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중독적 유희가 아닌 문화산업으로서의 첫 번째 도약, '게임을 게임하다'

글 입력 2019.07.23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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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년쯤 TRPG 문화와 관련된 오피니언을 기고하면서 헤르메스의 그릇을 소개했었다. 헤르메스의 그릇은 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가상의 도구다. 연금술사들은 헤르메스의 그릇에 납을 담고 잘 닫은 뒤 열을 가하면 그릇 안에 담긴 납이 화학변화를 일으켜 금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헤르메스의 그릇에서 영감을 받아 '테메노스'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테메노스는 고대에 희생 제의가 치러지던 신성한 공간으로, 융은 개인의 내면에도 자기의 경험과 갈등을 담아두는 심리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음속에 있는 테메노스의 그릇은 자신의 경험과 갈등을 내면에서 변화시키고 숙성시킨다. 그 과정의 결과로 금이 만들어진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필자는 테메노스의 그릇이 특정 어느 부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해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무의식은 늘 지혜로운 조언자로서, 몰두할만한 것을 몰두하게 한다. 필자는 종종 놀이라는 가상공간에서 테메노스의 그릇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놀이는 좀 더 적극적인 상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좀 더 아름다운 아바타, 괴물에 대한 제압,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냄으로서 사람의 정신은 금을 제련한다.


요즘 게임중독에 대해서 많은 말이 오간다. 본격적인 행정적 절차에 대한 논의로 게임 중독이 뜨거운 도마에 올랐으나,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치밀한 설계에 따른 게임의 중독성에 대해서 온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는 모든 문제가 게임 자체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한 대상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좀 더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게임 중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일화가 모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필자가 주변에서 만난 게임중독 청소년은 가장 접근하기 편한 탈출구, 혹은 삶의 양식으로서 그것을 선택했다.


탈출도 삶의 양식도 단순한 가치판단할 수 없는 주제다. 그것을 단순한 '중독'으로 묶어 판단하고 치료의 대상으로서 삼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있다. 사회적 적응을 위한 처치에 있어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자세한 맥락이 이해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글을 읽었다면 눈치채듯이, 필자는 이번 글에서 보다 개인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려고 한다. 이미 수많은 매체가 게임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했을 뿐더러, 아트인사이트라는 매체가 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청년 기고가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로 넘어가, 게임의 예술적 경계선을 다룬 넥슨의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는 시의적절한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획되었으므로, 결코 WHO와 관련된 이슈로 인한 넥슨의 반응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기자 간담회에서 최윤아 관장은 넥슨의 활동을 25년으로 정리하며, 사람이 그러하듯이 게임도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청년이 되었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성숙한 산업으로서의 활동을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미 문화전반에서 게임이 갖게된 위상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기사 간담회에서 최윤아 관장은 이 전시회가 '확언'이 아니라 '담론의 시작'이라 말하긴 했지만, 넥슨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세대로서 이야기하자면, "게임이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다소 철지난 논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논쟁은 마치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을 나눌 수 있는가"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최소한 필자가 감상한 예술은 표현의 경계를 해체했고, 어떤 것이 유의미한 경험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언제든 예술의 영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면, 이미 게임은 참여적 예술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술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필자는 반대로 왜 예술이 될 수 없는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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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박물관 측에서는 단순한 유희산업으로서의 게임이 아니라 문화예술 담론의 시작으로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는 게임쇼가 아닌 역사적으로 신진 예술가를 배출해온 미술관에서 기획되었으며, 실제로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필자의 전시회에 대한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다.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의 체험과, 그 체험들이 만들어오고 있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 게임의 본질은 다른 형태의 체험에 있고, 전시회 구석 구석에서는 그 체험을 만들어낸 기술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넥슨의 전시회는 기술의 역사, 체험의 역사로서도 받아들여질만 하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한국의 게임 산업에서 중요한 입지를 꿰차고 있다. 이 전시회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로서 의미를 갖는다. 사회에서는 게임 산업의 발돋움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게이머로서는 역사가 아닌 추억의 반추로서 의미를 갖는다. 전시회 명을 '/초대'인 것도 관람객을 추억의 공간으로 초대하겠다는 의도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유희적 중독이 아닌 하나의 체험 형태로서 제안된 '게임'은 게임 역사에서 의의있는 작업이다.

 

전시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입구(전면)은 게이머의 시선이고, 출구를 향하는 방향(후면)은 개발자의 시선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로나와 판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방문객은 우선 키오스크 로그인을 통해 ID밴드를 발급받는다. 이 ID밴드는 전시물마다 찍을 수 있으며, 로그아웃시 그 결과와 넥슨의 게임기록을 확인 할 수 있는 영수증이 출력된다. 영수증은 넥슨의 게이머라면 가장 의미있는 선물일 것이다. 전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지은 아이디,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이름을 확인할때, 게이머는 유희가 아닌 추억으로서의 게임 속 경험을 반추하게 된다. 구 넥슨의 게이머라면 들리지않는 발소리까지 들리는 익숙한 입구를 들어가면, 또다른 나라는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RPG게임이 그러하듯이 관람객은 가상의 캐릭터를 무작위로 부여받는다.

전시회의 이름에 맞게 전시회를 이야기하자면, '플레이어'의 시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캠프파이어가 있었다. 비어있는 캠프파이어 공간이 원통형의 단상에 구현되어 있는데, 관람객들이 단상 위 구조물에 앉으면 가상의 캠프파이어가 피워지고, 바람이 불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음악이 연주된다. 여기까지 서술했으면 눈치챘겠지만, 마비노기의 휴식공간이 이러한 형태다. 이 전시물의 주제는 온라인 게임의 상호작용성이다. 게임이 또다른 체험의 공간이될 수 있는 것도 그곳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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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통합해 가장 놀라왔던 작품은 단언컨대 전시장 후반에 배치되어 있는 로나와 판이었다. 로나와 판은 마비노기의 대표적인 NPC로서, 마비노기를 플레이해본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들의 모습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폴리곤 형태로 만들어진 전시물이 입구쪽 방향의 카메라로 색감이 칠해진다는 것이다. 뒤쪽에서 보면 이들은 하얀 석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면의 빛을 받는 이들은 살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로나와 판이 쳐다보고 있는 쪽에는 HMD가 설치되어있는데, 관람객이 HMD를 들여다보면 판에 설치된 카메라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판의 시선으로 관람객 그 자신을 확인할 수 있고, 관람객 이름 위에는 로그인때 부여받았던 가상의 이름이 떠오른다. 현실세계의 시선이 아니라, NPC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 '나'의 타자화는 온라인 게임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놀라운 일이다. 필자에게 로나와 판은 플레이어와 게임간의 상호관계를 하나로 집약해 만든 신선한 작품이었다.

넥슨은 오는 9월 1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회를 지속할 예정이다. 작은 전시관에 20여점의 작품이 있지만, 게임문화산업을 주도해온 기업으로서 문화예술계에 제시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도였음을 부정할 수없다. 이번 전시회는 무료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추억을 되새기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문화예술애호가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회적 이슈와 산업 문제를 넘어서 문화예술 애호가로서 이번 전시회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했으면 좋겠다. 넥슨은 마땅히 유저들에게 도토리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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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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