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 그리고 나의 여행 '여행의 이유' [도서]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글 입력 2019.05.0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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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지은이: 김영하


출판사:문학동네


정가:13,500원



김영하의 산문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제목만 보고 단순히 저자의 여행기겠거니 짐작했는데, 그보다는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진짜 ‘여행의 이유’를 탐구하는 책이었다. 물론 저자의 재미난 여행 에피소드도 함께한다. 학생 시절 최초로 떠난 해외여행,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의 여행, 그리고 작가로서 안정적인 지위를 얻고 나서의 여행까지, 책에는 작가 김영하가 20여 년간 했던 모든 여행의 경험의 녹아들어 있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때 ‘키미테’를 붙였다는 일화가 귀여워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토비아스의 플롯 유형론 중 ‘추구의 플롯’과 길가메시와 호메로스의 서사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등의 이론 및 서사를 가져와 여행의 이유에 접목해 꽤 철학적이고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고 충분히 흥미롭게 펴내는 서술 방식은 마치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떠올리게끔 한다.


*


“여행자는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그 나라와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또한 그 도시의 정주민들이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맞춘다.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챕터는 <노바디의 여행>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가져와 대체로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현지에 동화된 ‘노바디’, 상대적으로 조용한 국가에서는 그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섬바디’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욕망을 풀어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여행했던 기억을 끄집어내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내 수긍했다. 나 역시 그랬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차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도시에서는 분명 해외여행을 하러 온 관광객인 티를 팍팍 내고 다녔고, 어느 도시에서는 마치 그저 흘러가는 일상 속의 현지인 마냥 조용히 다니기도 했다.


곧 나는 해외에서 약 1년 간 머물 예정이다. 여행이 아닌 처음으로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인데, 내 목표는 섬바디와 노바디의 중간이다. 그들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그들처럼 살아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외국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리고 아마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이 든다.


*


마지막 <작가의 말> 중 저자가 살면서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다는 대목을 읽으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가장 좋아하는 것 중 두 가지가 바로 글쓰기와 여행인 것은 분명하다.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 또한 여행 작가였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삶. 그것은 그때도 지금도 내가 가장 원하고 꿈꾸는 삶이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20여 년째 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여행을 좋아하냔 물음엔 망설였다던 저자는 여행의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고 결국 여행을 하며 사는 삶을 받아들인다. 나 또한, 여행 직전에는 매번 망설이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하면 설렘 가득한 마음에 떠나온 집을 금세 잊어버린다.


이번에도 출국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떠나려니 실감도 안 나고 귀찮은 마음도 조금은 있지만, 공항에서 분주한 사람들 틈에 서 있으면 분명 “그래, 이거지.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였지.”라며 기분 좋게 여행의 첫걸음을 내디딜 걸 알고 있다. 내 여행의 이유는 그 출발할 때의 설렘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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