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야기는 시작된다. - 에릭 요한슨 展

전시 <에릭 요한슨 展> / 2019.06.05 ~ 2019.09.15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글 입력 2019.08.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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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예술콘텐츠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미술사 전반을 훑는 수업이었다. 암기할 내용도 많고 시험의 난이도 또한 높아 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극혐’ 과목으로 통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대학 생활 4년 중 가장 많은 것을 안겨준 즐거운 수업 중 하나였다.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여러 예술 사조 중 내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개념은 ‘초현실주의’였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으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화파는 현실의 것들을 재배치해 전혀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를 Displacement, 즉 ‘데페즈망’이라고 한다. 익숙한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 개념이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데페즈망 같은 것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개념을 알고 나니 내 취향을 더욱 명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슬픈’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고 화목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어른들의 ‘어른같지 않음’에 관심이 가고 욕심, 이기심 등 나쁘다고 여겨지던 개념에 새롭게 의미 부여하는 것이 재밌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시각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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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act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은 현실을 섞어 비현실을 만든다. 달과 사람을 조합해 매일 밤 밤하늘의 달을 갈아 끼우는 업체를 만들어내고 호수와 유리를 조합해 깨진 호수(?)를 만들어낸다. 물고기와 마을을 조합해 떠다니는 마을을 만들고, 꽃병과 사람의 팔을 조합해 깨진 팔(!!)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현실의 것들이 조합되다 보니 그의 작품은 난해한 듯하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이질적인 듯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아 넓은 감상과 이야기의 여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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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p of Faith


출근 복장의 저 남자는 출근하기 싫어서 떨어져 죽으려고 하는 거다. 꼭 나 같다. 한 손에 움켜쥔 자그마한 풍선은 내일이 주말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에는 출근이라는 어마무시한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다.


[작품제목]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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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ver-up


저 남자 기절시키고 싶다. 그럼 영원히 아침이 안 올거고, 나는 출근을 안 하게 될 것이다.


[작품제목] 우리 회사 싫어하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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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ctations


내 몸이 저렇게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그럼 한 명 설거지시켜 놓고 다른 한 명은 출근시켜 놓고, 진짜 나는 하루 종일 누워서 놀고 먹을텐데.


[작품제목] ㅎㅎㅎㅎ!! …..농담입니다.



여튼... 이런 식으로 에릭 요한슨의 작품에는 친숙한 색다름이 있다.



 

그의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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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and and Supply


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주말이었다는 사실도 한 몫 했겠지만 그만큼 전시는 인기가 많았다. 전시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남자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이 되게 좋아할 전시라고.

 

그런가? 확실히 전시가 트렌디하긴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느꼈고, 전시장에 ‘Hip’한 사람들도 많았던 걸 보면 #트렌디 라는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초현실주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트렌디하다고 느껴지는 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각박한 세상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길거리에서 사람이 쓰러져도 119에 신고하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생중계하는 것에 더욱 관심있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뿐일까. 콘텐츠 역시 그러하다. 점점 더 빨라지고, 쉽게 소비된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더 빠르고 가볍게 돌진하고 있다고 한들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 역시 이를 좋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유의 서정적인 음악이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눈이 부시게’, ‘빨간머리 앤’과 같이 깊은 감성을 지닌 영상 콘텐츠가 호평을 얻으며 ‘트래블러’, ‘캠핑클럽’, ‘비긴 어게인’과 같은 잔잔한 예능이 만들어지는 것이 이를 증빙한다.

 

대다수의 인간은 시대의 탑승객이기에 기술과 그로 인한 주류 정서의 변화를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회에는 없는 무언가를 향한 갈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의미이며, 자신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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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mulus and Thunder


‘2019 트렌드 코리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2019년은 자신만의 것이 중요한 시대이다.’ 무언가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석과 재창조의 여지, 즉 공백이 필요하다. 난 현실을 재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해서 필히 해석이 필요하다는 에릭 요한슨 작품의 인기를 보며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공백을 원하는지를 알았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전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 같다. 대중의 니즈를 맞춘다는 상업적 측면에서도, 초현실주의 ‘그림’이 아닌 사진을 창조해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다는 예술적 측면에서도 에릭 요한슨의 작품은 칭찬할 만했다. 전시장 내부가 잘 꾸며져 있어 사진 찍기에도 좋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 역시 좋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와중 간만에 공백을 느끼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 회사 사랑해요) 오늘의 공백으로 난 또 내일을 살아가겠지.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 그는 셔터를 눌렀고, 사진은 찍혔다. 하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Full Moon Service.jpg
 

에릭 요한슨 사진전

- Impossible is Possible -

 

 

일자 : 2019.06.05 ~ 2019.09.15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12,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10,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 13세) 8,000원

 

주최/주관

씨씨오씨


후원

주한스웨덴대사관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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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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