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ON 과다니니 크레모나 1794

공연 <금호 악기 시리즈 이수빈 Violin> 리뷰
글 입력 2019.03.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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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금호아트홀, 젊은 음악가 두 사람과 200년이 넘은 고악기가 만났다. 특별한 만남인 만큼 기대가 컸고, 연주자의 연주 영상들과 프로그램 곡들을 들어보며 그 기대감은 점점 커졌다. 또 한편으로는 궁금한 마음도 적지 않았다. 1700년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악기는 200여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소리를 낼까? 그 악기를 임대받아 연주하고 있는 촉망받는 젊은 아티스트의 음악은 어떤 것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고, 결과적으로 공연은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힘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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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8번 G장조, Op.30/3
Allegro assai
Tempo di Minuetto, ma molto moderato e grazioso
Allegro vivace
 
외젠 이자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슬픈 시 d단조, Op.12
 
 
I N T E R M I S S I O N
 
 
벨러 버르토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제1번, Sz.86, BB94a
Lassú. Moderato
Friss. Allegretto moderato
 
카미유 생상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d단조, Op.75
Allegro agitato
Adagio
Allegretto moderato
Allegro molto


공연의 문을 여는 베토벤 소나타 8번은 첫 곡인만큼 연주자와 악기를 소개하는 기분으로 연주되었다. 빠르고 경쾌한 도입부 속에서 나는 왜인지 오히려 탁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느낄 수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를 전공자나 애호가만큼 많이 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태까지 내가 들어본 바이올린 음색 중에서는 상당히 탁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고음 보다는 부드러운 중저음이 강한 과다니니 크레모나였다. 그래서 저음이 중심이었던 2악장에서 표현이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1악장과 3악장 역시 훌륭했다. 특히 연주자의 테크닉적인 기량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빠르고 힘 있게 활을 긋는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피아노 연주자의 뛰어난 기량 역시 첫 곡에서부터 잘 드러났다. 예고, 예대를 수석으로 졸업 및 입학하고, 수많은 콩쿠르를 휩쓸었던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바이올린이 주목받는 무대임에도 피아니스트의 연주 역시 돋보이는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베토벤 소나타는 첫 곡답게 정석적이고 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이어지는 세 곡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느낌의 곡, 그렇기에 이어지는 곡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곡, 첫 곡으로서 훌륭한 선곡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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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곡은 외젠 이사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슬픈 시, 이름도 낭만적이지만 실제 곡은 이름을 능가할 만큼의 낭만과 압도적인 아우라를 갖고 있다. 공연 전 프로그램을 들어볼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곡이고, 또 첫 곡을 들으며 중저음이 강한 이 악기가 진가를 드러내는 곡이 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러한 내 기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곡이 공연 전체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나를 사로잡은 곡이었다.

도입부부터 나는 순식간에 연주에 빨려들었다. 내 귀가 의심될 정도였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완전히 뒤바뀌었고, 교과서 같은 베토벤의 연주가 언제 있었냐는 듯, 거대한 힘과 감정이 공연장 전체를 메웠다. 묵직한 파도가 끈적하게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압도되었다. 웅장하고 휘몰아치는 듯한 곡, 강렬한 중저음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곡이었다. 마치 이 곡 하나를 위해서 공연을 찾은 듯, 나는 10여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홀린 듯이 연주를 감상했다.

인터미션 후에는 버르토크와 생상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버르토크의 작품은 예전에 피아노 공연을 찾았을 때 처음 들어봤는데, 당시 클래식이 낯설던 내게는 가히 충격적이고 난해한 곡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된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랩소디 1번 역시 독특함을 넘어서 파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괴기한 행진 같은 이 곡은 나를 또 한 번 새로운 감정의 세계로 인도했다.

공연은 생상의 소나타 1번으로 마무리되었다. ‘동물의 사육제’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에게까지 잘 알려진 생상을 바이올린 소나타로 만나보는 것은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1·2악장도 매력적이지만, 연주자의 기량이 돋보이는 3·4악장이 압도적이었다. 빠른 속주와 고난도의 테크닉으로 가득 채워진 3, 4악장에서 연주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듯이 연주했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관객은 거대한 박수소리로 이에 화답했다.

앵콜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왈츠 센티멘탈이었다. 앞선 프로그램 곡들과는 또 다른 고혹적인 매력을 품은 곡이라, 예상치도 못하게 나의 마음을 홀렸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내 귓가를 맴돌던 곡이다. 멋진 피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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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귀국한 바로 다음 날 공연을 올리느라 리허설이 부족했다던 이수빈 바이올리니스트, 그러나 그는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선물해주었다. 피아니스트 박진형과의 호흡도 모자람 없이 훌륭했다. 200년 넘은 고악기의 시간이 담긴 묵직한 음색과 젊은 두 아티스트의 만남, 오랫동안 잊지 못할 무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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