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실명의 독서중독자가 읽은 "마음의 지도"와 모자이크 생각들 [도서]

글 입력 2019.06.2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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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리뷰에는 <마음의 지도> 함유량이 낮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이 있는 이유는 인간 심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또다른 사람들, 특히 책으로 알고 싶은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시작은 설레는 마음으로


마음의 지도_표지 평면.jpg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인 제목이다. <마음의 지도>라니, 얼핏 들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미로라고 불리는 인간의 마음을 헤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세계를 향해 떠나는 모험가의 설렘으로 책을 펼쳤다.


1부 |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1 보통 사람의 마음
성격 - 안 좋은 성격은 하나도 없다
미루며 사는 인생 - 작심삼일을 해결하는 방법
권태 - 왜 싫증이 나고 따분해질까
봄 열병 - 처녀들은 왜 봄을 탈까
용기 - 용감한 행동을 하는 이유
윤리적 판단 - 트롤리 문제에 담긴 뜻 
이야기1 - 소설은 삶을 연습하는 운동장
이야기2 - 이야기는 힘이 세다
거짓말 - 피노키오와 클린턴의 코 
샤덴프로이데 -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 
강박신경증 - 발병에서 치료까지 17년
회복탄력성 - 슬픔을 이겨내는 힘 타고난다
사고방식 - 동양과 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제목에 홀렸던 내 마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 이 책은 지도라기 보단 안내서고 여행이라기 보단 여행 팜플렛 같은 것이구나. 내가 기대했던 것은 한국의 <빈 서판>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마음의 지도>는 최근 심리와 뇌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바로 그 대중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기획된 도서였다.

목차는 명확하게 이 점을 보여주었다. 정말 다양한 연구를 집대성했지만 당연히 그만큼 깊이가 얕다. 실험 배경, 맥락, 결과만 소개하는 데 서너 페이지를 할애하고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딱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관련 상품 카탈로그나 리플렛을 펼친 느낌이다.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딘가 들어본 유명한 내용과 낯선 것이 골고루 섞여있어 골라서 읽기 좋다.

연구 결과를 엮어 어떤 새로운 시사점을 도출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연구가 있었다는 정도의 흐름이다. 이것이 의의가 있다면 여러 책들에서 하나씩 들어보았던 개념들이나 연구들을 백과사전처럼 모아놨다는 정도가 아닐까? 트롤리문제, 회복탄력성, 천재의 비밀(일만 시간의 법칙), 창의성의 비밀(반복과 양), 긍정심리학, 거울뉴런, 사이코패스, 과시적 소비 등등 고전적이거나 유행했거나 여기저기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 최근 심리학/경영학 서적에서 많이 보았던 내용 등이 꽤 나온다. 물론 후반부에는 최신 연구도 있다.

여기서 저자는 아쉽게도 하나하나 소개하기 바빠 간신히 한두 줄 말미에 덧붙일 뿐이었다. 마치 패키지여행에서 가이드가 중간 중간 간단한 해설을 넣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비해 잠깐 언급했던 <빈 서판>의 목차는 다음과 같았다.


1부 빈 서판, 고상한 야만인, 기계 속의 유령 
1장 공식 이론 / 2장 실리퍼티 / 3장 최후의 성벽
/4장 문화의 탐욕 / 5장 서판의 마지막 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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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두려움과 혐오 
3부 인간의 얼굴을 한 인간 본성 
4부 너 자신을 알라
5부 주요 쟁점들 
6부 인류의 목소리


목차의 담백함이 느껴지는가? 빈 서판은 저자가 도착점을 명확하게 찍은 지도이다. 인간은 빈 서판으로, 백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스티븐 핑커는 치밀하게 경로를 그렸다. 1부에서는 빈 서판의 튼튼한 성벽을 두들기며 동시에 우리의 선입견을 공략한다. 2부부터는 내가 <마음의 지도>에 기대했던, 인지과학(뇌과학) + 신경학 + 행동유전학 + 진화심리학의 융합전선이 펼쳐진다. 반대편의 논리에 맞서 자신의 논리를 폭넓게 펼치면서 위험한 진화론을 주장한다.

즉 <빈 서판>은 로크-루소-길버트 라일로 이어지는 인간 본성의 부정-자연 속의 선한 인간(고상한 야만인)-육체와 분리된 마음(기계 속의 유령)을 물리치고 타고난 인간 본성을 진화심리학 진영에서 주장하는 책이다. 만약 당신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독자라면,<빈 서판>에 더해 핑커의 또다른 책인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제리 포더의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어본다면 한 가지 주장에 국한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의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지도>라는 제목이 확실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지도’라는 표현이 강한 만큼 차라리 ‘마음으로의 초대’나 요즘 식대로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이런 건 어떨까? 아니면 서양에서 요즘 유행하는 네이밍처럼 짧고 굵은 단어로 제목을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꾸미기]빈서판.jpg
내가 기대했던 '마음의 지도' - 일단은 빈 서판.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억압, 폭력, 탐욕으로 몰아넣는 반동적 교의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굶주림이나 질병 같은 불행의 요소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인간의 해로운 행동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와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포함된 성가신 사실들을 부인하려만 하지 말고, 그것을 좋은 사실들과 대립시켜야 한다.”

- 스티븐 핑커



책이 많이 두꺼워서 차마 집어들기 두렵다면, 테드를 열어보자. 다행히 저자가 직접 요약정리해준 <빈 서판>이 테드에 있다! 길지 않은 시간이니 한번 집중해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번외

그래도 <마음의 지도>를 읽어보자면..

Part 천재, 목표와 반복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과 사례만 바꿔서 계속 제시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내가 이전에 보지 못햇던 사례를 제시해주었다. 바로 <전문 지식과 전문가 수행에 관한 케임브리지 편람>이다. ‘전문’이라는 표현이 무려 2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전문(專門), 한 가지 문-분야에 힘을 모으면 남들보다 조금 더 그 문을 열 수 있다. 이 편람은 그 조건으로 유전성보다 노력과, 좋은 환경을 꼽는다.

<1만 시간의 법칙>, <1만 시간의 재발견>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인간의 노력은 지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어떻게, ‘잘’ 할 수 있는가? 바로 다음 파트인 ‘올림픽 영웅’에서 다시 어디선가 보았던 내용이 나온다. (계속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말은 흔하고 가치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핵심이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설적인 수영선수인 마이클 펠프스를 예시로, 메달을 따낸 슈퍼엘리트 선수들은 다른 엘리트 선수보다 훈련 과정, 정신적 자세, 마음의 상처를 이겨낸 경험 등 3가지 부분이 앞서 있다고 한다. 훈련 과정과 정신적 자세는 예시로 다른 책을 들지 않아도 성공을 위한 조건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들이다. 바로 목표설정, 핵심기술의 반복훈련, 마음속으로 연습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기, 몰입(flow)하기 등이다. 마지막 조건은 슈퍼엘리트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기 보단, 인간의 성장을 위한 보편적인 조건이 아닐까 싶다. 다만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폭은 분명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 차이가 기술의 슈퍼엘리트나 인격의 고상함을 낳는 것 같다.

Part 궁핍, 가난의 대물림

1959년 미국의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가 ‘빈곤의 문화’라는 이론을 말했다. 이 구절을 훑자마자 바로, 최근 읽었던 어떤 책이 떠올랐다. 총명한 아이는 가정을 가리지 않고 태어나지만 그 씨앗이 자라나는 정도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아무리 큰 나무도 하늘이 막힌 곳에서 자라지 못하고 큰 붕어도 작달만한 연못에선 성장을 멈춘다.

문화자본이나 사회자본 같은 사회적인 이야기 외에도 2006년의 <뇌 연구> 9월 19일 자의 논문에 따르면 소득계층에 따라 아이들의 작업기억 용량이 다르게 나타났다고 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작업기억이 곧 상황을 메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잘못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과거를 되짚어 맥락을 살필 수 있으려면 생각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작업기억 용량이 크다면 그런 여유가 좀 더 있다는 말이다.

가난을 넘어 그 다음을 꿈꾸기 위해선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당장 들이닥친 현실의 무게 밑에서 점점 시야가 좁아진다. 생각의 여유가 줄어들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기 보단 현재를 살아가기에 바쁘다. 그런 사람들에게 감히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트인사이트_프레스 명함.jpg


[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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