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

글 입력 2019.06.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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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에 있어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 순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내가 키비의 음악과 처음 만난 건 갓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는 마침 ‘중2병’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중2병’이란 사춘기 아이들이 심리적 방황을 겪으면서 자신을 남들과 다른 존재,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불행한 존재로 인식하는 모습을 비꼬아 나타낸 용어로 나 역시 ‘중2병’을 앓고 있었다. 나 자신을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착각했고 남들에게 내 불행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전시했다. 당시 나에겐 영화나 책 속 인물들이 깊은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접한 영화, 책, 음악 등의 모든 문화예술을 멋을 부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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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의 음악은 내가 추구한 ‘멋’의 한 도구로 기능하기에 자격이 충분했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지금보다 덜 대중적이어서 주변 친구들이 잘 알지 못했었고, 비트와 멜로디도 내 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결정적으로 가사 내용이 적당히 어두우면서 진지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멋있어 보이기 위해 그의 노래를 마구 찬양했고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상 곳곳에 가사를 적어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중2병은 조금씩 호전되었다. 그에 따라 내가 키비의 음악과 멀어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더 이상 내겐 친구들이 잘 모르는 예술을 좋아하는 것, 어둡고 불행해 보이는 것이 ‘멋’으로 통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열다섯 살에 불처럼 타올랐던 키비에 대한 애정은 소방차가 물을 끼얹은 것처럼 허무하게 꺼져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완전히 꺼져버린 줄만 알았던 애정의 불씨가 6년이나 지난 뒤 대2병에 걸린 대학교 2학년에 새삼 되살아났다. 대2병이란 대학교 2학년 또래의 학생들이 장래를 걱정하고 취업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빗대어 이르는 말로, 스물한 살의 나는 내 존재는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미래에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3때보다 더 괴로운 시기였다. 고3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대학에 붙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대학생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내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어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자책하는 인간이었다. 현재는 그대로 암울한데 학창시절 매일 상상했던 더 나은 미래마저 그려지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학업, 아르바이트만 기계처럼 병행하던 도중 불현듯 열다섯 살에 키비의 <스물하나>를 들으면서 ‘이 노래를 스물한 살에 들으면 무슨 기분일까’라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내가 스물한 살이 되면 훨씬 성숙하고, 꿈을 모두 이루고, 부와 명예까지 거머쥐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스물한 살이 되어 키비의 <스물하나>를 들으니 어떻게 이런 가사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중학생의 나는 가사의 내용을 정말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슷한 나이쯤에 군대를 가고

조금 후에 넥타이를 곧 잘 매는,

그래서 조금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에

나 솔직히 쉽게 답하기 어려워지는데

 

하루 앞, 하루 뒤가 모두 두렵고

아찔한 이 삶 위에서 난 기어코

내 소중한 보물들을 지킬 수 있을까?

이렇게 몸서리치는 가슴을 안아


 

스물한 살은 참 당혹스러운 나이다. 성인이 되었다는 기쁨에 도취했던 스무 살을 지나 갑자기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법적으로 어른이 된 지 일 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면은 성숙하지 못하고 현재와 미래 모두 불안하기만 한 그런 나이다. 키비의 <스물하나>는 달라진 현실과 달라지지 못한 내면의 괴리감이 주는 스물한 살만의 당혹감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노래다. 그러나 중학생의 나는 이 고백을 들으면서도 막연한 동경만을 품고 있었다.



재밌는 건 말이야

열 살 무렵에도 스물이

그만큼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단 말이야



<스물하나>의 가사에 공감할수록 스물한 살을 아득하게만 느꼈던 어린 나의 순진함이 그리워졌다. 돌이켜 보니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줄 알았던 중학교 2학년 때는 역설적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처음으로 문학과 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작가라는 꿈을 품기 시작했고, 그런 나의 꿈에 주변 사람들은 응원했고 나 자신도 확신했던 시기였다. 어쩌면 불행을 연기했던 것 자체가 현실이 그만큼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무엇도 되지 못한 현재가 답답했다. 그래서 간절하게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했던 성인이 된 나에게 찾아온 건 무엇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때가 정말 행복한 때였다는 깨달음뿐이었다.

 

친구들과 했던 물놀이가 떠오른다. 친구와 한 시간을 넘게 산책하며 나눴던 대화도, 설렘으로 가득한 수학여행의 전날 밤도, 학교를 마치고 다 같이 먹었던 떡볶이도.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그 순간들은 모두 빛나는 추억이 되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 추억의 한 페이지에는 키비의 음악도 있다.

 

이제는 스물한 살마저도 어리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키비의 <스물하나>를 들으면 지독하게 중2병을 앓았던 내가 떠올라서 잠시 현실을 잊고, 피식 웃게 된다.



 

문화예술 안에서 찾은 행복과 불행이 있나요?



많은 문화예술이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다룬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 수많은 행복과 불행을 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감정 이입한 것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철저히 관객의 시선에서 ‘관람’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완전히 감정 이입하여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게 한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 <지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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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 감독의 <지슬>은 제주 4·3을 배경으로 당시 국가적 폭력에 의해 붕괴되는 제주도민의 삶과 추악한 동시에 존엄한 개인의 인간성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다룬 영화다. 4·3은 얽히고설킨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몇 만 명의 무고한 목숨을 비참하게 앗아간 대규모 학살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사실적인 폭력 묘사와 더불어 4·3사건 자체가 지닌 비극성 때문에 <지슬>은 어떤 장면이 나와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감정 이입했던 부분은 엉뚱하게도 한 노인이 돼지에게 밥을 주러 가야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학살이 시작되고 제주도의 평화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은 갑자기 닥쳐온 위기에 영문을 모름에도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로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그 와중에 돼지에게 밥을 주러 가야한다고 집으로 가려는 사람이 있다. 이 와중에 무슨 돼지에게 밥을 주냐고, 지금 그럴 때냐고 모두가 만류하는데도 어떻게 밥을 안 주냐며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다. 기르는 동물에게 밥을 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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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영문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따뜻한 감자를 나눠 먹으며
소소한 가정사를 늘어놓는다.


영화 속 인물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국가 권력이 자행한 폭력은 그 소박한 소원마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불행이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당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고 행복은 그렇게 놓쳐버린 모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많은 예술 작품 속 불행한 사람들이 자신이 이전에 누렸었던, 혹은 다른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슬>에서 찾은 행복과 불행이 비단 4·3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문제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는 내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를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땐 아무런 걱정 없이 친구들과 노는 일상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일상은 완전히 끝나버렸고 비슷하게 재현한다고 해도 그 순수함만큼은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만 보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살아가는 현재는 철저히 외면했었다.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과거도 이전에는 현재였고 동경하는 미래도 이후에는 현재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과거에도 만족하지 않았고 나중에도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는 항상 소중한 순간도, 행복도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어쩌면 지금 내 눈앞에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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