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브릿팝을 회고하다 - 맨체스터의 악동, ‘오아시스(Oasis)’ ①편 [음악]

영국의 팝 밴드 '오아시스(Oasis)'를 끄적이다
글 입력 2019.04.12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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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바나(Nirvana) 밴드의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를 기억해요. 난 그런 노래가 싫어요.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그런 노래가 싫었어요. 사람들이 헤로인에 취해 와서는 자기 자신이 싫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거, 우리는 싫었어요. 그런 건 별로예요. 그렇다고 내가 그 노래의 가사에 반발해서 이 곡을 썼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내 생각이 이래요. 커트 코베인은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괴로워 보였어요. 우리는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랐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기분이 좋았어요. 그냥 좋았다니까요.”


- 한 인터뷰에서, 노엘 갤러거



에디터 본인이 상당히 순화한 내용이다.

젊은 시절 노엘의 화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인터뷰 원본을 검색해보길 바란다.

조금 놀랄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이러한 연유로 만들어진 ‘Live Forever’는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가 되었다.



 

0. Intro : 참, 신기한 밴드.



아무래도 노엘 갤러거는 자신의 손에서 인생을 놓아버렸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나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쯤 그러지 않는가? 이렇게 살 거면 무엇을 하러 사나,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ㅡ등. 요즘 말로 ‘현타’라고 불리는 그런 순간들을 한 번쯤은 마주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원망스럽고, 인생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노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록 동생인 리암과 하늘이 두 쪽 날 수준으로 갈등을 빚었어도,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후유증에 시달렸던 때가 있음에도. 직설적인 수준을 넘어선 발언으로 뭇사람들을 당황시키곤 했음에도. 그가 삶의 끈을 놓았던 순간은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Live Forever’와 같은 노래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에게 밴드 오아시스(Oasis)란 유토피아, 다시 말해 이상향과도 같다. 이렇게 말했더니 철학과 친구가 뜻이 너무 모호하단다. 그 친구는 어떤 의미의 유토피아냐고 물었다. 나는 상상력을 극한으로 이끌어주는 이상향이라 대답했다. 필자는 평소에 말 그대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 사소한 순간이나 물체들에게 제멋대로 본인의 생각을 덧칠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람의 손을 거친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지하철에 있는 커피 자판기를 보면서 이 자판기 디자인은 누가 했을까. 자판기를 관리하는 사람은 있긴 할까.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커피를 좋아할까, 밀크커피일까 설탕커피일까ㅡ이렇게 상상의 파편을 끊임없이 덧붙인다. 생각의 파편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이다. 이 때 파편들을 한 자리로 모으지 못하면 단지 잡생각에 머무르게 된다. 아이디어(이를테면 글감)를 떠올리는 수준으로 나아가려면 이러한 파편들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그렇게 정신을 집중시켜 무언가를 끌어내어야만 한다. 과정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특별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 아이디어가 창작에 관한 것이든, 발명이나 발견에 관한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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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인물은 리암 갤러거.
왼쪽에서 그에게 혀를 내밀고 있는(...) 인물은 노엘 갤러거.
나는 리암의 보컬이 정말로 좋다.
'Champagne Supernova' 와 'Wonderwall'은
완전히 그의 목소리를 위하여 만들어진 노래다. 
천재 작곡자 노엘 갤러거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오아시스의 노래를 들으면 이 작업이 가능해진다. 이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도는 사념들을 한 데로 모아진다. 그래서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공상(空想)에 몰두하게 된다. 현실의 모든 잘잘못이나 의무, 도리를 벗어나 그저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유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순간은 나에게 흔치 않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금방 현실의 굴레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오아시스는, 이들의 노래는 나에게 이상향 그 자체다.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사념에 몰입할 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에디터의 마음 가는 대로 오아시스의 음악 세계를 파헤칠 것이므로, 오늘의 오피니언은 상당히 편파적(!)이다. 물론 이전의 글들도 늘 그랬지만 오늘은 더더욱.



 

1. 그들의 브릿팝 : 편안한 동시에, 곱씹게 만드는.



오아시스의 음반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작품 중 하나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이다. 그야말로 브릿팝의 절정이라 평가받을 정도다. 이 앨범을 포함하여 초기 오아시스 음악의 주를 이루었던 브릿팝ㅡ이 장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은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왜일까? 분명 오늘날의 사람들이 듣기에는 '낡고 단조로운, 진부한' 음악일 수 있는데. 필자는 그 이유가 노래의 '울림'에 있다고 생각한다.


밴드의 초창기 브릿팝 음악들은 하나같이 사운드가 퍽 따뜻하다. 단순한 코드로 이루어진 기타와 베이스 연주, 그리고 그러한 연주들을 뒷받침해주는 투박한 드럼 소리. 단순하기에 안정적이고, 안정적이기에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내면의 한 구석을 깊이 찌르면서 울림을 자아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초창기 밴드 시절 때, 특유의 로큰롤 사운드가 간단하고 친숙해서 좋았다고 말이다.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는 덤이다. 물론 멜로디가 간단하다고 해서, 보컬을 뒷받침하는 밴드의 반주가 투박하고 단순하다고 해서 무조건 마음의 울림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오아시스에게 그것은 ‘가사’다.



“Cos little by little

We gave you everything

You ever dreamed of

 Little by little

The wheels of your life

Have slowly fallen off

 Little by little

You have to give it all in all your life

And all the time

I just ask myself why

You’re really here”



  왜냐하면 조금, 조금씩

우리는 당신한테 모두 주었어

당신이 꿈꿔온 모든 것들

 조금, 조금씩

당신 생의 굴레들은

느리게 떨어져나가고 있지

조금, 조금씩

당신은 평생 모든 것을 바쳐야 해

 그리고 늘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

너는 정말 여기에 있냐고”


- Oasis, "Little By Little"


 

최대한 가사의 어감을 살리고자 노력하긴 했는데도 잘 모르겠다. 이들의 가사를 한국어로 옮겨 놓으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동한다. 처음에 가사를 보았을 때 완전히 이해하지는 않았음에도,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 내용들이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른다. 위의 가사에서 필자의 마음을 짓눌렀던 부분은 ‘조금씩 당신 생의 굴레들은 느리게 떨어져나가고 있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 너는 정말 여기에 있냐고’였다.

 

어쨌거나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다시 한 번 가사를 곱씹어보게 된다. 그러나 곱씹고 곱씹어도 의미가 온전히 와 닿지 않는다. 대체 원작자가 무슨 의도로 이 구절을 가사에 넣은 건지 모르겠는 부분들이 많다. 예컨대 위 가사에서 갑자기 ‘wheels of your life’ㅡ직역과 적절한 의역을 곁들이면 ‘삶의 굴레들’정도로 해석이 되는 어구를, 왜 굳이 가사에 넣은 것인가. 하지만 부분 부분의 가사들은 굉장히 감동적이고, 따뜻하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앞뒤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가사들일지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반복해서 듣게 된다. 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자꾸 듣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구절들을 또 다시 마주하고, 감동을 받고. 나름대로 가사를 해석하기 위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고ㅡ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가사와 어우러지는 간결한 밴드 연주가 이를 더욱이나 부추긴다.



  

2.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음악들.



4집과 7집을 제외하고 오아시스가 실험적인 시도를 꾀한 음반들은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의 노래들이 초창기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브릿팝 느낌과 비슷하다. 보수적인 밴드라고 칭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기에 혁신적인 음악을 원했던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맨날 똑같은 노래만 만든다고, 진부하다고 말하면서. 틀린 말은 아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다보면, 뭐가 되었든 간에 처음에 느꼈던 재미만큼은 덜할 게 분명하다.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예시로 들어 보자. 처음에 장난감을 샀을 때는 그토록 기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난감에 질린다. 컴퓨터 게임이나 패션 등으로 관심사가 변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그 장난감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갑자기 그리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오랜 시간 방치해두었던 장난감을 다시금 꺼내 들어보지만, 당연하게도 그 시절에 가지고 놀았던 것만큼의 재미는 없다. 그럼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당시의 나를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아,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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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2번째 스튜디오 음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전설적인 브릿팝 앨범 중 하나로 찬사를 받았다.

런던에 여행을 가면

이 앨범 커버를 촬영했던 장소에 꼭 방문할 것이다.


 

이들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물론 필자는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을 2년 전에 처음 들었지만, 지금 당장 이 노래를 틀어도 처음 들었을 때만큼 즐겁게 들을 수 있다!) 항상 비슷한 멜로디로 노래하기에 우리는 질릴 수 있다. 더 새로운 음악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문득 이들의 음악이 떠오를 때가 있다.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채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조금은 진부하고 낡은 노래들이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색깔에 다시금 빠질 수 있다. 그들은 변해버린 우리와 달리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변화라는 상태에 몸을 맡기며 이전의 내가 존재하긴 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에,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들은 참으로 소중하다. 그 존재들은 물리적으로는 변했을지 모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 그것을 마주했을 때의 그 상태로, 과거의 나를 안은 채로 꼿꼿이 서 있다. 오아시스의 음악 역시 그러하다.



 

3. 애정인지 증오인지 구별조차 잘 되지 않는, ‘갤러거즈’



이 밴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안다. 두 형제의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지 말이다. 어느 수준이냐면, 둘의 불화 때문에 밴드가 해체되기도 했다. 그리고 매 공연의 인터뷰마다 서로에게 폭언을 내뱉는다. (궁금한 사람들은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길 바란다.) 그런데 또 마냥 안 좋다고 확신할 수만은 없는 것이, 때로는 증오가 뒤섞인(?) 애정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엘이 리암에게 너(리암)랑 존 레논만 자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할 거라고 말한다거나, 리암이 형(노엘)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거나. 아무튼 제3자가 보기엔 참으로 신기한 형제관계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ㅡ불협화음을 낼 것만 같은 두 형제가 만들어내는 완전한 협화음ㅡ이 밴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해준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형제간의 불화가 밴드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수단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불같이 싸움을 반복하다가도 음악을 할 때만큼은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을 정도로 합이 잘 맞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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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정말 앳된 모습이다, 이 사진에선.

둘이 한 장면에 나온 사진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분노, 증오가 한 데 섞여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화목하지 않아서 필자는 오히려 더 좋았다. 취향이 이상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어쩔 수 없다. 모범에서 한 끗 이상 벗어난, 나사 하나 빠진 듯한 그들의 위태로움이 필자에게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정말로 할 말 다 하고 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속이 시원해서일까.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정말 오늘만 사는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의 무모함이ㅡ그리고 무모함이 빚는 훌륭한 음악들이, 필자에게 ‘자유’로 느껴져서일까.

     

형제들 각자도 참 쉬운 사람들이 아니다. 당장 두 사람의 전성기 시절 어록을 모아놓은 문서나, 어록이 등장한 인터뷰 장면들을 캡처한 사진들이 인터넷 등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밴드의 노래는 몰라도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곤 한다. 뒷목을 잡을 정도로 엄청난 수위의 발언들이 많지만, 그러한 반항적인(?!) 느낌이 밴드의 인기에 한몫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일화에 관해서는, 이후의 글들에서 조금씩 언급해보도록 하겠다.




4. Outro : 심심한 위로로 가득한 음악들



필자에게 오아시스만한 밴드는 그 어디에도 없다.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록밴드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 어느 밴드도 오아시스에 견줄 수는 없다. 난 아직도 고등학교 3학년 말에 'Wonderwall'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당시의 허무함을 이겨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이들의 가사를 음미하며 위안을 얻고, 멜로디를 좇으며 나의 의식을 집중시키고, 치유를 반복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결합은 안 했으면 좋겠다. 다른 오아시스 팬들이 들으면 분노할 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그냥 오아시스라는 한 밴드로서의 역사가ㅡ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번 1편은 그들에 관한 에디터 본인의 개괄적인 감상평을 위주로 기술하였다.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그들의 음반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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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숙사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

조만간 빨리 필름카메라를 구입해야겠다.



Maybe I don't really want to know

아마도 나는, 그렇게 알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
How your garden grows

당신의 정원이 얼마나 가꾸어졌는지
cause I just wanna fly

왜냐하면 난 그저 날고 싶을 뿐이니까

Lately did you ever feel the pain

최근에, 고통을 느꼈던 적이 있어?
In the morning rain as it soaks you to the bone

당신의 뼛속까지 적시는 아침 비 속에서 말이야



Maybe I just want to fly

아마도 나는 그저 날고 싶은 거야
Wanna live I don't want to die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Maybe I just want to breath

아마도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싶은 것이겠지
Maybe I just don't believe

아마도 나는 그저 믿지 못하는 것이겠지
Maybe you're the same as me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을지 몰라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우리는 저 사람들이 보지 못할 것들을 보니까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너와 나는 영원토록 살게 될거야



Maybe I will never be

아마도 나는 되길 원했던

all the things that I want to be

그 어떠한 것도 되지 못할지 몰라

But now is not the time to cry

하지만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Now's the time to find out why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야 할 때지

I think you're the same as me

나는 네가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해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우리는 저 사람들이 보지 못할 것들을 보니까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너와 나는 영원토록 살게 될거야



We're gonna live forever

Gonna live forever


영원토록 살게 될거야

영원토록


- Oasis, 'live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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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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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이소현 에디터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밴드라 그런지 흥미가 동해서 정독했네요ㅎㅎ 저도 wonderwall을 특히나 좋아해서 알람으로 맞춰놓고는 항상 노엘의 기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조금 딴 소리이긴 합니다만, 오아시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Supersonic을 보면서도 참 많은 감정을 느꼈는데, 에디터님도 오아시스의 팬으로서 분명 복잡미묘한 생각들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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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프위의포뇨
    • 오아시스의 재결합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악틱 몽키즈가 다시 재결합한 모습을 보니 에디터님의 말대로 오아시스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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