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리스를 그리다 - "그리스 보물전"

그리고 대한민국을 떠올리다
글 입력 2019.07.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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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그리스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으로 이어진다. 학당의 중심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서 있는 그곳. 그리스 아테네. 어둑해진 강의실 안을 환하게 비춘 스크린 속에서 그들을 보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사상을 텍스트로 배웠지만, 그들이 있던 곳을 그려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그리스라는 나라가.


이번 전시는 5세기~4세기의 그리스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외 시기인 그리스 역사를 총망라해서 보여준 거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비약해 그리스로마신화, 민주정 체제의 아테네만 그리스로 생각했던 나에겐 그 방대한 역사에 움찔했다. 하지만 곧 흥미로워졌고 재밌었다.


전시는 그리스 문명의 시작인 에게해 문명부터 미노스 문명 - 미케네 문명 - 아케익기 - 고전기 – 그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이르러야 끝이 난다. 난 하나하나의 테마 벽을 지나며 빠르게 때론 천천히 유물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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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대를 거쳐 가며 보고 난 뒤,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암흑기였다. 기원전 12세기 경 미케네 문명이 몰락한 이후의 세계. 암흑기라 불리지만 정말 아무런 발전이 없어 어두컴컴하다는 암흑기가 아니라 유물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학자들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케네 문명 몰락 이후 인구감소, 경제 규모 축소, 외부세계와의 교류가 단절됐지만 철기 문명이 그리스 전역으로 전파되었던 때이기도 하다고. 그래서 어떠한 것이 나오느냐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300년 동안의 암흑기. 그 암흑기 이후 바로 문화가 급격하게 발전한 아케익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아 그 3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학자들도 궁금해하고, 찾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글을 읽는 동안 나 또한 바라게 됐다.


단순히 신화라고만 여겼던 이야기들을 발굴로 증명해낸 슐리만처럼 제2의 슐리만이 나타나 주길. 그래서 그 암흑기엔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라 말해주길. 이상하도록 많은 유물도, 문자 기록도 남지 않은 이 시기가 생각이 나는 건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시기라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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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아름다웠다. 과거라 해서 현재의 조각가나 예술가들의 작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었다. 현시대의 예술가들이 여기서 많은 영감을 얻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허리를 굽혀 작은 글씨를 읽고 작품을 보려 까치발을 들며 노력했기에.


전시를 보며 이렇게 많은 유물이 이렇게 생겼구나, 저렇게 생겼구나, 이때는 이런 영향을 받아 이런 게 만들어졌구나. 신기해하며 한편으론 이것들을 발굴해낸 사람들이 대단했다. 상상하고, 추측한 것들을 한데 모아 발굴 작업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테마를 옮겨 다니며 중간중간 눈에 띄었던 슐리만이라는 고고학자를 보며 ‘이 사람은 뭔가?’ 싶은 거였다.


미케네 성벽 안 원형무덤군 A에서 발견한 가장 호화로운 가면에 “이거는 아가멤논의 가면”이라고 했던 사람. (아가멤논의 것이 아니라고 밝혀지긴 했지만) 호메로스가 남긴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야기를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거라 믿었던 사람. 그리고 끝내 상상이 아닌 진실로 바꿔놓은 사람. 이 사람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토록 집착하고 선망했을까. 그래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탐험 정신이었다.


슐리만은 일곱 살 때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 속 트로이 전쟁의 삽화를 보고 땅속 어딘가에 그 성터가 남아있을 거라 믿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머릿속은 트로이로 가득 차 <일리아드>를 낭송해 다니고, 파리로 유학해 고고학 연구를 해나갔다고.


그리고 마침내 터키의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하고 있다. 히사를리크 언덕을 마구잡이로 파 내려가 그리스 시대 건축물들이 무참히 파괴되기도 하고, 유물 일부를 빼돌려 나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의 발굴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모든 역사는 추측되지만,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면 더 이상 추측이 아닌 완벽히 실제하고 실체 하는 역사가 된다. 고증된 역사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잠시 넘어와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또한 안전히 우리의 품에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서 국문학도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추측으로 남기고, 궁금증으로 남겼던 역사를 실체 했던 역사로 바꿔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의 유적지를 가면 몇백 년 전에 내가 두 발로 서있는 이 자리에 한 역사가 살았었구나 위압적이고 신기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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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테네 민주정 체제 유물들을 본 것도 뜻깊었다. 말로만 듣고, 읽기만 했던 아테네 민주정치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었는지 유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텍스트로만 보았던 그들의 지혜를 그대로 보고 느끼며 크게 놀랐고 감동했다.


특히 ‘클레로테리온(추첨기)’이 인상 깊었다. ‘피나키온(이름표)’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시민 배심원을 뽑는 수단이었다. 이 추첨으로 그리스 시민 누구나 배심원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리석 판에 홈을 내고, 그 안에 이름표를 넣은 다음 무작위로 뽑힌 사람이 배심원을 맡았는데 그 기계가 클레로테리온이다.


또 시민 법정에 쓰이던 물시계인 ‘클렙시드라’도 있었다. 클렙시드라는 단지 모양의 그릇으로, 바닥에 구멍을 내고 물이 나오는 것을 이용해 변론 시간을 쟀다. 물이 다 떨어지는 시간은 약 6분 정도로 시간 내 발언을 해야 했다고 한다. 연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에게 설득해 내야 하기 때문에 당시 언변술이 유행하고 발전했다고. 지금 국회나 뉴스에서 질문하고, 자신의 입장을 발표 해내야 하는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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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리스 아테네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로선 상상하지 못할 생각들을 했고, 어쩌면 더 똑똑하고 지혜로웠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꽤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 열정적이었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아테네의 민주정치만은 인상적이라 기억한다. 그런 걸 유물들을 보며 더 공감했다.


우리는 그들이 몇 세기 전에 만들고, 정해놓은 것들을 실제로 활용하고 이행하고 있다. 유물들을 보며 예술작품에 대해 본받을 것이 많다 느꼈지만, 그 외의 정치경제에서도 놀랍도록 앞서가 있었다. 과거의 사고가, 지금의 사고를 앞서가 있다고까지 느꼈다. 그래서 그러한 역사가 자리한 지금의 그리스 아테네 뒤에 지혜와 균형, 이상이라는 단어가 뒤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었던 지혜. 나는 그 ‘깊게’를 보고 좀 오래 생각했다. 디지털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살게 만들었지만 ‘깊은’ 생각이 아닌 ‘짧고’ ‘쉽고’ ‘빠른’ 생각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쉽고 빠른 건 세상을 더 살기 편하게 바꾼 것은 맞다. 사실상 나부터도 이런 세상에 익숙해졌고, 이것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지점에서 잃어버린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조금 더 들여다보고,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위하는 마음들.


솔론이 내세웠던 ‘중립 금지법’이 아직도 유효하다 느끼는 이유에서일까. 지금 사회는 아직도 배워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자신의 안전과 이익만을 추구하고 공적인 일에 나서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일 때 폴리스 전체의 안정이 위협된다는 취지였던 이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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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는 시기를 생각한다. 우리는 훗날 역사책에 어떤 시기로 기록될까. 넘쳐나는 정보들과 이슈들은 하루아침에 빠르게 솟아올랐다가 먼지처럼 사라지기 일쑤다. 그런 세상에서 기록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소모되는 것도, 소모하는 것도 많은 것들의 시대였다고 남겨질까?


그러나 또 생각해본다.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고, 바꿨고, 다시 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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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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