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감정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로, "함익"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글 입력 2019.03.31 19: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 바보 같은 나



나는 바보다. 나는 함익을 처음 듣고 햄릿의 순화된 우리말 발음인 줄 알았다. 왜, 미드 프리즌브레이크 스코필드를 우리말 애칭으로 '석호필'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근데 좀 비슷하지 않나?ㅎㅎ)


나는 바보다2. 불과 며칠 전 <굴레방 다리의 소극>을 보고 연극을 잠시 쉬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또 연극을 보러 가게 됐다. 크크.. 나는 아무래도 고통을 즐기는 사람인가 보다. 분명 연극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두통에 휩싸이며 후회할 것이 눈에 보이는데, 또 결국 보러 가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아냐, 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정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극장을 찾았겠으나, 굴레방다리의 소극을 본 뒤로부터 어차피 또 이해 못 할 것이니 그냥 새로운 극장에서 멋진 배우들 연기라도 보러 가자ㅎ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좋은 건가?)


그리고 실제로 연극을 보러 갈 때 새로운 극장을 탐방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미술 전시는 많이 봤어도 연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짝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2 햄릿, 그리고 <함익>



나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것을 정말 정말 싫어했다. 그런 나를 걱정하신 부모님께서는 억지로 만화책이라도 읽게 하셨다. 덤벙대는 내 성격이 만화책 읽는 데에는 잘 맞았는지, 몽테크리스토 백작, 80간의 세계 일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세계 고전 명작들을 만화책으로 섭렵해갔다. 햄릿도 그중에 하나였다.


거의 15년 전 일이라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딱히 흥미도 없고 내용도 이해가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애써 기억해내자면 그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정도? 그러나 이 말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지도 기억이 안 난다. 한 마디로 그냥 모르는 이야기다. 그래서 '햄릿'이라는 이름은 아주 익숙할지언정 새로운 창작극을 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맹맹한 눈으로 살펴본 연극 <함익>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보았던 연극인 <미스 줄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무대, 유머 따위는 없을 듯한 진중한 분위기,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각색극 느낌.. 배우들은 열정적으로 연기할 것이며, 그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나. 그리고 나만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터져 나오는 관중들의 박수소리.. 덩달아 손뼉 치는 나...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100분을 멀뚱히 앉아서 보낼 순 없으니 <함익>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한다.



MSY_7525.jpg

공연 사진 중 한장. 솔직히 무섭다.



연극 〈함익〉은 2016년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기를 맞아 고전 '햄릿'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창작한 연극이다. 재창작 과정에서 햄릿의 성(性)과 배경을 바꿔, 30대의 재벌 2세이자 연극과 대학교수인 함익의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굴레방다리의 소극>도 그렇고, 다른 나라의 우울한? 원작을 우리나라에 들여와 새롭게 풀어내는 연극이 꽤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원작에는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만 통할 수 있는, 한국인만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요소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한 면에서 극 중 취해진 대한민국의 재벌 2세 함익은 겉으론 화려하지만, 속으론 비리와 상류층 사회에서 감수해야 할 마음고생으로 뒤덮여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시놉시스를 읽으며 함익이 '비극'을 전공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나는 극 중에서 독특하고 고독한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가상의 학문처럼 비극을 전공했다는 설정을 넣은 줄 알았는데, 초록창에 조금 찾아보니 연극학에서 세부 전공인 듯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생소한 설정이기에, 비극을 전공한 이유도 함익의 삶과 분명히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3 연극을 본다는 것



연극 <함익>과 무관하게 사실 얼마 전부터 짧게라도 '연극을 본다는 것'에 대해 짧게 생각을 남기고 싶었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 짧게는 100분, 길게는 210분 동안 배우들과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호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투, 표정, 분위기 모두 내 앞에서 나를 위해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니깐.


그래서 내 철칙이 '아무 생각 없이 연극을 보지 않는다'였다. '심심한데 연극이나 보러 갈까?'라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는 많이 있어도 한 번 볼 때 3만 원~5만 원 가까이하는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는 드물었고, 나 또한 가격이 부담되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최대한 마음이 맞는 친구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연극을 봐왔다.


그렇지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이어가면서 연극을 보게 될 기회가 정말 많아져서 연극이 부담 없이 자주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내가 마음속에 간직했던 철칙(개똥철학)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언짢기도 하다.


영화만큼 스스럼없이 '연극 한편 때리러 갈까?' 가 정말 괜찮은 건지, 나 혼자는 살짝 불안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가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두세 달에 한 번 연극을 볼까 말까 했던 지난날보단, 지금이 연극 문화의 활성화를 돕고 있는 것은 확실하니까.


그렇게 애매-한 상태로 난 또 연극을 보러 간다. 아마 계속 보다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함익_2019.jpg
 


-시놉시스-


재벌 2세 함익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다. 마하그룹의 외동딸로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의 일상은 화려하다. 상류층 인사들과의 사교모임, 남자친구 필형과의 근사한 데이트 등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쓴 인형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복수와 일탈을 꿈꾸면서 숨 막히는 온실 속에서 생기 없는 꽃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함익 앞에 복학생 연우가 나타난다.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외형만 화려했던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는데….




전예연.jpg


[전예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