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목을 기르는 건,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문화 전반]

사소한 일상 속 늘 해오던 방식을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글 입력 2019.05.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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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는 메모할 때면 휴대폰의 메모장을 켜서 어떤 생각을 글로 메모해두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손으로 쓰는 게 너무 귀찮은 거였다. 그래서 손으로 글을 써서 생각을 기록하는 방법 대신 어떤 방법으로 생각을 저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은 녹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음성 메모 기능을 켜서 휴대폰에게 이야기하듯 생각을 말로 녹음해 저장해두었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말로 생각을 저장하는 방식은 손으로 글을 써서 기록하는 방식과는 달리 낯설어서 그렇지 편하기도 하고 글보다 빨리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다시 꺼내보는 측면에서는 눈으로 스윽 읽으면 되는 글에 비해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다시 들어야 하고, 그것을 녹취까지 해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미있었던 점은, 녹음하며 다시 듣는 순간, 내 목소리가 내가 알던 목소리와는 꽤 다르다는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몸 깊은 곳에서 울려온 내 목소리를 듣는 것과는 달리, 낯선 이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의 작은 시도가 낳은 결과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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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걸 싫어하는 사람치곤 참 단조로운 방식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조로운 걸 싫어하면서도 상당히 단조로운 방식으로, 더 정확히는 늘 하던 방식으로 일상을 대해왔다는 사실을. 늘 가던 길로만 가고, 늘 쓰던 앱만 쓰고, 늘 같은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또, 늘 하던 방법으로 말을 하고, 늘 입던 옷들끼리 매치해서 입었다.

그리고 퇴근 길, 나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 구석에 서서 늘 하던대로 스마트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을 키고는, 남들 사는 방식을 본다. 늘 하던대로.

나에게는 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이 있는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법,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 그리고 나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어떤 물건을 소비해왔다는 것이다. 옷이나 귀걸이 등을 비롯해 신발이나 책 등 새로운 것을 구경하고, 그것을 소비함으로 내 취향이 굳건해진다고 여겼고, 소비해야 내 스트레스를 제대로 푸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꽤 오랜 기간 동안 그 방식은 고착되어 습관으로 남았다. 그런데 소비를 하면 그 순간에는 잠깐 좋았지만 쌓여만 가는 옷과 신발과 액세서리들 중에 정작 지금의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없어져만 갔다. 다만 그렇게 얻은 새로움은 한 일주일만 지나면 일상이 되고, 어느새 특별함은 사라지고 한물간 것이 되어버린다.

사실 단조로운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만,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내가 가장 빠르고 간단하고, 순간적으로 몰입해서 새로움을 갱신할 방법은 어떤 것을 ‘소비’하는 행위였다. 빠르게 집중해서 매의 눈으로 아이템을 발견하면 꽤 자신이 특별하고 새로워진 듯한 기분이 들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바로 산다. 이건 상당히 즉각적으로 새로움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잘해왔던 소비마저 습관임을 알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레스 해소와 각종 변명 아래에 얼마나 촉발적이고 휘발적인 방식을 고수해온 것인지, 후회가 밀려왔다.



'행위'에 집중하다


그래서 나는 늘 쓰던 쇼핑 앱을 잠시 벗어나 앱스토어에 들어가서 각종 앱을 둘러본 후 몇 가지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앱을 깔았다. 물론 그 앱은 소비가 목적인 앱이 아니라, ‘행위’ 자체에 의의가 있는 앱들이었다. 늘 쓰던 메모 앱 말고 새로운 메모앱을 써보기도 하고, 간단하게 한 줄로 쓰는 일기 앱이나 그래픽이 아름다운 게임 앱을 시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아주 작고 간단해 보이는 행위를 통해 새로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또 퇴근길 한 번도 변함없이 선택했던 길 이외에 다른 출구의 길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의외의 식당들과 꽤 멋진 도보가 펼쳐진 풍경의 길을 걸으며, 그간 고집스러울 만큼 한결같은 나에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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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바꿀 필요는 없고 사소하게


물론 마치 모든 사물의 이름을 새로 지어 부르는 바람에 세상에서 고립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처럼, 모든 걸 새롭게 바꾸려 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건 변주가 아니라 혼돈일 뿐이다. 다만 많고 많은 반복된 행위 속에서 어떤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해볼지 잠깐 고민해보면 된다. 귀찮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찰나의 고민은 나를 잠시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고민에서 비롯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나를 알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해 시간 낭비를 했다고 투덜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소비해도 실패할 확률이 같다면, 어떤 쪽이 나을까.

결국 늘 같은 방식으로 삶을 대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영감들이 찾아오길 바랐던 과거의 나는, 상당한 우연을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대신, 이젠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 나아가 새로운 나를 알게 되는 것 자체가 굳이 거창한 행위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님을 느끼는 중이고, 그런 일상 속 사소한 시도들이 쌓여 진짜 내 취향, 진짜 내 안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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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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