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에게 시선(施善)합니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施善: 좋은 일을 베풂
글 입력 2019.06.2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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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웃을 수 있고”

몇 년 전, 정치적 공약보다 괴상한 행보로 주목 받은 한 대선 후보의 노래 가사다. 영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영화 <아바타>의 명대사도 눈맞춤을 얘기한다. “I See You(당신을 바라봅니다)”. 도대체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기에 이토록 강조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 어떤 것도 내게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만큼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잘 제시해주지 못했다.

본인의 시그니처인 선글라스를 죽어도 벗기 싫어하는 남자 JR과 그의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고 싶은 여자 아녜스 바르다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아주 특별한 여정을 떠난다. JR은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사진작가이며 바르다는 누벨 바그의 대모라고 불리우는 이름난 영화 감독이다. 둘은 프랑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의 역사와 삶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얻어 현장에서 대형 포스터를 제작하여 설치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이 영화는 보통의 다큐멘터리처럼 일반인 인터뷰와 현장감 있는 영상 그리고 철저히 연출된 화면을 적절히 섞어 놓아 JR과 바르다의 대화가 그들의 실제 대화 내용인지 대본에 따른 것인지 그 선을 명확히 구분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덕분에 둘에게 더욱 몰입하기가 쉬워진다. 자칫 이방인의 시선으로 물 흐르듯이 흘러갈 수 있는 영화 속에서 감독의 주제 의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사들로 관객이 따라가야 할 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가령 이러한 대사들이다. 바르다에게 한 노동자가 다가와 이 프로젝트의 계기를 묻는다. 그런 그에게 바르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상상력을 위한 거죠. JR과 저는 서로에게 상상할 권리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영역에서 우리가 상상해도 되는지 묻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바르다와 JR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정확한 이유와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술이란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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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장면에서는 평범한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던 것도 문학적이고 독특한 표현으로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더했다. “JR, 멋진 여행 고마워. 나도 여행을 보내줄게 눈을 감아봐.” 라는 대사와 기찻길이 나온 후, 둘이 잠에 빠져 있는 장면이 연이어 나온다. “그들은 기차에 타자 이내 잠이 들었다” 와 같이 아주 보통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었지만 재기발랄하고 낭만적인 표현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장면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바르다의 당시 신체 상태를 알고 본다면 더욱 특별하게 와닿는다.

영화 속에서도 계속 언급이 되지만, 그녀는 촬영 때 이미 시력이 많이 악화되어 물체가 구분조차 안될 만큼 희미하게 보이는 상황이였다. 또 JR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시그니처 삼아 절대 벗는 법이 없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서로 명확하게 볼 수 없는 상태인데, 바르다의 저 대사는 자신이 시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세상을 그리고 JR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 것이라고 느껴진다. JR과 바르다는 50살의 나이 차이가 무색하도록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며 때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다시 친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각자 최선의 방법으로 마음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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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은 바르다의 눈과 발 사진을 찍고, 이를 대형 사이즈의 포스터로 제작, 재단하여 프랑스 전국을 누비는 커다란 화물차에 붙인다. 그리고 나오는 대사. “당신의 눈과 발이 이야기 하네요. 이 기차는 당신이 못가는 많은 곳을 가겠죠.” 연로하여 몸이 성하지 않고 수명이 다하고 있음을 스스로 아는 바르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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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JR이 가장 만나고 싶어 했던 영화계 거장 중 한 명이자 그녀의 절친 장 뤽 고다르의 집으로 향하는 깜짝 일정을 준비했다.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의 집 문 앞에 서서 기다렸지만, 왜인지 고다르는 바르다만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젊은날 추억이 담긴 암호와 같은 말만 문 앞에 써놓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절친의 행동이 이해되면서도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에 눈물을 보이는 바르다. JR은 그녀의 곁에서 계속 위로를 하려 하지만, 쉽게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 그녀. JR은 바르다를 위해 그의 눈을 보여준다.

그토록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그의 눈을. 영화 속 JR의 얼굴은 바르다의 시야처럼 뿌옇고 흐리게 나온다. 그렇지만 아무렴 상관없이 바르다는 행복했을 것이다. JR이 그녀에게 내어준 것은 선글라스도 그의 눈도 아니라 진심 어린 따뜻한 위로와 우정이었기 때문이다. 바르다는 그에게 “고마워. 마음 써줘서. 호수를 볼까?” 라고 대답하고 그들은 이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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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JR과 바르다가 격렬히 부러웠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시선을 향한 채 마음을 쏟아 본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진심을 보이는 것이 바보 같은 행위로 치부될 때가 많다. 감정을 잘 숨기고, 남들의 감정을 조작해서 자신의 성공을 쟁취하는 소시오패스가 존경 받는 인물로 추앙 받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다.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나이, 학력, 사회 계급, 직업 등으로 사람 간의 선을 구분하는 요소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영화가 나오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노년의 남성이 젊은 여성의 육체를 탐하는 영화는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찾아 보는 이들이 많은 반면, 30대 청년과 80대 노인의 우정은 상상조차 어렵다. 이처럼 많은 편견과 어떠한 구분으로 사람 간의 그룹 짓는 바람에 더욱이 사람 대 사람으로 친구가 되는 것은 점점 드물고 판타지 같은 얘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둘의 우정에는 가식 따위 찾아볼 수가 없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나는 우정뿐 아니라 아름다운 소통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다양한 마을을 방문하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연을 듣는데, 그 중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염소를 사육하는 두 농장이 나온다. 한 곳에서는 염소의 뿔을 잘라 애초에 상처를 방지하고 또 한 곳에서는 염소의 뿔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골무만 씌워 놓는다.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이 영화에서는 두 농장의 주장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들려준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저 염소 농장에 염소 사진을 커다랗게 붙이고 그들의 생업이 있게 하는 존재가 염소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이게 이 영화의 방식이다.

다른 마을과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려주고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이로써 관객들은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를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상기할 것이고, 분명 누군가는 행동할 것이다. 나는 절대적이거나 강압적으로 주제를 전달하지 않는 이 영화가 좋았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상에서 으레 욕설부터 오가는 이 사회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침서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기 원하나 소외되는 이들에게 그 관심을 주는 일은 잊고는 한다. 이제 나부터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시선(施善)하려 한다. JR이 바르다를 위해 선글라스를 벗은 것처럼.


[김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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