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폭력, 그럼에도 산다는 것 - 비엔나 소시지 볶음

연극 <비엔나 소시지 볶음>을 보고 나서
글 입력 2019.04.1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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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강원도 고성군 초입의 허름한 백반집. 서른을 갓 넘긴 재영이 이곳의 사장이다. 약혼자인 성진과 함께 이제 이곳을 떠나 푸드트럭 장사를 해보려는 재영. 그런데, 서울에서 회사 다니는 동생 재희가 연락도 없이 내려왔다. 아는 형이 사는 캐나다로 가겠다며 재영에게 손을 벌리는 재희. 게다가 처음 보는 사이일 줄 알았던 약혼자 성진과는 군대 선후임 사이였으며, 둘 사이는 꽤나 안 좋았단다. 이제는 재영의 결혼까지 반대하고 나서는 재희. 결혼, 푸드트럭, 이민으로 얽힌 세 사람의 갈등은 점차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서로가 외면해왔던 과거의 치부와 상처들까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도 언제 범죄를 당할 지 모르는 세상에 산다. 한창 시끄러운 성범죄나 데이트폭력을 비롯해 언어폭력, 감정폭력까지 너무나도 많은 양상으로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 또는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마저 나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폭력이 너무나도 많고 다양해진 세상이라, 폭력의 행위 자체가 문제 되는 것보다 폭력의 잔재를 극복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런 버거운 상황이라 타인의 폭력에 더욱 무관심해지고, 다변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내면이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화해간다.


그래서 타인의 폭력에는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 그것을 나아지게끔 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다. 타인의 폭력을 본인이 비슷하게 겪은 적있거나, 본인의 삶의 경계안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폭력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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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은 그런 수많은 일상 속 부조리에서 비롯되는 폭력의 굴레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특히 많은 이들이 겪었을 가능성이 다분한 폭력의 양상들을 나를 비롯한 주변의 모습과 너무나도 가깝게 그려내어 공감을 넘어 씁쓸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재영과 재희, 그리고 재영의 약혼자 성진을 중심으로, 재영과 재희 남매가 아버지로부터 겪은 가정폭력, 그리고 재희가 성진으로부터 겪은 군대에서의 폭력, 이들의 동네가 재개발되며 겪는 외부적 폭력, 그 이외에 동성애자인 재희에게 가해지는 폭력까지 사실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다지도 많은 폭력의 양상이 존재함을 환기했다.


하지만 이 연극이 괜찮았던 이유는 어떤 주제의식이나 관점을 설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레 그렇듯 현실이 이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한다- 라는 식의 결론맺기식이 아니다. 폭력에 대해 어떤 부가적인 관점을 첨가하며 행동개선의 의지를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연극엔 상처와 폭력의 잔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존재들의 몸부림만 남아있다.


매스컴이나 기성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과장 으로 오히려 폭력을 폭력으로 바라보게함이 아니라, 폭력이란 결국 일생 속 한 형태로 존재함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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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를 비롯해 연극의 연출이나 많은 장치들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을 가장 아끼는 존재, 남자인 아들에게만 준다는 설정 등은 이 연극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고민하게 하기도 했다.


이 외에 인물에 반전이 가미되며 온전한 피해자와 악인을 구분짓지 않은 부분은 특히나 편견을 뒤틀며 한가지의 관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어, 연극의 결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런 세심한 고려가 결국 보는 관객이 온전히 연극을 상황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연극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참 애잔했다.남의 일인듯 바라 봤지만 폭력 속에서 살아가려는 생존의 형태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또 남의 폭력에는 이다지도 무관심할 수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바꿀 수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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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결국 이 연극도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 살아가는 순간부터 수없는 폭력에 초연해지기위해 발버둥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모습을 말이다.


이 연극은 그래서 극에 등장하는 폭력의 양상을 겪은 사람이 공감하게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폭력으로부터 거리가 있거나, 많은 폭력으로부터 무던해진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폭력으로부터 무던해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말이다. 내가 어떤 폭력을 받고 있는지도 희미해진 상황일지라도 결국은 생의 의지를 갖고 이겨내는 것, 그래서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 결국 나를 폭력으로 부터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속에서 여유가 없더라도 타인의 폭력에 스스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고민하는 행위 자체로도 또다른 누군가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과 덧붙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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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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