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면을 벗은 후 얻게 되는 자유에 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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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가 마음에 쓰이면, 수많은 단어들 사이에서도 유독 그 단어만 빛을 밝힌다. 요즘 내 눈을 빼앗는 단어는 이것이다. 진심, 그리고 자유. 둘 다 'ㅈ'으로 시작하는 것이 단어로만 본다면 조금은 막연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이들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최근에 새롭게 정립한 <자유>라는 존재와 내가 깨닫게 된 아주 소중한 이야기를.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는다'는 말의 속뜻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아주 겁내는 사람이었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들보다, 약간의 인연이 있던 사람들로부터 내 모습이 마음대로 판단되는 것이 더 싫었다. 그게 내 전부는 아닐 텐데.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내 자신을,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숨어들었나 보다. 비공개인 각종 sns와 삭제되는 연락처들, 비공개 프로필 사진은 그렇게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였고, 그 속에서 내 사람들과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나 보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가을방학 -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



시간은 작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친구들과 베트남 하노이로 여행을 간 날이었다. 푹푹 찌는 열기와 축축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로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듣는 내내 푹푹 찌는 여름날의 하노이보다, 선선한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좋았다. 잔잔한 멜로디가 여행의 들뜬 마음을 차분히 앉혀주었고, 불 꺼진 호텔 방,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에어컨을 켜고 보송한 침구와 함께 하는 발라드라.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절대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영상 중간쯤에 이 곡을 설명하는 보컬 계피 씨의 소개 글이 등장하는데, 그것을 보며 나는 정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뒤통수에서 원수에게 얻어맞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인생의 이름 모를 구원자가 갑자기 나타나 한 대 딱밤을 때리며 선물을 주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2분 15초에 기타 소리와 함께 등장한다. 바로 이 글이다.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을 '베스트 앨범'에 비유한 곡입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진솔함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사랑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동안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이는 많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염세적이라 느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릴 준비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사랑이 있다.


그것은 거창하지도 않고, 그저 내 좋지 못한 부분까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모습만을 보이기 위해 나를 숨기고 포장하는 일은 비교적 쉽지만,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진솔함에는 그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고 했다.


그 속에서 내가 보였다. 나를 감추기에 급급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 노력했던 내 자신. 내 사람들 속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했던 나의 모습들. 나는 분명 사랑을 한 적이 있을까?


소개 글을 맞닥뜨린 후 들리는 노랫말은, 그저 흘려가며 듣기 좋은 발라드의 잔잔한 노랫말만은 아니었다.



사람이 다 똑같은 것은 아냐

그치만 크게 다를 것도 없어

가끔은 남들이 웃을 때 함께 웃고 싶어


사랑에 실패하는 건 괜찮아

사람에 실망하는 게 싫어

그런 나로 살아가야만 하니까


  

그날 이후 나는 진솔함, 용기, 자유라는 단어가 보이면 돌아가 한 번 더 눈 속에 담고, 한 번 더 그날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다시금 그때의 울림을 되새겼다.




한 아티스트의 고백 ; 저는 저를 많이 사랑한 적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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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 하루살이(dayfly) 앨범 커버



그리고 그날의 사랑이라는 정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준 순간이 등장한다. 나는 딘(dean)이라는 아티스트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날은 그의 신곡이 11개월 만에 새롭게 발표되는 날이었다.


사실 딘은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였다. 그런데 요즘은 보다 달라진 감성으로 자신만의 쓸쓸하고 허무한 감정을 담은 곡을 만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전에 싱글 앨범으로 발매된 '인스타그램'이라는 곡이다. 그 곡은 쉴 새 없이 인스타그램을 하며 느끼는 괴로움과 복잡한 심경을 담은 곡으로, 허무하고 공감되는 가사가 돋보인다. 때문에 이번에 발매되는 신곡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성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무려 11개월 만의 컴백이었다. 국내 활동도 거의 없었던 그였기에, 나는 한껏 기대와 설렘을 안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그의 모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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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음원이 발매되는 시간.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약 2시간이 지난 밤 8시가 되어서야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그의 신곡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장문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귀가 아닌 눈으로 먼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는 버스 안이 아니었다면, 울 수만 있다면 울고 싶었다.


그는 여태껏 자기 자신을 크게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저는 이 세상 앞에 나의 완벽하고 좋은 면만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어요.

(...)

작년의 인스타그램을 지나쳐 올해의 하루살이까지, 저는 제가 그동안 가둬놓았던 그림자 같은 나를 마주했어요. 딘이 아닌 그냥 나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을 인간으로서의 나쁨과 멍청함, 연약함 또 어두웠던 제 과거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죠.


이건 제가 했던 일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솔직한 일들이었고 대단치 않아도 언젠가 이 앨범이 나온 이후에는 제가 지금보다는 더 괜찮은, 아니 더 나다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저를 많이 사랑한 적이 없었거든요.


 

내가 정말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의 가슴 아픈 고백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멋지고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그림자를 오롯이 혼자 버티고 감췄을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노래를 듣는 내내 아프다 아프다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고마웠다.


내가 가을방학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좋지 못한 부분까지 진솔하게 보여주는 용기가 사랑이라고 느꼈듯이, 그도 지금 자신을 사랑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가 딘이라는 유명한 아티스트가 아닌 인간 권혁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용기를 낸 모습에서 진심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떠올렸다. 내가 외면하고 있는 내 등 뒤의 그림자는 지금 어떤 모양일까.




황금 새장을 떠나는 새의 그림 ;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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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금 용기와 사랑의 감정을 한 걸음 더 발전시키게 된 날이 찾아온다. 그날은  『행복을 그리는 화가 ; 에바 알머슨』 전시회를 보러 간 날이었다.


일상 속 행복을 그린 작품들 사이에서도 나의 눈길을 끈 작품이 있었다. 그 그림은 황금 새장을 떠나는 새의 모습이었다. 촬영이 금지된 전시회라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작품을 지나치는 와중에도 이렇게 느꼈던 것 같다. 이 그림만은 절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림으로 남기지 말자.


황금 새장에 갇힌 새는 호화롭게 살 수 있다. 밥도 제때 먹을 수 있고, 안락한 곳에서 생활하며, 적의 위협을 겪을 위험도 없다. 아마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 속 새는 힘찬 날갯짓으로 새장을 나서고 있다. 옆에 설명에는 아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진실을 말한 후 얻게 되는

자유에 관하여 그렸습니다."


 

아, 그렇구나.


새장에 갇힌 새는 안전할지는 몰라도, 새로운 세상을 알지 못한다. 새장을 나서는 데는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 새장을 나서면, 그 아이는 상상도 못 한 아름다운 바다를 만날 수도 있고, 숲속의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라고 말했다.


순간 갇힌 세상에 살고 있는 내 자신과 진솔한 용기를 내디딘 앞선 아티스트들의 발자취가 동시에 겹쳐졌다.


앞선 가을방학의 노래와 딘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창하지 않고, 그저 미운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 에바 알머슨의 진실을 밝힌 후 얻게 되는 자유에 관하여,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생각했다.


좋지 못한 그림자까지 인정하고 보여주는 용기와 그 이후 얻게 되는 해방감, 그리고 사랑.


서로 다른 단어지만 나는 이들이 모두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가면을 벗은 후 얻게 되는 자유에 관하여.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내 자신을 계속해서 감추려는 노력과 그 속에서 느꼈던 안정감, 다른 이들의 시선 속에서 벗어나려던 발버둥과 그 속에서 느꼈던 안락한 두려움. 이는 모두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 감춰버린 하나의 가면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던 건 다른 이가 아닌, 다름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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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1인용 기분"



그러나 그 가면은 나만 지니고 있는 무거운 전유물만은 아니었나 보다.


얼마 전 완결한 네이버 웹툰 "1인용 기분"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나 어긋남을 가지고 산다." 그것을 가면으로 덮어놓을지, 나라고 인정하며 사랑하며 살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가면을 덮은 모습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좋지 못한 모습까지 보이는 진솔한 용기가,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온전한 내 모습으로 가는 올바른 길임은 확신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라도 사랑해줄 수 있는 내 자신을 얻는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나로 가득 차며 온전하고 진솔한 나의 모습으로 모든 순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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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하노이. photo by Me :)



그리고 그 모든 발걸음에는, 그날의 든든한 여름밤의 기억이 그림자가 되어 함께 하겠지.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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