지로 그 경계를 무너뜨릴 줄 안다. 우리가 이 사실에 다 같이 익숙해지면 하이드 비하인드의 존재도 서서히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하이드 비하인드에 맞서는 것이 당신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나는 언제나 울타리 밖으로 나갈 준비가, 그리고 당신을 그 밖으로 데려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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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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