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 - 2019 세월호

[2019 세월호] 아웃 오브 사이트,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글 입력 2019.05.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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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3일 금요일. 이 날 따라 난 유독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매일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노트북을, 시험도 끝났겠다, 집에 냅다 버리고 책 하나 달랑 들고 나와 하루를 살았다. 덕분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고 함께 벤치에 앉아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이런 저런 대화들을 흘러가듯 나눴다.

그 후에는 대학로의 서점에서 오래도록 책을 읽었고 마침내 저녁, 연극 ‘아웃 오브 사이트’를 보았다.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타고 싶었던 밤, 서울의 야경을 보며 오늘 하루 정말 여유롭고 풍성했음을 생각했다. ‘아웃 오브 사이트’는 그 날을 기분 좋지만 묵직하게, 해서 더욱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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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일과 극단 엘리펀트룸이 함께 만든 연극 ‘아웃 오브 사이트’는 [세월호 2019] 프로젝트의 여러 작품 중 하나이다. 이 때의 ‘세월호’는 단순히 그 날의 참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는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노력 없었던 과거와 그로 인한 상처투성이의 현재, 그리고 걱정되는 미래를 포괄하는 ‘제자리’라는 뜻의 고유명사로서 기능한다.

‘아웃 오브 사이트’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스스로를 백수라 칭하는 과외 선생. 극단을 탈퇴한 연극배우. ‘대신 다스린다’는 뜻의 ‘대리’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다스리기보다는 그냥 대신만 하고 있는 대리가 바로 그들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은 많은 현대인들과 비슷하게 ‘존버’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별다른 인생의 목표도, 즐거움도 없이 그저 주어진 생을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그냥 버티는 것도 아니고 ‘존나게’ 버텨야 했던 이유에서 연극의 메시지가 도출되는 듯하다.

과외 선생이 힘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술 마실 줄만 알지 위급 상황에서는 아무런 대처도 못하는 무능한 교수 때문이며, 아무렇지 않게 아이의 자기소개서를 써 달라고 하는 학부모 때문이다. 대리가 힘든 이유는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소모해버리는 윗사람들 때문이고 연극배우가 힘든 이유는 연기가 하고 싶어 들어온 이에게 주구장창 다른 일만 시켜 먹는 이들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존나게’의 원인이 되는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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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국종 교수의 에세이 ‘골든 아워’를 읽었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 책을 묻는다면 ‘데미안’이라고, 내 인생은 ‘데미안’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곤 한다. ‘골든 아워’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데미안’을 마무리 지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내 앞으로의 인생에 방향으로 뻗어 나갈 의미 있는 점을 찍었다고 말하고 싶다.

책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결국 하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기본만 하면 된다. 이국종 교수는 의사다. 의사의 일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해서 그는 사람을 살릴 뿐이다. 선진국 수준의 중증 외상 의료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그가 그토록 애쓴 이유는 사회의 정의나 개인의 명예, 대단한 꿈 따위에 있지 않다. 그저 그것이 사람을 살린다는, 안타까운 죽음을 없앤다는 의사로서 업의 본질과 직결되기에 그토록 사방팔방에서 욕을 먹어가면서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기본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 기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권력, 물욕 등에 눈이 멀어 많은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업의 본질을 지키기 못하고, 몇몇 인사담당자들은 적합한 인재를 뽑는다는 업의 본질을 지키지 못하며, 몇몇 경찰들은 부조리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업의 본질을 지키지 못한다. 딱 그 기본만 제대로 해도 좋을 텐데 그 기본이라도 해내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해서 난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 부끄러움을 업을 해내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한 명의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딱 기본이라도 끊임없이 지켜가는 데 쓰고 싶다. 살아가면서 이 기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어른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봐왔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 두렵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내 다음 세대에게 그런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어른이 가진 기득권을 남용해 내 다음 세대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어른이란 건 대단한 게 아닐 것이다. 기본을 알고 그것을 충실히 지켜가는 이들을 일컫는 말일 테다. 본질조차 제대로 못 지키면서 대단한 것을 해낼 수 있는 듯 구는 건 그냥 껍데기다. ‘아웃 오브 사이트’ 속 주인공들의 대사로 등장하는 어른들은 어른보다는 껍데기에 가깝다.

‘세월호’를 소재로 삼은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논해지는 보편성이 좋았다. ‘아웃 오브 사이트’는 결국 일상의 이야기이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연극은 특정 참사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하게 퍼져 있는 의식과 행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히려 특정 참사만을 연상시켰다면 덜 암담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곳이,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할 곳 자체가 ‘세월호’라는 생각에 아득했고 답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살아가야 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다짐밖에 없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되자는 다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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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세월호 - 제자리
-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


일자 : 2019.04.04 ~ 07.07

시간
평일 8시
토/일요일 3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티켓가격
전석 15,000원
전작품 패키지 : 48,000원

주최/주관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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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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