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 연극 "달랑 한 줄"

이제 당신과 나의 차례입니다
글 입력 2019.07.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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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05년 방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속 삼순이의 나이가 겨우 30세였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녀는 그 나이 되도록 시집도 못 갔다며 구박이란 구박은 다 받고, 억척스럽고 촌스러운 이미지로 그려졌었다.


2019년인 지금, 동일한 설정과 내용의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하면 아마 그 드라마의 PD와 작가는 몰매를 맞다 못해 방송계에서 퇴출 당할지도 모르겠다. 겨우 14년만에 세상은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큰 변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을 향한 편견과 잣대를 치우는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달랑 한 줄>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극 속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위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물들은 연실과 명희, 우리 엄마 세대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를 사과하는 엄마, 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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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초반, 연실은 은주와 현주에게 계속해서 험한 일 당하지 않게 조심해라, 늦게 다니지 마라, 옷도 제대로 입고 다녀라,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 와 같이 모든 범죄와 사건 사고는 여성의 부주의라고 얘기하는 엄마다. 이로 인해 사회가 맘에 들지 않는 행동파이지만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제약이 많은 막내딸 현주와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다.


연실은 남편한테 막말을 들어도 참고, 이혼을 하고 싶어도 딸들 때문에 못한다고 참고 늘 참는다. 그게 여자로서의 도리라고 배워왔고 믿어 왔다. 그런데 큰 딸 은주가 회사에 몰카범이 있단다, 늘 당당하고 자기 소신 있는 명희도 성폭행의 아픔을 겪었단다.


연실은 자신이 그동안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걸 인지한다. 그리고는 딸들에게 자신의 언행을 사과한다. 연실이 바뀌었다. 이제는 참고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고 나이 50이 넘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냈다.

 

연실의 모습과 변화를 보며 나는 우리들의 엄마와 할머니들이 그동안 당하면서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해 온 차별들이 얼마나 지독했을까 싶어 마음이 쓰라렸다. 그렇기에 연실의 극 초반과 후반의 뚜렷한 행동 변화가 더욱 반가웠다.



 

뒷걸음질은 더 이상 없다. 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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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는 연실과 다르다. 미혼이며 직업도 있고 늘 당당하고 소신 있다. 번역가로 일하는 명희는 이번에 맡은 책이 성차별적인 문장으로 점철된 것이 몹시 못마땅하다. 거슬리는 한 줄 조금 바꾸자고 했더니, 계약을 없던 걸로 하잔다. 그러니까, 잘렸다. 현주가 노발대발하며 항의하자고 하는데 어쩐지 명희는 평소와 다르게 이 상황에 순응하려고 한다.


사실 명희는 과거 직장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법원조차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참 다르다. 연실, 은주, 현주. 무려 세 명이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다. 이제 명희는 다시는 물러서지 않을 계획이다. 

 

 

 

우리의 모습을 꼭 닮은 은주와 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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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가장 소극적이고 겁내는 은주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은주가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런다고 사회가 바뀌기는 할까, 괜히 불이익을 당하는건 아닐까. 조용히 있으면 이 또한 지나가지 않을까.


나도 여러 번 겪은 감정들이다. 그러나 결국 은주는 명희와 연실, 현주의 손을 잡고 연대에 동참한다. 현주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파이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의 벽이 너무나 많은 것을 가로막는다. 현주라는 캐릭터는 여자이자 학생이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주 취약한 존재임을 알려준다.

 

She ran away not because she was a woman but she was a human.

 

명희가 그토록 바꾸고 싶어 했던 한 줄이자 바꾸지 못한 한 줄. 그러나 앞으로 기필코 바뀔 한 줄. 누군가에게는 무모하고 쓸데없게 보일 수 있는 연대지만, 분명 적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이 연극이 변화의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모두 연극 <달랑 한 줄>이 정중하게 내민 손길을 잡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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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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