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Dear. 당신께 [사람]

엄마와 어머니 사이의 당신
글 입력 2019.04.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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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당신께

 


잘 지내나요? 어릴 땐 손편지도 썼던 것 같은데, 이젠 제대로 된 안부 인사조차 못 하고 있네요.


이런 사이가 됐어요, 어느새. 항상 제 선택을 존중해 주고,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줘서 고마워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에 가지 않았을 때, 당신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나 자신을 자책했어요. 하지만, 내 선택을 후회할 순 없었어요. 이기적이지만 내 삶이니까….


근데 당신은 당신 삶을 살지 않았죠. 당신을 위한 순간이 없었어요. 공부하란 말 한 번, 숙제하란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당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남들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그런 가정사가 있어도 전 아무렇지 않았나 봐요.


19살에 이복 남매란 사실을 알았을 때도, 실은 저만 당신의 핏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내 친오빠가 당신에겐 ‘이혼한 전 남편의 첫째 와이프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도요.


그러니까 당신은 내 아버지란 사람의 두 번째 아내인 거고, 당신은 친자식도 아닌 아들을 친자식처럼 기르고 있었다는 거죠. 같이 사는 저도 속을 정도로 친자식처럼. 친오빠가 군대에 갔을 때, 당신은 울었어요. 지금 당신은 그 아들을 거의 30년간 기른 셈이죠?


당신의 남편이란 사람은 1원도 준 적이 없어서 오롯이 당신 혼자서 저희 남매를 키웠어요. 바쁜 당신이라, 우리 가족이 밥 한 끼 집에서 같이 먹은 적은 없었죠. 그래서 난, ‘집밥’이 뭔지 몰라요. 무슨 맛인지, 어떤 느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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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책하지 마세요, 어머니. 나 이렇게 잘 커서 여기에 당신께 쓰는 글도 적고 있어요.


아직 이 나이에 졸업도 못 하고, 성적도 안 좋고, 미래도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내 인생은 내가 감당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 삶이, 내가 지금 이렇다고 해서, 엉망이라고 질책하지 마세요. 당신 삶이 곧, 날 평범하게 키우는 거였는데 왁자지껄하게 빙 돈 후에야 지금의 자리에 와서 미안해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진 않아요. 남들은 경험할 수 없는 걸 일찍이, 20살부터 했으니까요.


단 하나, 후회가 있다면...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된 상황인 것 같아요. 당신이 60세가 넘어서도 뼈 빠지게 일하고 있는 현재 상황 말이에요. 내 어중간한 독립 때문에, 아직 고정 수입이 없는 학생 신분 때문에.


내가 불면증으로 약을 먹고, 다른 정신적 증상 때문에 낮에도 약을 달고 사는 건 정말 지극히 내 멘탈이 약해서이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는 게 체질에 안 맞아서예요. 이복 남매란 사실은 사람들이 다 보는 이 글에 아무렇지 않게 적을 만큼 진짜 우리 가족의 진실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죠. 성인이 돼서 진실을 알았어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정도의. 근데 그걸 난 초등학생 때부터 조금씩 알게 됐죠.


하지만, 당신이 충분한 사랑을 줬기에 난 정말 괜찮았어요. 교우 관계도 원만했고, 공부도 알아서 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했어요. 참지 않았고, 지지 않았고, 부정하지 않았으며, 거짓말도 한 적이 없어요. 20살이 되기 전까지는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약을 먹는 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문제란 뜻이에요. 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비록 당신이 무뚝뚝해서 표현은 잘 못 했지만, 표현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힘 내봐요. 다시 좋을 날이 분명 올 거예요.


이건 밑도 끝도 없는,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하며 버텨야, 그래야 살죠.

 

사랑해요, 엄마.


  

From. 당신의 하나뿐인 가족, 딸








[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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