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와 상처, 그리고 또 상처 아래 살아가는 이유 [공연]

폭력이라는 삶의 굴레를 보여준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글 입력 2019.04.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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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3시, 대학로.

어쩐지 아주 이른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보다 아무 의미 없을 것만 같은 오후 두세 시가 가장 나른하고 힘이 든다. 이른 아침에는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씻고 준비를 해서 나가면 되고, 저녁 늦은 시간이라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 부담 없이 챙겨입고 나가면 된다. 그러나 오후 3시는 굉장히 애매하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는 애매한 장소에 있다. 종로 5가역에 내려도 되고, 혜화역에 내려도 되지만 어디서 내리든 굉장히 애매한 그 장소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거나 중간에 조금씩 걸어야 한다.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지하철만 내리면 굉장히 힘이 든다. 하루 동안 모아둔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돌아오는 길도, 가는 길도 지하철을 힘겹게 오르며 지하철역을 벗어나는 순간, 그동안 견딘 무게가 한 번에 느껴진다.

하루도 외출하지 않는 날은 없지만, 집에서 24시간을 있다는 건 정말 답답하게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잡아 몇 시에 어디에 가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하루의 식사 계획과 운동 계획은 늘 세워두고 실천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런 쓸데없는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에 다른 작고 사소한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겨운 것은 아닐까. 남들은 사소하게 여기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거라고.

*

하지만,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서라도 매번 공연을 보는 이유는 나에게 연극은 매우 큰 위로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는 순간, 나는 이것을 정말 좋아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많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나의 지겨운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걸까.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것들. 아주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자극되는 미각처럼, 연극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자극들이 모여 자기 내부의 무언가를 건드리면, 감각은 감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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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이라는 제목의 연극이었다. 사실은 팸플릿을 받아들고 읽었을 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삶이라는 폭력의 굴레, 라는 글자를 보면서도 냉소적이었다. 무슨 삶을 그렇게까지 평가하나 싶기도 했고.

줄거리는 간단했다. 평생 호구로 살 거라고 외치는 '성진', 그 사람과 결혼할 거라고 우겨대는 '이재영' 그리고 정확하게 있을지 모르는 캐나다와 거기 사는 형에 대해 환상을 가진 '이재희'. 연극이 시작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연극을 하는 사람 특유의 어색하고 비일상적인 말투도 한몫했다.

그러나 연극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재희가 등장해서 과거가 파헤쳐질수록 그들의 상처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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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등장인물 셋

연극은 재영과 재희, 성진 세 명이 등장한다. 무대의 장소는 바닷가의 한 식당, 그리고 재영과 재희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방파제. 가운데에 놓인 식당의 의자와 식탁을 방파제가 둘러싸고 있다. 방파제는 마치 산처럼 되어있어서,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닳고 닳도록, 수많은 남자를 만나본 재영은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험담을 듣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너무 많은 욕을 듣고 살아서, 농담에도 웃지 못하게 된 사람. 그런데도 꿈을 간직한 사람이다.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서, 성진과 함께 푸드 트럭을 운영하면서 삶을 바꿔보고 싶어한다.

가족이 죽고, 사람들은 자기를 욕을 하는데도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찾고, 노력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범죄를 저지른 남자도 만나보고, 걸핏하면 때리는 남자도 만나봤다고 하면서, 성진과는 결혼할 거라고 하는 그 모습도 나에겐 이상하게만 보였다.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고 하면서 왜 성진에게는 결혼을 확신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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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의 동생 재희는 캐나다로 갈 거라면서 갑자기 재영을 찾아온다. 멋도 모르고, 다른 나라로 갈 거라고 하는 재희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바보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모든 걸 버리고 떠나려고 하는 모습도 대책 없었다.

호구로 보이기만 했던 성진의 모습이 극의 초반에서는 세 명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들에게 퍼주는 것을 좋아하고, 받을 것 생각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마치 바람직한 인간상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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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그러나 성진이 재희가 군대 선임이었다는 사실이 밝히게 되면서 극이 긴장감 있게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그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바른 사람이고, 호구인 줄만 알았던 성진이, 군대 후임 재희에게 했던 짓.

비엔나 소시지볶음을 두 개 더 먹었다는 이유로, 재희에게 무릎을 꿇고 개처럼 비엔나 소세지 한 통을 다 먹으라고 한 성진.

이 장면을 극에서 보여주는 방식이 괜찮았다. 직설적으로 재희가 관객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둘 사이가 그런 사이라면 일어날 만한 상황을 만들어서, 관객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했다. 거기서부터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직접 언급하기에는 감정적으로 너무 벅찬 그 이야기는 절대 피해자의 입에서는 나오지 못했다.

"그럼 나를 때려, 하루에 한 번씩.. 아니 원하는 만큼!"

재희의 상처를 하루에 한 번 자신을 때리는 것으로 갚으라는 성진, 그는 비겁했다. 감탄스러울 만큼 비겁한 그의 말은, 그가 가해자라서 가능한 걸까.

"우리가 다시 만난 게 다행이야. 적어도 과거를 사과하고 오해를 풀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들에게 군대란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막연히 아주 끔찍한 곳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만약 내가 2년간 사회에서 격리되어 주는 밥만 먹고, 도무지 어디에 쓸지 모를 훈련을 받고, 부모님도 친구도 보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그 자체만으로도 괴롭고 힘들고 견딜 수가 없는데, 그 조직 내부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 괴롭힘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죽고 싶을까.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을 거야. 자기가 살았다는 기록이 남지 않게끔,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싶었을 거야. 내가 사라진다는 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처가 자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슬프고 힘들고 괴로웠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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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은 성진에게 묻는다. 진짜 자기 동생을 괴롭혔느냐고, 그 말에 성진은 변명한다. 옛날에 자기를 호구 취급하던 애 중에 재희를 닮은 애가 있었다고, 공부를 잘했다고. 그리고 재희가 남자화장실에서 남자랑 둘이 나오던 소문을 들었다고.

아버지가 죽은 방파제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재희가 외치던 소리. 사람들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고, 쟤네들은 진짜 거기로 그걸 해? 더러워. 그런 걸 하도 겪다 보니 이제 사람들이 웃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고 하는 그의 외침. 그런데도, 그의 누나 재영은 맞받아 소리친다.

"그런 걸 이해할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니?"

그토록, 연극에서도 이해해주지 못할 만큼,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아니 그냥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고, 그렇게 자기 하루를 망칠 만한 일인지. 그럼 평범한 남녀가 사랑한다고 하면, 사귄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하는 섹스를 상상하는 게 당연한 일인가, 해보면 그것도 아니면서 왜 동성애자가 사귀는 모습을 떠올리면 섹스부터 연상하는 걸까. 동성애자의 모습을 보면, 섹스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 그다지도 큰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일이었던 걸까.

"가족은 이해해줘야지." 하고 재영의 손을 붙들고 애원하는 재희에게 담긴 애달픔이 너무나 서러워서 아주 오랜만에 연극을 보다 울고 말았다.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구질구질해져야 하고, 얼마나 자존심을 숙여야 하고 접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내 눈물에 혼자서 당황해서, 내 눈물의 의미를 공감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주변을 의식하고 살펴보고, 남들 모르게 눈물을 닦아내는 내 모습이 순간 가엾어지고 말았어. 사실은 말이야, 재희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으로 운 게 아니란 것쯤, 잘 알고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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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재영의 가계부 안에서 30만 원을 훔쳐낸 재희에게 비엔나소시지 야채볶음을 엄청나게 큰 그릇에 담아서 다 먹으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는 안 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 연극은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극한의 공포심을 돋구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재희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재영의 눈치를 보며 비엔나소시지 야채볶음을 억지로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만 눈을 가리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견뎌야 했다. 폐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어둠으로 가득 찬 좁은 장소로 들어오면 그런 느낌일까.

'섭식', 먹는 행위는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다. 배고픔을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설탕과 지방과 소금 최상의 조합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행위는 분명 행복하지만, 그걸 넘어선 섭식 행위는 사람에게 가장 잔혹한 괴로움을 준다. 강요된 섭식 행위, 강박적 섭식 행동.

그 장면을 보는 것은 이전 장면에서 나온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의 일이어서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더 자극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재영은 잔인했다. 동생 때문에 실패한 엄마의 계획을 혼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비겁하게 아버지의 구타를 벗어난 동생이기 때문에, 가족임에도 동생을 그렇게 대할 수 있었다. 동생이 성진에게 군대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군대 밖인 현재에 똑같은 고통을 주려고 한다.

처음에는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아무 생각 없을 거라고 믿었던 인물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인간에게 증오와 복수심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체념하게 되고, 체념 속에서 살면서도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엿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과 그런데도 삶이라는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노력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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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유년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반찬이, 유년에 대한 좋은 기억은 자라면서 상처가 되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을 아픔이 된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가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되기까지,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잊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욱더 큰 상처가 되어 대물림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왜 살아가는지 모를 때가 다가온다. 그때 어려움을 극복했더니 또 다른 어려움이 몰려오고, 그 상처를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다른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만신창이가 된 스스로 모습이 보인다.

왜 사는 걸까, 이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그런데 또, 디스토피아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끔찍한 좀비가 등장하거나, 주변 사람이 다 죽는데, 삶에 부정적이었던 주인공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으려고 한다. 왜? 삶,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 어쩌면, 사람들이 그런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는 이유는 힘들고 아프지만,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보다는,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단순함이 더 쉽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적어도,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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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은 성진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안 물어봤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성진은 다 좋아한다고 하지만, 재영은 꿋꿋이 물어본다.

청국장, 이라고 답하는 성진의 말에 재영은 "애들은 안 좋아하겠네."라고, 그들의 앞으로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가 그려진다.

*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그들이 그토록 큰 상처를 서로 입히고, 입으면서 그렇게 다 함께 살아가는지. 그는 왜 나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도 나의 곁에 있는 건지. 나는 이 세상에 큰 상처를 받았는데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여느 때 같았으면 대책 없이,

사실 사람들은 그렇게 큰 상처를 받고 극복해나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건지도 몰라.

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마냥 그렇게만 써버리고 볼일 다 본 사람처럼 무책임하게 나가버리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의미 있는 연극,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 폭력과 상처의 굴레에 대한 연장선에 있는 연극을 같은 작가의 극 <7번 국도>에서도 만나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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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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