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년과 미성년의 아이러니 - 영화 '미성년'

그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글 입력 2019.04.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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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제야의 종소리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또 새해네’, 내지는 ‘또 한 살 먹었네’와 같은 상념으로 1월 1일을 맞이한다. 이런 나에게도 참으로 특별했던 1월 1일이 있었는데, 바야흐로 새해와 함께 스무 살이 찾아왔던 해였다. 그날 제야의 종소리는 마치 스물을 알리는 경종과도 같았다. ‘나도 이제 어른이니 술집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 편의점에서 맥주도 살 수 있겠지?’ 정도의 설렘으로 스물을 맞이한 걸 보면, ‘성인’ 두 글자가 주는 무게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느 누가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자정에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며 한숨을 쉬겠는가. 보편적인 열아홉이라면 성년이 주는 부담보다는 스물이 주는 기대에 더 눈길이 가는 게 당연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법적 성인과 어른은 동의어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어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아직도 어린 제 자신을 보며 한숨을 쉬곤 한다. 반대로 이미 훌쩍 커 버린 거울 속 자신과 마주하곤 과거를 반추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 생은 사실상 ‘성년을 기다리는 미성년’과 ‘미성년을 반추하는 성년’, 이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셈이다.



성년과 미성년의 아이러니


이 영화는 성년과 미성년의 아이러니를 집요하게 꼬집어 그 경계를 흩어놓는다. 사춘기를 겪어야 할 사람은 ‘윤아’와 ‘주리’인데, 작품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아’의 엄마 ‘미희’와 ‘주리’의 아빠 ‘대원’이다.

‘윤아’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 손님에게 홀대를 받기도 하고, 철없는 엄마 대신 출생증명서를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가 미성년자라서 하는 수없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엄마가 벌인 일을 수습하느라 정작 자신의 인생은 뒷전이 되어버린 ‘윤아’를 보면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아마도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신세가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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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인물은 사실 ‘미희’다. 열일곱에 ‘윤아’를 낳아 키우며 자신의 젊음은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도박에 빠져 집을 나가버렸다. 돈은 돈대로 없고, 젊음은 젊음대로 없고, 남은 건 딸 하나뿐인 ‘미희’의 사춘기는 그의 20대와 함께 증발해버렸다.

성년이 될 준비조차 못한 채 맞이한 성년의 무게는 ‘미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찼을 것이다.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 없다는 ‘미희’의 말이 단순히 공상에 빠진 철없는 엄마의 푸념으로만 들리진 않는 이유다.

‘미희’는 작중에서 가장 미성년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랬기에 ‘윤아’는 더욱 성년처럼 자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윤아’는 미성년 시절의 성장통보다도 성년의 부담이 주는 압박감을 먼저 느꼈을 것이고, 그가 툭툭 내뱉는 말에 담긴 가시는 어릴 적부터 그를 짓눌렀던 성년의 무게 탓에 더욱 날카로워졌을 터다.

영화 초반, ‘윤아’는 한 번도 ‘미희’와 ‘대원’ 사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고민하지 않는다. 이후로도 ‘윤아’의 행동은 대부분 확신에 가득 차 있고, 그 확신의 기원은 책임감이다. 어쩌면 가장 성년스럽고도 가장 미성년스러운 캐릭터가 ‘윤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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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리’는 꽤나 평범한 인물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다니던 청소년, 학교에서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공부를 하던 학생. 그렇기에 ‘주리’에게 아빠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성년의 카테고리에 속해야 했던 ‘윤아’와 달리 ‘주리’는 철저히 미성년의 시각으로 아빠의 바람을 관조한다. 그가 느끼는 불안과 망설임이 초반 서사의 긴장감을 더하고, 나아가 후반 서사의 감동을 더한다.



성년들의 아이러니


‘윤아’, ‘주리’, 그리고 ‘미희’가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면 ‘영주’와 ‘대원’은 확실히 성년의 카테고리에 속한 인물들이다. ‘영주’는 성년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책임감과 결단력이 대단하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보다 딸이 아침을 걸렀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남편이 혼외자식을 만들었다는 분노보다 자신 때문에 임신부가 조산을 해버린 것 같다는 죄책감이 더 큰, 그런 인물이 바로 ‘영주’다. ‘영주’가 느끼는 감정과 행하는 행동에는 미숙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성숙한 나머지 감탄과 애잔함이 느껴질 정도다. 만약 ‘영주’가 ‘미희’에게 분노와 복수심을 품었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막장 서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영주’가 완벽한 성년이었기에 작품의 초점이 ‘주리’와 ‘윤아’의 성장에 맞추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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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가장 짜증나는 인물이 ‘대원’이 아닐까. 잘한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우유부단하기까지 하고, 강단도 없으며 책임감도 없다. ‘대원’ 캐릭터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대원’은 ‘미희’처럼 미성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주’처럼 완숙한 성년이 되지도 못했으며, ‘주리’와 ‘윤아’처럼 객관적 미성년에 위치한 것도 아니다.

‘대원’은 성년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미숙한, 너무나 어린 언행을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우유부단한 ‘대원’이 아파트의 명의자이고 통장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작품 속 아이러니는 성년과 미성년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된다. 결국 ‘대원’은 참 짜증나는 캐릭터지만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그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성년과 미성년의 아이러니는 후반부에 더욱 돋보인다. 인큐베이터에서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는 ‘미희’의 아들을 보러 간 인물은 ‘미희’도, ‘대원’도 아닌 ‘주리’와 ‘윤아’다. 사실 ‘미희’가 제 아들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던 까닭은 그만큼 이별이 빠를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정을 줘 봤자 자신만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대원’이 아들을 보러가지 않은 까닭은 자명하다.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의 소멸이지 해결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대원’은 ‘미희’와 아들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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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리’와 ‘윤아’는 달랐다. 특히 ‘윤아’는 엄마가 이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면 자신이 키우겠다며 학교까지 그만 둘 생각을 한다. 성인이 생각하기에 ‘윤아’의 선택은 지나치게 과감하고 불안정하다. 영화 전반부에서 ‘윤아’가 보여줬던 결단력은 성숙함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의 결단은 미성숙함을 반사한다. 느끼지 않아도 될 책임감과 갖지 않아도 될 부담이 ‘윤아’를 성년 영역으로 밀어 넣었지만, 아직은 어린 고등학생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부분이다. 나아가 아이의 죽음을 끝까지 외면하던 ‘윤아’에게 현실을 마주하도록 손잡아 이끈다는 점에서 ‘주리’가 성년에 한 걸음 다가갔음이 나타난다.

이들에게 일련의 사건들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일종의 픽션과도 같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잔혹한 진실과 이별을 경험해야 했던 미성년들은 한없이 어리고 한없이 성숙한 방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대원’은 회피로, ‘영주’는 인내로, ‘미희’는 망각으로 현실을 여과했다면 ‘윤아’와 ‘주리’는 있는 그대로 삼켜버린다. 말 그대로 ‘삼켜버렸다.’ 어리기에 직관적일 수 있었고, 용감했기에 마주할 수 있었다. 미성년과 성년의 타협, 결국 결말에서 ‘윤아’와 ‘주리’는 가장 자신다운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소화한다.

*

언제쯤이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마 평생 어른을 동경하기만 하다 늙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는 미성년을 낭만화하거나 성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윤아’와 ‘주리’를 비출 뿐이다. 담백해서 솔직하고, 솔직해서 아름답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서 그들은 자신을 택했다. 어른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면, 그럼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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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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