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을 말하다 - 달나라에 사는 여인 [도서]

글 입력 2019.04.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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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달을 좋아했다. 밤길을 걷다 우연히 꽉 들어찬 보름달을 만나면 설명하기 힘든 기분 좋음을 느꼈다.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오늘 달이 참 밝네요"로 번역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즐겨 보던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 <월량대표야적심>이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라는 뜻임을 알았을 때도 유난한 벅차오름이 있었다. 이처럼 달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나를 쉽게 파고들었다. 소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을 보기로 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책을 고르는 기준으로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거나, 즐겨보는 장르이거나,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거나 등 다양하지만 소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을 본 까닭은 오로지 제목 덕이었다. 아름답지만 아늑히 먼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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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는 얇았지만 탄탄한 짜임새가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덕에 완독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소설은 손녀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원치 않았던 결혼, 재향군인과의 만남, 그 남자와의 추억과 그리움 속에서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엄마, 아빠,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등 주변 인물들을 진하게 그려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은 외할머니인 리아였다.(이 소설 속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름이다) 사랑을 했고 그 책임을 졌다. 초반부 단지 완고한 성격의 고리타분한 노인인 줄만 알았던 그녀의 인생은 그 어떤 인물보다도 굴곡 있었다.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사실 리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기다림이 창백한 겨울빛에 부끄러워하며 지내다가 봄의 푸른 두드림에 불안스럽게 잠에서 깬다. 내 기다림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초조하지만 달콤한 노란 미모사 속에서 당신을 이해하지도, 스스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 p109



이 책의 줄거리를 처음 접했을 때, 영화 <님포매니악>이 먼저 떠올랐다. '성적 욕망이 가득한 여인', '딸이 음란한 시를 썼다며 손찌검까지 했다.' 등의 문구 때문이었다. 여성에게 사회적 제약이 특히 심하던 시절, 본능을 따르고자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떠오른 영화는 <러브 익스포져>였다. 4시간에 육박하는 긴 시간 동안 별의별 사랑이 다 등장하는 이 영화는 거룩하면서도 난잡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도, 공감하며 보지도 못했지만 여느 영화보다 강한 임팩트를 남긴 건 사실이다. <러브 익스포져>에서 보여준 사랑의 범주는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그것을 껴안기에 충분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러브 익스포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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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항상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그녀는 붉은 테두리를 두른 조그만 검은색 노트에 자신의 사랑을 써 내려갔다. 평생 동안 남몰래 글을, 시를, 사랑을 썼다. 달나라에 숨어 지내며 그토록 꿈꾸던 사랑인 재향군인을 만난 후 그녀는 항상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검은 노트를 선보였고, 내어줬다. 자신이 바랬던 사랑의 완성판을 만들어 낸 후에야 그 비밀스러운 노트를 내려놓았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재향군인과의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니였을까. 그녀는 그의 입을 통해 그녀의 사랑이 옳았음을, 미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공주님, 정말 공주 같은 습성을 갖고 있군요. 당신은 주변 세상을 신경 쓰지 않으니 세상이 당신을 신경 써야겠네요. 당신의 의무는 오직 하나, 존재하는 것뿐이에요, 안 그래요?"


- p34



그리고 할머니는 미친 게 아니라 그저 하느님이 한결같이 평범한 여성이 만들고 싶지 않은 때 시적 영감이 떠올라 특별하게 창조한 피조물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의 말이 너무 좋아 웃음을 터뜨리고는 재향군인도 미쳤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광기를 모르는 거라고 응수했다.


- p55



어쩌면 나에게도 붉은 테두리의 검은 노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짝사랑한 여인에 대한, 꿈꾸는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을지도. 차이가 있다면 나는 아직 이 노트를 드러낸 적이 없다. 누구에게 보여준 적도, 스스로 인지한 적도 없다. 그 사랑이 불완전해서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이 없어서 인지는 확실치 않다.

말하지 못한 사랑은 달과 지구 그 중간 기나긴 허공 어딘가를 떠돌고만 있을 테다. 비록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세상의 인정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가 만족할 뚜렷한 사랑을 품었던 그녀가 아주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
- MAL DI PIETRE -


지은이 : 밀레나 아구스(Milena Agus)

옮긴이 : 김현주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이탈리아 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116쪽

발행일
2019년 04월 15일

정가 : 12,500원

ISBN
979-11-965176-6-3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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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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