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치않는 성적위협을 받는 타이그리스 이야기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Volcano Island>
글 입력 2019.04.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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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이 친절한 사람이 있다. 애초에 천성 자체가 남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해서 이성의 호의 역시 귀하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닫는다. 그것은 호의가 아니라 성적 호기심 충족을 위한 겉치레였음을.




애니메이션, Volcano Island



VOLCANO ISLAND, Anna Katalin Lovrity



이번에 소개할 애니메이션 Volcano Island는 애니메이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Anna Katalin Lovrity와 그녀의 팀이 제작한 것으로, 원치 않는 성적 접근에 젊고 순진한 여성이 마침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재미있는 점은,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원치않는 성적 접근을 열대 화산섬에 사는 암컷 호랑이에 빗대었다는 것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여전히 자연의 힘이 원시시대와 같이 작용하는 외딴 화산섬이 있었다. 젊고 순진한 암컷 호랑이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그곳에 살아간다. 어느 날, 그녀의 여성성이 그녀보다 나이 많은 수컷 호랑이의 눈에 띈다. 수컷 호랑이는 그녀에게 맹렬하고 위협적으로 접근하지만, 암컷 호랑이는 수컷 호랑이의 열띤 접근에 점점 더 겁먹고 두려워질 뿐이었다. 원하지 않는 성적 접근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도망치기만 했던 순수했던 암컷 호랑이는 외딴 섬에서 끝내 탈출할 수 없었지만, 자연의 도움으로 결국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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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하다는 것은



젊은 여성들이, 특히 어린 여성들이 일부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어린 여성들의 젊음과 그때만의 반짝이는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막 여성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가 가장 순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암컷 호랑이도 그렇다. 주변 환경에 무난히 적응해 안락하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낯선 수컷 호랑이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 관심이란 암컷 호랑이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 이성의 성적 접근에 경험이 없던 어린 암컷 호랑이에게 수컷의 관심은 어디를 가도 그녀를 긴장하게 하는 위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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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던 어린 암컷 호랑이의 내면은 화산섬으로 비유된다. 그래서 외부 및 내부의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져 진정 그녀가 원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화산섬은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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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호랑이를 물리치고 고요한 화산섬 꼭대기에 있는 암컷 호랑이는 원치 않는 성적 관심에 처음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운 사회 초년생일 수도 있다. 혹은 숱한 시간이 지나 많은 경험이 응축된 성숙한 어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자신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강력한 상대로부터 자유를 찾은 암컷 호랑이가 화산의 용암을 마시는 모습은 용감하고 평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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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이야기를 어둡지 않게



쨍하고 밝은 색감의 이 애니메이션은 다소 어린이용 우화를 다룬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두운 주제를 어둡게 표현하지 않은 점이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매력이며 힘이다. 실제로 이 애니메이션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 서울 구로 국제 어린이 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의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대되거나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많은 여성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투명하고도 채도 높은 색을 조합해 트렌디하게 표현한 것은 오히려 그런 어두운 이야기가 어둡게 묻히지 않길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점이 사람들에게 신선하면서도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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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표현적으로 Anna의 블록 모양 애니메이션은 종이 콜라주 같기도 하고, 일러스트를 판화로 찍어낸 듯 투박한 느낌이 섞여 있어 이중섭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기도 한다. 다른 매체에서도 소개되었듯 그녀의 용감하고도 거친 모양은 통제되지 않는 열대 화산섬의 분위기와 네러티브 상의 야생 호랑이들을 표현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떤 관객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원하지 않는 성적 관심을

이렇게 비비드한 스타일로 나타냈다."



이런 이국적 시각적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데엔 그녀의 도미니카 방문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그녀는 열대 화산섬이 있는 도미니카를 방문했을 때, 풍경이 너무 몽환적이고 감각적으로 다가와, 다음번 작업에서는 꼭 그것을 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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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Katalin Lovrity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데에 있어, 자전적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나의 십 대 시절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나는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났고, 나를 많이 신경 써주는 남자를 만났다. 나는 솔직히 그가 단순히 도움되고 친절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호의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때조차 나는 여전히 예의와 존중을 얻으려 노력했다.


후에, 많은 내 친구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더 많은 자신감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엔 이런 주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고, 여성들은 이런 경험을 나누는 데에 부끄러웠다.



또, 이런 이야기가 성폭행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쉬운 이야기가 아님을 느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례에 관해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에 꼭 필름으로 제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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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이고 용감한



어찌 됐건, Volcano Island는 외면받는 소재의 이야기를 신선한 방법으로 표현해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이뤄냈다. 그래서 Anna의 애니메이션은 실험적이고 용감하다.


차기작으로 Anna는 파리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가제 ‘레몬과 대리석’을 제작 중이다. 대담한 그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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