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채우지 않아도 아름다운 삶의 순간, 와비사비 [도서]

불완전함의 주된 내용이 불충분함이라면.
글 입력 2019.04.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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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지 않아도 아름다운 순간, 당신에게 그런 순간은 언제인가?

오로지 나와 내 주변을 흐르는 공기만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주로, 밤에 한강을 뛸 때 그런 순간을 느끼곤 한다. 내가 감히 뒤엎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자연에 다가가는 순간, 거친 호흡과 더는 빨라질 수 없는 심장 박동이 나에게 주는 기묘한 고요함의 순간이다.

몸이 힘든 것도 잊게 되고, 종일 고민이었던 것들도 모조리 잊게 되고 오직 나와 한강에 가끔 보이는 학과,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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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면 내가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를 잊게 되고, 낮 동안 품었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잊게 된다. 낯선 이들에게 어디서 온 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고, 한강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의 반짝이는 불빛들을 보며 나의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출퇴근 시간에는 지치고 힘들었던 감정의 대상이었던 전철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전철이란 것이 얼마나 기다란지, 한참이나 머리 위로 거대한 소리가 울린다.

한강과 좀 더 가까운 부분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강에 뭔가 물고기라고 부를 만한 생명체가 있을까 궁금하지만, 우리 아빠가 예전에 했던 말처럼 그들도 시간을 낚으러 간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헬스장에서 근육운동을 할 때는 사실 신경 써야 할 점이 많다. 10시 30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시간 제약이 가장 크기도 하고, 누가 기구를 사용하고 있으면 원하는 시간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러닝은 그런 제약이 없다. 뛰고 싶은 시간에, 뛰고 싶은 장소만 있다면 뛸 수 있다. 오로지 자신의 몸만 있으면 그 무엇보다 강하게 뛰는 심장을 가질 수 있다.

처음에는 정말 뛰기 힘들어서 스스로 암시를 걸기도 했다. 터널을 뛰면서, 만약에 여기서 불이 난다면 내가 이 속도로 느릿느릿하게 쉬었다 갈 것인가. 생각하니까 터널을 한 번도 쉬지 않고 5분 만에 달려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귀찮고 힘들다는 핑계로 자신에게 한계를 주었다. 그 뒤로는 쉬웠다. 내가 전에 5분도 뛰었던 사람인데 10분은 뛰지 못할까. 한강의 다리와 다리 사이를 한 번에 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1시간도 쉬지 않고 뛸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한번 뛰고 돌아오는 날이면 12시간을 죽은 듯이 잠들었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7시에 잠시 낮잠을 자려고 했는데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니 다음 날 아침 7시였던 적도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한강으로 달리러 나가는 이유는 거기서 온전한 나의 삶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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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와비사비>는 평범하지만 충만한 삶에 관한 책이다. 아무것도 없지만, 완벽하지는 않지만, 불완전하고도 만족스러운 삶에 관한 이야기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완벽한 것이 아니고, 또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며, 없는 것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보는 이들이 채울 수 있도록 미완인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불완전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책이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역시 실천이 가장 어려운 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이 만족의 비결이다. 그저 수용하고, 신뢰하고, 포용하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왜 자연의 상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뛰었을 때 행복함을 느꼈는지 알 것 같다. 자연이 단점, 문제점, 고민거리, 질투심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나에게 아무런 거부감없이 늘 받아주고, 나는 거기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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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사비란?

와비는 단순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깨달으면서 생기는 감정이고, 사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배어 나오는 깊고 차분한 아름다움이다.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을 와비사비라고 부른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단어 설명에 왜 이렇게 하나하나 집착하고 설명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읽다 보니 저자가 영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몹시 힘든 일이 있었고,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아름다운 일본어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 듯했다.

어떤 단어를 정의하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의미를 알고는 있지만,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어란 사실 알지 못하는 거라고도 한다. 그 말을 떠올리고 있자면, 내 의견을 입 밖으로 말하기 힘들었던 과거의 내 모습은 사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어를 안다고 생각하면 또, 하나의 문장으로 그 단어를 제한하고 한정 짓는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이 또 특별했던 점은 와비사비에 대한 단어 설명으로만 거의 60장을 쓴다는 것이다. 사실 책 전체가 와비사비에 대한 설명이긴 하다.

우리나라에만 있고 외국에는 없는 말을 설명하려면 이 정도의 정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저자가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기에 이렇게 쓸 수 있었지 않을까. 실제로, 책 속에서 저자가 만난 일본인들에게 와비사비가 뭔지 물어보면 다들 "와비사비는 와비사비" 정도로만 대답한다.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무의식의 체계를 다른 무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와비사비라는 단어를 오래 정성을 들여 이해시켜 준 점은 결국에는 아주 만족스러운 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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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의 의미

책에서 말하는 <완벽의 의미>라는 부분이 아주 인상깊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광고 속에서 '완벽한 삶'은 끝도 없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 광고들은 괴로운 감정과 힘들게 얻은 경험은 모두 제거한 후, 예측가능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인간의 경험만을 판매한다. 빛나는 머릿결, 완벽하게 보이는 손톱, 주름 한 점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해변에서 달리기. 그림 같은 집에 앉아 있는 모습, 말끔하게 손질된 손, 주름 하나 없는 피부의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는 모습, 혹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오는 세련되게 가꾼 완벽한 집 사진, 완벽하게 예의 바른 아이들, 완벽하게 다듬어진 몸매.

신상 가방만 있다면, 근사한 자동차만 있다면, 고급 헬스장 회원권만 있다면 우리의 삶도 완벽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한 사실이 있다. 광고는 세트장에서 제조된 순간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며, SNS에 올라오는 세련된 사진들은 실제 있는 삶이 아니라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상표를 과시하는 것들이다.

사실 우리도 이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알아내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간 완벽함들을 추구하기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내야 할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정말 삶에서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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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탐험하기

진로와 진로 외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라던지, 돈을 앞으로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침 방안들을 제시한다. 보통 이런 부류의 자기계발서는 한순간의 위로가 되거나, 모호한 말로 끝나기가 쉬운데, 이 책이 그런 책들과 달랐던 것은 애매한 `와비사비`의 단어를 정의하는 부분이나, 위의 사진과 같이 구체적인 지침서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을 들여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읽고, 노트에 생각을 써보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다.

저자가 특이하다고 생각한 점은 미니멀리즘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것 또한 하나의 완벽함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자신을 비난한다면 절대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어떤 하나의 특별함을 좇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가 편안한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큰 와비사비라고 말한다.

예전에 디자인 CA를 읽으면서 공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민다는 게 뭔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방식을 제안해줘서 좋았다. 책상 위에 있었으면 좋을 만한 것을 놓으라는 거나,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 집을 꾸미라는 거였다. 그 글은 아주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고, 내 집이 어떤 집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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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요일에는 가능한 약속을 잡지 않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아는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업무와 관련된 일도 모두 제쳐놓고, 내가 어디까지 달려왔는지를 잊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

알람도 맞추지 않은 유일한 일주일 중 하루.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서 외식을 할지, 집에서 밥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이상하게 토요일만 되면 식욕이 없고 의욕도 딱히 없어서, 집에서 식사하게 된다. 밥을 먹고 나면 힘이 솟아서 씻고 준비를 해서 뭐든 잔뜩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딱히 어디를 간다거나 하는 목표 지점은 없다.

한참 걷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카페에 들어오게 된다. 거기서 밀려두었던 생각을 쓰고, 책을 읽고, 가계부를 정리하거나 운동에 대한 루틴을 기록한다. 가끔은 내 앞에 놓인 것에서 멀어져 창밖으로 바라본다. 차가 지나가고, 사람이 지나가는 그것들을.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 그러면서도 내가 나일 수 있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순간. 한강에서 달리는 순간만 나에게 와비사비일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한 그 순간, 내가 무언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나로 존재해도 되는 순간, 그 순간 자체가 와비사비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내가 나라는 사람이라서,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이제껏 살아온 과거의 나에게 감사해지는 그런 토요일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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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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