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한한 시간의 얼굴, 특히 위로를 - 뉴필로소퍼 6호

글 입력 2019.05.12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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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행동이 미래의 당신이다.”

 

최근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보았다. 그 후로 현재가 앞당겨진 미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거는 계속해서 지나가는 시간이고, 미래가 계속해서 다가오는 시간이라면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중첩된 그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시간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믿어도 별문제는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New Philosopher> 6호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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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은 인간이 미래의 기억을 이미 갖고 있으면서도 떠올리지 못하는 상태로 지낸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 나보코프와 던은 꿈이 시간을 거슬러 미래의 경험을 전달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72쪽

 


이 매거진을 통해 여러 시간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때 느낀 직감이 맞을 수도 있다고 더 확신하게 되었다. 현재와 미래의 벽을 허물 수 있겠다는 가정도 꽤 새롭고 충격적이었는데, 미래에 일어‘났던’ 일을 현재에 알고‘있다’는 가설은 과거와 미래의 순서까지 바꿔버리는 시도가 아닌가.

 


물리학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없애버리고자 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48쪽

 


사실 리뷰 제목을 쓰면서 시간을 표현하는 수식어를 고민했다. 무한하다는 개념은 너무 쉽게 무언가를 정의하는 방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거진을 읽으면 읽을수록, 근거가 무엇이든 시간을 표현하려는 수식어로는 꽤 적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어쩌면 이제껏 알았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거나 순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순서와 흐름이 생명인 줄 알았던 시간에 더 이상 제한은 없다.


그렇다고 ‘시간의 얼굴은 무한하다’ 정도로 마침표를 찍어버리면 우려했던 결과-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버릴 테니 그 중에서도 인상 깊은 얼굴(표정)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봤다. 바로, 위로다. 이러한 측면에서, 휴 프라이스와 나이젤 워버튼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처럼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별이 단지 고집스럽게 지속되는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답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하니, 사랑하는 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슬퍼하지 말라는 애도의 표현이다.

 

-41쪽

 


시간에 관한 이해를 통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앞서 혼자의 생각 속에서, 시간 구분의 방식이 변해버린 과정을 다시 잘 들여다보니, 그 기저에는 어떤 욕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내게 필요했던 건 위로였다. 이제까지 지내온 시간을 나는 일부 후회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간을 최소한 후회는 없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위로의 샘을 본능적으로 시간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시간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필요한 위로를 얻었는데, 이 인터뷰가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직감을 물리학적 사실을 근거로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위로는 꽤 보편적인 선물은 아닌가 보다. 대담자 나이젤 워버튼이 위와 같은 새로운 사실에도 ‘나는 큰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이젤 워버튼은 그 이유를, 물리학에서 비롯된 개념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에서 찾는다. 휴 프라이스는 다시 물리학 이론을 근거로, 시간의 기준을 ‘자신’에게서 탈피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마지막 그의 대답이 의외다.

 


Q.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시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 성찰이 자기 인식에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

 

A. … 이러한 태평함이야말로 시간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가져다줄 수 있는 선물이다. 불행히도, 시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아직 그런 축복이 내려오지 않았다.

 

-49쪽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처럼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시간의 환상을 알고 있다고, 이 환상을 아는 것으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으면서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라니. 꼭 물리학적인 이해가 시간이 주는 위로를 맛보는 근거는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혹은,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를 그가 학자로서 겸손하게 밝힌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어쩌면 그와는 조금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려 나름 노력했지만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던 나는, 하지만 시간의 위로를 받는 데는 성공했다. 이렇게 말이다. “과거를 후회하는 이유는 원하지 않은 일을 원했다고 착각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착각하진 않는다. 반복된 행동이 미래면,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복은 미래가 될 것이다. 과장하여 나는 지금 미래를 살고 있다. 지금 후회는 없으므로,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합리화인 것 같기도, 지식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 실패한 채, 믿기로 작정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하나, 철학이 삶에 사용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때론 그럴듯한 말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실체가 철학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잘난체하는 것 같은 말이 메슥거리던 느낌. 그러나 어렴풋이 느끼는 건 결국 삶의 가장 실제적인 부분을 질료로 쓰인 말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인생이 처음인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사용을 도와주는 말과 생각. 그러니 일상을 철학하는 행위가 거창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오히려 편견일 것이다.


*


시간이 건네는 위로의 측면에 집중해 말하긴 했지만, ‘무한한’ 시간이 우리에게 끼치는 다채로운 영향을 보는 재미를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이따금 내게 정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종종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미뤄두고 두 시간 내내 기타를 쳐댄다. …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찾아온다. ‘주어진 일을 해낸다’는 것이 평소보다 덜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108쪽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어떤 사람의 행동,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이런 적 있는데!”하며. 종종 그런 자신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자신을 마주해도 낯설지 않을 것 같다. 또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은 앞으로 덜 하게 될 것 같다. <New Philosoopher>, 기존의 생각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매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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