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화 같은 사랑, 그리고 그 끝 [영화]

글 입력 2019.07.0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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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경사진 길에서 떨어지듯 내려온 유모차. 그 안의 여자를 발견한 한 남자. 이것이 조제와 츠네오의 첫 만남이다.

 

조제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이런 그의 장애와 이를 부끄러워하는 조제의 할머니 탓에 조제의 세상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집 안이 그의 세상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조제에게 유모차를 타고 하는 산책과 할머니가 주워오는 헌 책은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이다. 비록 인적이 드문 이른 새벽,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담요로 덮인 채 이뤄지는 산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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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제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츠네오다. 조제와 우연한 만남 후, 츠네오는 조제를 자주 찾아간다. 조제가 만들어준 밥이 끝내줘서 일수도, 조제의 순수함이 매력적이어서 일수도 있다. 혹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동정이었을지도.


이유가 무엇이든 츠네오와의 만남은 조제의 세상을 더 넓혀준다. 츠네오는 조제가 보고 싶어 하던 책을 구해다 주고 유모차를 개조하여 담요 없이 산책하러 간다.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쌓이며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빠져든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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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의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조제는 혼자가 된다.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조제에겐 참으로 막막한 일이다. 츠네오가 조제에 대한 마음을 애써 접으려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츠네오는 정말 조제가 혼자가 되자 조제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곁에 언제까지나 있어 달라는 조제의 말에 츠네오는 그러겠노라고 답한다.

 

함께 살게 된 후, 그들은 호랑이를 보러 간다. 호랑이는 조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실제 호랑이를 본 조제는 겁에 질리지만, 츠네오의 손을 잡고 호랑이를 마주 본다. 조제는 더 이상 담요 틈으로 세상을 보던 예전의 조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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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같은 연인 그리고 영원하자는 약속. 동화 속 이야기 같다. 이 영화가 여기서 마무리되었다면 완벽한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을 함께 극복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라 믿는, 그런 해피엔딩.

 

그러나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까지 보여준다. ‘1년 후’라는 자막이 뜬 뒤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고장 난 유모차이다. 과거 조제를 위해 유모차를 손보던 츠네오는 더 이상 조제를 위해 유모차를 고치지 않는다.

 

1년 후, 츠네오는 조제와의 관계에 지친다. 영화는 왜 츠네오가 변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지만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의 관계는 애초에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예견된 관계였다.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는 서로를 금방 지치게 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사랑을 무너뜨리기 충분하다.


조제는 이런 츠네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츠네오와 여행을 떠났을 때 조제는 여행의 목적지를 츠네오 부모님 댁에서 바다로 바꾼다. 바다를 보러 간 그들의 모습은 여느 연인처럼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별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그들도, 관객도 알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장면이 서글퍼지는 이유다.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와. 정적만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 조제 대사 중 일부



몇 달 뒤, 이들은 이별한다. 이변은 없었다. 츠네오의 말처럼 담백한 이별이다. 원망도, 애원도, 눈물도 없다. 매일 아침 출근하듯 츠네오는 조제의 집을 나선다. 이것이 그들이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다시 조제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츠네오는 말한다.

 

영원하자는 약속은 깨졌고, 츠네오는 도망쳤으며, 조제는 혼자다. 지독히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한 감상엔 ‘아름답다’가 포함된다. ‘현실적이다’와 ‘아름답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공존하는 이유는 이들이 함께한 시간에 진심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심으로 사랑했고, 변해버린 마음을 다잡아보려고도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변의 진리 앞에서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이별 후 조제는 혼자가 되었지만, 잘 지낸다. 영화는 조제가 휠체어를 타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도  그가 잘 지낼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이처럼 사랑의 끝엔 호랑이를 혼자 마주 볼 수 있는 조제가 있다. 반짝이던 두 사람의 시간이 준 선물이다. 이 영화를 두번째 보며 영화의 결말이 새드엔딩이 아님을 깨닫는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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