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평범함 이겨내기, 세월호 추모 공연 [공연]

네가 사는 세상 속에서 가장 유사한 답을 찾아서.
글 입력 2019.03.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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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때는 한없이 무겁게도, 또 어떨 때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을 정도로 가볍게 쓰게 되는 것이 글이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 애에게 나는 "인생이 꼭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아니 그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생산성이 없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에게도 나의 그 말은 웃음거리일 수도, 술자리에서의 안줏거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 그 말의 무게는 무엇보다 무거웠다.


나의 아픔을 숨기고 싶어 하는 거짓말일 수도 있었고,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각오일 수도 있었고, 이따위 아픔은 나에게 상처조차 주지 못한다는 배짱일 수도, 또는 포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문장에 대한 해석이 끝도 없이 나올 무렵이면, 그게 뭐 어떤데 하는 마음이 된다.


답이 없으면 가장 답에 유사한 것을 고르는 거지.


그러나 그게 통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시험지 안에서였지. 시험지 밖으로 튀어나와서, 글자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입체적인 세계에서는 글자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아무리 글자로 표현하려고 해봤자 그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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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이 말했다고 하지. 낮이 무서운 건 너무 밝아서 자신이 드러날까 봐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누군가는 또 말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보다, 그런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부끄러워해야만 한다고.


아니, 세상에서 가장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부러워서 질투가 나와 하는 말일 거지. 그 순수함이, 그 당당함이, 물들지 않은 영혼이 부러운 거야. 그렇게 살고 싶거든, 하지만 그렇게는 못 해.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람인지 정해져 있기 때문이야. 만약 사람이 변했다, 싶은 사람은 변한 모습이 원래의 자기 자신인 거지.


누군가 나한테 그러더라. 참 밝아 보인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되물었어.


"제가요?"


그리고 속으로는 생각했지. 세상엔 얼마나 어두운 사람이 많은 거야, 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나는 평균과 비교하면 딱히 어두운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정의하는 나와, 타인이 정의하는 나 사이의 괴리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 스스로가 정의한 나의 정체성이 중요한 건가, 아니면 평균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가 중요한 건가. 정해진 것은 없어. 다 네가 살면서 부여하는 우선순위인 거지. 너는 어떤 것에 중요도를 매기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을 위해서 참고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


그런데 사실, 그 말을 한 상대에게는 잘 웃지 않고 무뚝뚝하고, 인간관계에 서툴고, 쉽게 감정 다툼을 하고, 살이 쪘고 실수도 많이 하고, 등등 많은 단점을 보였던 터라 그 밝아 보인다는 말에 사실은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지.


20살 서울로 떠나오고 나서 배웠던 수많은 가식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보여줄 수 있구나.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나의 성격을 인정받고, 누군가 타인에 맞춰서 바꾸지 않아도 내가 있을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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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1번지 7기 동인 단체사진
 



아웃 오브 사이트




평범한 사람이 등장한다. 특별할 것 없고 조금은 고된, 일상의 일을 해나가는 어떤 하루다. 약간의 거짓말과 몇 가지 선택들, 조금의 게으름과 평범한 성실함이 있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유난히 사람이 적은 그 날의 버스에서 그는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오늘의 빈 버스는 왜 비어있을까, 언제부터 비어있었을까.



짧은 글에서도 꽂히게 되는 단어라던가, 구절이 있다. 경험에 따라, 사람의 성격에 따라, 혹은 그 날따라 달라지는 감성에 따라서 멈추게 되는 구절은 달라질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글을 쓰기 전에 <아웃 오브 사이트>의 줄거리를 읽으며 멈추게 된 곳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저 글 자체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서술하고 있지만, 인물이 감정에 벅차 힘겨워한다는 것이 마음을 끌었다. 보통 그런 걸 '공황 상태'라고 한다고들 하지.


갑작스럽게 나 자신을 가만히 두기 힘든 상태.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석할 여유 따위는 없어지고 그냥 박차고 어디로든 나가고 싶어지는 순간. 한 사람이 차마 이겨내기 힘든 감정이지만, 그런 게 평범함이라고 하면 중요한 건, 잘못된 건 네가 아니라는 거지. 잘못됨의 원인을 찾는 일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 상황을 이겨내고 견뎌내고, 그 상황이 왔을 때 평소보다 덜한 충격을 받는 상태로 발전해야 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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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빛




내가 아는 누가 또 누구누구가 지금 무얼 하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토록 모멸감이 드는 이유는 무어야.



익숙해진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평소와는 다른 일을 해보기를. 내 삶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남의 시선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할까.


도서관에 가면, 놀러 가고 싶은 유혹을 참고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모두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고, 카페를 가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강을 뛰다 보면, 내가 멀리서 온 것처럼 이 사람들도 아주 멀리서 맨몸 하나로 뛰어왔겠구나 알 수 있고, 헬스장에 가면 저마다 각자의 하루의 규칙을 갖고 몸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이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한다면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는 '마조히즘'이란 용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자신보다 더욱 강한 벌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에게 주는 벌. 즉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가학 행위이자, 방어 기제에 속한다.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수 없어서 두려워하는 자가 택하는 가장 슬픈 선택. 그리고 마조히스트들은 희생자를 고른다. 희생자들 본인은 마조히스트를 괴롭히는 가학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조히스트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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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어떤 사람.




아직 끝났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참사 앞에서, 우리가 생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기억의 자리에 망각을 들여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세월호 참사의 키워드 '제자리'에 대해서 여러 연극이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상영된다. 4월 4일부터 14일까지 '겨울의 눈빛', 4월 18일부터 28일까지 '디디의 우산', 5월 2일부터 12일까지 '아웃 오브 사이트', 5월 23일부터 6월 2일까지 '바람 없이', 6월 6일부터 6월 16일까지 '어딘가에, 어떤 사람', 6월 20일부터 30일까지 '더 시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7월 4일부터 7월 7일까지 '장기자랑'으로, 총 7개의 연극이 14주간 상영될 예정이다.


연극을 볼 때 가장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내가 대충 읽은 줄거리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즉, 연극의 줄거리는 앞으로 연극에서 보여줄 내용이 아니라, 배경 지식과도 같다. 영화의 줄거리라고 하면 거의 스포일러와도 같은데, 연극은 그게 아니다. 줄거리를 읽어도 막상 극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완전 다르다.


사실 나는 영화 스포일러를 봐도 막상 영화를 보면 다 까먹고 몰입하고 결말이 나온 뒤에야 겨우 연결짓는 사람이라 스포일러에 대한 분노는 크게 없는 편이다. 그래도 연극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도와줄 거로 생각하고, 줄거리를 읽고, 줄거리에 대한 글을 한 편이나 쓰고 들어가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래도, 적어도 평범함이 이런 것이라면, 평범함 속에서 평범함을 감당하기 위한 힘을 기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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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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