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귀자 ‘모순’ – 어떤 태도로 삶을 견지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 [도서]

글 입력 2019.04.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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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 p.9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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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작가의 책 ‘모순’의 첫 장에서부터 읽은 구절들이고 끝까지 잊지 못할 구절들이다. 주인공 안진진의 불현듯 외치는 소리로 시작하는 첫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예감했다. 이 책을 새벽시간에 계속 찾게 되겠구나.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라고, 나조차도 모순이라고 다들 한번쯤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나 또한 온전히 나만 존재할 수 있는 새벽에 항상 나의 모순을 깨닫곤 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혼자만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들춰볼 수 있는 시간대인 새벽에 나는 나의 모순을 자주 마주했다. 밝은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우울한 영화와 책들을 찾아 보고 다시 에너지를 얻는 나, 우울한 생각들을 글로 쓰며 토해내야지만 더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밝아지는 스스로를 보며 모순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바로 나에게 존재한다고 늘 생각해왔었다.


예전에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불안정한 느낌들을 토하듯이 적어두곤 했던 적 있다. 그 때 만든 가상 공간의 계정 이름 또한 모순 그 자체였다. 힘들고 지치던 순간들을 적어두고 계속 상기시켜야만 오히려 편안해지고 안정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항상 나라는 사람은 새벽이라는 시간대를 통해 새로운 감정들을 환기시키는 모순된 습관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 기억들이 살아나면서 이 책을 집중해서 읽을 때는 웬만하면 새벽에 읽고자 했다. 그래야만 이 소설의 주인공 안진진과 내가 완벽히 일치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도 없고 인생이 크게 흥미로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것에 내 모든 것을 걸어볼 정도로 치열했던 적이 없어 더더욱 불안하고 무기력한 일생이 고민인 청춘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나 또한 흐르는 물에 표류하듯, 흘러가는 인생에 표류하는 나뭇잎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다. ‘인생에 양감이 없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앞에서 말한 그 모든 고민들을 아우르면서도 동시에 적절하게 표현한 말 중에 이 구절을 뛰어넘을 만한 것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 모순을 읽기 시작했다. 이 모순이라는 책이 내 인생의 양감을 조금이라도 늘려주기를 기대하면서.


안진진은 자신의 인생에 양감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온 생애를 다 걸어 살 것이라 결심한다. 그리고 그 말을 꼭 지키라는 듯이 연속되는 모순들을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끊임없는 갈등과 고민을 한다. 비록 그 온 생애를 걸어 고민하는 주요 문제가 두 남자 사이에서의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게 잠깐 아쉬웠으나 당시 90년대 시대상을 반영하여 감안하고 보면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중략) 김장우와 만나면 나는 이렇게 선명해진다. 그는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고 나는 가끔 그것들을 못견뎌한다. - p.104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김장우를 만나면 선명해지는 모순적인 25살의 안진진의 인생은 지겨울 정도로 모순의 연속이다. 정반대의 기질과 성향을 가진 나영규와 김장우. 기질과 성향, 외모 그 모든 것이 한 몸처럼 같았던 쌍둥이였지만 결혼이라는 시기를 맞이하면서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이모. 모순적인 상황들이 연속되고 그 상황 속 안진진의 태도와 감정들은 더욱 모순 그 자체이다. 안진진이 김장우를 사랑하지만 나영규와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것도, 집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집 밖을 떠난 기간이 더 오래된 아버지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도, 불행과 고난이 몸집을 부풀리며 끊임없이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더 큰 활기를 띠는 어머니의 모습도 모두 이 책의 제목에 충실하다.

 

'모순'에 나오는 모순들은 인생은 마치 함수처럼 a를 대입하면 항상 b가 나오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듯 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a를 대입하면 b가 나올 수도, c가 나올 수도, 어쩌면 a 그대로 나올지도 아니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모순을 마주하였을 때 취하는 안진진의 태도는 이해가 되면서도 참 짠하게 느껴졌다. 안진진의 인생과 그녀의 감정들과 그 주변인들 그리고 그 소설을 읽는 나까지. 문득 우리는 모두 짠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불행과 행복을 감내하고 아등바등 버티고 살아내는 짠한 존재.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 p.17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2



모순은 내가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해답을 주기보단 그 고민의 깊이를 더 세밀하게 만들어 주는 의미 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도록 해주었다. 또 어떤 삶을 살아야지 결심하기에 앞서 어떤 태도로 삶을 견지해야 할지 고민부터 하도록 해주었다.


싱숭생숭할 때 혹은 혼자 있는 새벽에, 버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볼 때…… 온갖 상념들이 정리되지 못하고 머릿속을 떠다닐 때, 이런 생각과 고민이 왜 드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고 근원을 모르는 불안함으로 불안정할 때 ‘모순’은 그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모아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고민을 하도록 했다.


모순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인생을 살면서 되돌아 보고 싶어질 때, 나의 태도를 조용히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 다시 모순을 꺼내 읽고 그 순간만큼은 안진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고. 그리고 나의 인생 또한 안진진의 말처럼 탐구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해 나가도록 해야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했다. 내 인생의 부피를 그래도 겨자씨 한 알 정도는 심을 수 있도록 늘려준 무언가가 있다면 그중 하나는 이 책 모순이 될 것이다.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책 '모순'의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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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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