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무 기발하고 유쾌하고 귀엽잖아! -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모두를 위한 전시,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글 입력 2019.07.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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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나 어린이였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자꾸 잊는다. 어렸을 때의 상상력과 천진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은 어떤 그림이 될까. 적어도 어린이였을 때의 기억을 잊고 사는 사람의 그림보다 어린이와 더 많이 통하지 않을까.


앤서니 브라운 전시를 보며 계속 든 생각은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그림이 하나 같이 정말 어린이가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서툴고 엉성한 그림체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림에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그림에 담긴 상상력 등이 정말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같았다.


어렴풋이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은 하나같이 다정했고, 유쾌하고, 천진난만하다. 상상력은 말할 것도 없다. 전시를 보며 엄마미소가 얼굴에 떠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뒤에서 더 찬찬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앤서니브라운의 행복극장展] 포스터_웹용최종.jpg
 


영국 태생의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2000)하며 일찍이 아동문학에 큰 공로를 세운 작가로 인정받았다. 앤서니 브라운의 기발한 상상력과 초현실주의적 표현으로 가득 찬 그림책 속에는 가족애, 우정, 예술, 자유, 행복 등 인간적 가치에 관한 따뜻한 시선과 진지한 질문이 숨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은 물론 특유의 위트와 풍자로 어른들에게도 웃음과 사색을 선사하고 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정말 유치한 애니메이션도 많지만, 잘 만든 애니메이션은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깊고 큰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심지어 '어린이들도' 공감할만한 것들이다.


어른이 된 후에 우리는 어린이들이 많은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를 가만히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인지한다. 다만 그것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방법과 다르고, 논리 정연하게 글이나 말로 풀어내지 못할 뿐이다.


애니메이션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어린이들도 느끼고 어른들도 느끼는 보다 근원적이고 단순하지만 말로 세세하게 표현해내기 어려운 것들을 귀엽고 따뜻한 표현 방법으로 표현해낸다. 예를 들면 사랑, 우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를 위한 영화'가 아닌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한다. 남녀노소 누구 한 명 소외되지 않을 만한 영화라는 뜻에서.


이번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을 보며 든 느낌은 잘 만든 '모두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들었던 느낌과 같았다.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들은 (그리고 이야기들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과 같이 볼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그림과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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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시작되자마자 유일한 앤서니 브라운의 인터뷰 영상이 스크린빔으로 쏘아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 영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모와 아이들과 같이 그림책을 읽을 때 그들은 무척 경이로운 대화들을 나눈다고 말이다. 그의 인터뷰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었고, 그의 그림과 그림책들도 그러했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의 그림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흥미롭다.


실제로 전시도 아이들과 같이 관람하기 좋게끔 구성이 되어있었다. 충분한 원화만큼이나 동화책 주인공 모형들이 많았고,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말고도 국내 작가와의 협업 한 설치미술, 오브제, 영상, 미디어 아트 등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물론 본인도 사진 찍기 좋았고!)


중간중간 작품을 그대로 표현한 공간도 있고,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그림 속 숨은 그림 찾기를 위해 (뒤에서 더 설명할 예정) 원화 작품과 함께 더 크게 인쇄된 작품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전시 끝자락엔 어린이들을 위한 미니 도서관 공간이 있는데, 작품과 함께 실제로 그의 동화책을 누워서 혹은 앉아서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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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스토리텔러


리뷰 초반에 전시를 보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 이유는 정말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아 맞아 어렸을 때 이랬는데"라며 내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라 추억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일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사물에도 상상을 더해 그걸로 세상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어렴풋한 느낌으로 알았던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어린이스러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림을 보다 보면 그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는 엄청난 스토리텔러였다. 그런데 스토리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림을 통해 1차원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단 은유적, 혹은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표현방법은 어린이들이 보아도 이해가 될 정도로 단순했음에도 많은 것이 담겨있었고, 언제나 과하지 않았다. 어떤 메시지를 담더라도 다정함과 포근함을 잃지 않는다. '그림'은 언어를 거치지 않고 어떤 것을 느낌에서 느낌으로 전달하기에 최적의 방법이란 생각을 종종 하는데, 앤서니 브라운은 그림을 사용하는 그런 표현방법에 정말 탁월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A Piggy book이라는 그림책이었는데, 엄마 혼자 집안일을 홀로 다하고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가정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런 엄마가 결국 잠시 집을 비우고 아빠와 아들 둘은 돼지가 되어버린다. 집도 역시 정말 돼지우리가 되어버린다. 엄마가 다시 돌아오고 그들은 이제 엄마의 요리를 도와준다. 간단한 그림 책임에도 전달되는 것이 명확하다. (끌자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그림은 한결같이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그림책처럼 사람을 거의 동물 캐릭터로 자주 표현하는데 동물 캐릭터가 주는 귀여움과 상징성은 그림책의 또 다른 매력이 된다. 처음부터 동물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물 캐릭터로 등장하다 갑자기 다시 사람으로 표현되거나, 사람이었다가 동물 캐릭터로 표현되는 식의 구성이 많다. 그럴 때면 캐릭터의 현실감이 (동물이었을 때) 멀었다가, 갑자기 확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 경험이 정말 인상 깊다.


그 외에도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부모님의 모습이 담긴 <우리 아빠가 최고야>(2000)와 <아기가 된 아빠>(1993)는 어른들이 봐도 (특히 아빠들이 본다면) 또 다른 감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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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iggy book의 표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만 웃고 있지 않다. 꽤 오랫동안 떠올랐던 그림



그림 하나가 이렇게 재미 있다니


그의 그림에 또 다른 재미는 숨은 그림 찾기이다. 전시 설명을 보면 그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르네 마그리트의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걸 찾는 게 은근 엄청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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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그림


단순히 대작에 등장한 사물들을 오마주 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사물들을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분명 아주 다른 사물임에도 언뜻 보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대놓고 사물을 변형시킨 그림이 있는 가보면 멀리서 보면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아야 뭔가 다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그림도 있었다.

약간 추억의 게임인 '윌리를 찾아서'하는 느낌이 들었다. 변형되거나 독특한 물체들은 실제 연상되는 물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어서, 하나의 그림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정말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았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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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그림 자체가 유쾌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그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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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너무 귀여웠어요




어린이처럼 세상 보기



위에서부터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어린이처럼 세상을 보는 그림'이란 것에 대해 설명을 더하고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대표적으로 이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게 바로 <터널>(1989)이라는 작품이었다.


어렸을 적에 두려움을 느끼던 상황을 상상해보면, 실제로 몸이 작기에 세상과 공간이 더 커 보였기도 했고, 실제론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무서운 이야기나 동화에 나온 괴물들이 등장할 까 두려움에 떨기도 했었다. 누군가가 이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면 솔직히 막막할 것 같다. 이렇게 글로 적어도 주저리주저리 길어지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어릴 적의 두려움이 이 그림에는 다 나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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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 한 작품인데, 위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무들에 늑대, 마녀, 거인 등이 숨어있다. 언뜻 보면 나무지만 자세히 보면 보이는 이 괴물들은 어렸을 적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악당들이다. 도망가는 아이도 역시 빨간 모자가 연상되는 차림새다. 이런 식으로 앤서니 브라운은 그가 잘하는 표현방법으로 어린이들의 경험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 원래 유명한 다양한 작품을 녹인다는 점도 인상 깊었는데, 사실 우리의 어렸을 적 상상에는 당시 우리가 읽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조금 웃기긴 하지만) 초등학교 들어갈 적에 드래곤볼(만화)과 해리포터(소설)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실제로 꿈에서 초싸이언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호그와트에 들어가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리고 지금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처음 듣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고 있을 유명한 명작들의 존재는 나의 어릴 적 상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이런 걸 다 그림으로 표현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린이들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 기라도 했을까.






꿈꾸는 윌리_Wiily the Dreamer_ 1997.jpg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고려한 전시여서 전시장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곳도 많고, 다른 프로그램도 많이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뮤지컬 비바 프랜드>라는 가족뮤지컬도 이번 전시 티켓이 있으면 할인이 55%나 된다고 하니 아이들이 있는 집은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 반대로 아이들과 함께 가지 않는 관람객들은 평일에 관람을 가면 더 편하고 즐거운 관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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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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