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줄리엣과 줄리엣, 세상이 지워버린 이야기 [공연예술]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글 입력 2019.07.02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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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공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나왔다고 생각했고, 애초에 원작부터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안의 반대에 맞선 두 남녀와 죽음도 갈라서지 못하는 사랑. 그 시절에는 독특하고 슬픈 비극일 수 있었겠지만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는 수많은 헤테로 러브스토리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하나의 연애 소설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줄리엣과 줄리엣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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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로미오 대신 줄리엣

유명하고 흔한 고전이기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누구에게는 진부한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이를 더 매력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여러 작품의 모티프로 쓰이기도 하고, 인용구로도, 비유로도 쓰인다.

<줄리엣과 줄리엣>은 유명하고 흔한 고전을 신선하게 비틀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로미오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릿 대신,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릿이 사랑에 빠진다. 로미오는 줄리엣 몬테규의 친동생으로 등장하며, 몬테규가와 캐플릿가는 원래 원수지간이 아니었으며, 둘은 캐플릿가의 무도회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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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토록 사랑스러운 퀴어 스토리, 그리고 소수자

이전에 성 소수자를 그리는 경우, 대부분 작품에서는 남성과 남성의 사랑이 많이 두드러졌다. 여성과 여성의 사랑, 무성애자의 사랑 등 다른 모양의 사랑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기에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줄리엣과 줄리엣>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퀴어 이야기를 무대 위에 데려왔다.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대사가 여성과 여성의 입을 오가고, 그 둘이 사랑에 빠지고, 그 둘을 응원하는 또 다른 여성이 있으며 그들을 지지하는 종교인이 있다. 동성애자, 무성애자, 그리고 가톨릭 사회에서의 불교신자. 이들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묶인 채 서로를 바라보고, 같은 이름으로 묶여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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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새하얀 세상에 나만의 색을 가진 사람

무대는 굉장히 하얗다. 무대도, 소품도, 심지어 인물들의 옷도 온통 새하얗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백색일 수도 있고, 모두가 통일된 색을 가진 공간일 수도 있고,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재미없고 새하얀, 너무나도 평범한 세상에 줄리엣과 줄리엣이 있다. 이들도 처음에는 새하얗지만, 점차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모두가 같은 색깔을 띠고 있을 때 자신만의 색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서로가 서로의 색에 꼭 걸맞을 때 그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줄리엣은 다른 모양의 사랑을 가졌고, 그 사랑은 ‘다른’ 모양일 뿐 ‘틀린’ 모양이 아니므로 남들과는 다른 모양에 다른 색깔의 줄리엣들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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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줄리엣 하나를 집어넣었다고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신선해질 줄은 몰랐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사실 전혀 진부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이렇게 신선하게 비틀어질 수 있다면 말이다. ‘지워지지 않아!’ 이 한 마디로 시작되는 이야기.

당신들이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이 세상의 줄리엣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흰색이 너무나도 많아서 다른 색을 다 덮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장 눈에 띄는 건 그 색깔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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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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