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인생의 결정 장애를 앓는 모든 사람들에게

딕펑스와 원더랜드 바스켓
글 입력 2019.03.01 23:0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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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 니가, 아무 생각 안나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나는 한창 방영 중이었던 슈퍼스타 K4에 빠져 있었다. 개성 넘치는 수많은 후보 중 내가 응원했던 가수는 딕펑스였다. 사자 머리에 알록달록한 스키니진을 입고 등장한 딕펑스의 첫인상은 분명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심사위원과 여유롭게 소통하는 모습, 귀를 꽉꽉 채워주는 밴드 사운드, 오디션장이 아닌 것처럼 신 나게 음악을 즐기는 모습, 이 중 어떤 것에 끌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 좋았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한 번은 딕펑스의 공연을 보러 갔다. 한창 학업에 치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집-학교-집 코스만 몇 년 동안 밟아 왔던 내게 공연장은 너무나 낯선 곳이었다. 스탠딩 줄을 찾는 것부터 일이었다. 응원법도 몰랐고 스탠딩 공연에서 뛰어본 적도 없었다. 내가 너무 못 놀아서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미친 듯이 뛰어놀다 보니 벌써 마지막 곡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행복이란 게 별거 없구나, 음악을 듣고 뛰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무대를 누비며 ‘노는 게 남는거야’를 외쳤던 딕펑스는 벌써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이 곡 가사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제대로 된 가사 안 나와

Oh Rock to me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


그래서 결국 쓴 가사가 이 가산데

솔직히 말해서 이건 별로인 것 같아

Oh Rock to me

제발 누가 대신 지어줘



일기장에 적힌 푸념 같은 이 문장들은 놀랍게도 정식으로 발매된 ‘Rock to me’라는 수록곡의 가사 일부이다. 이외에도 천장의 얼룩을 주제로 한 ‘알프스 산맥의 로망’과 중간에 재즈, 오페라, 락앤롤, 삼바 메들리가 나오는 ‘아스피린’이라는 곡도 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 때 그 때 멜로디 위에 얹어낸 것 같은 딕펑스의 음악은 자유롭고 천진난만하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만이 음악은 아냐, 지금 이 순간을 즐겨! 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다.




뭐 드실래요? 아무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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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정 장애다. 하나를 결정하면 다른 곳에 더 좋은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안절부절못하고, 결정한 이후에도 다른 거 할 걸, 하면서 후회한 적이 많다. 그래서 나는 점심 메뉴 정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많은 사람과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할 때는 더 그렇다. 내 선택에 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자주 ‘아무거나 맨’이 된다. 혼자 있을 때는 더 좋은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봐, 여러 사람과 있을 때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기 싫어서 나는 결정 장애를 자처한다.


점심 메뉴 이외에도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어느 대학의 어떤 과를 갈지, 반수를 할지 학교에 다닐지, 무슨 직업을 가지는 게 좋을지,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기로에서 결정 장애를 앓았다. 그러다 보니 후회는 내 삶의 옵션 같은 것이었다. 우물쭈물하다 선택의 시간이 지나버리기도 했고, 선택한 후에도 계속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했다. 내가 한 선택들은 어디든 결점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 결점을 끝없이 파고들고 생각하다 보면 내 인생 자체가 실패작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인생 별 거 있어?



나를 그 결점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준 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장난처럼 건넨 한 마디였다. 인생 별 거 있어? 상투적인 말이다. 어떻게 보면 비관론자의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은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친구의 말처럼, 한 가지 선택에 계속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해야 할 만큼 인생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함에 죽고 싶어지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 한 통에 다시 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사소해지기도 한데, 살면서 하는 선택 몇 번 그게 뭐 별건가. 마음을 따라 과감하게 선택하고, 선택한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을.




원더랜드 바스켓





우리들의 마음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 원더랜드, 그곳으로 떠나요



‘원더랜드 바스켓’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딕펑스의 노래이다. 동화 같은 선율과 가사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도 이 노래를 들으면 조금은 천진난만하고 철없어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원더랜드를 품고 있다. 원더랜드는 어떤 외부적 요소의 영향도 없는 순수한 마음속의 세계다. 나 같은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각자의 마음이 있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스스로 마음을 짓눌렀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뭐 드실래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아무거나’ 라고 대답한 건 아니었다. 그날따라 당기는 음식도 있었고 먹기 싫은 음식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때 대답하지 못했던 건 선택에 따른 책임과 부담, 위험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작 점심 메뉴 정하는 것에도 온갖 현실과 위험을 고려했으니, 삶이 피곤했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진지하고 충만한 삶을

만들어가는 핵심 비결은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려는

태도를 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 뉴필로소퍼 4호, ‘충만한 삶을 위한 놀이’



고등학교 때, 세계 일주를 가겠다는 친구와 메이저 방송사에 입사하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겉으로는 응원했지만, 속으로는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어?’ 라는 못된 생각을 했다. 이런 내 생각을 비웃듯, 지금 한 친구는 지구의 반대편으로 갔고 한 친구는 M 방송사의 막내가 되었다. 경험해보지도 못했으면서 세상 현실적인 척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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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 같다. 현실적이고 복잡하고 진지한 고민들이 항상 좋은 선택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천진난만한 생각들을 가사로 옮기는 딕펑스의 음악처럼, 내 삶도 조금은 천진난만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의 고민들이 나를 짓누르려 할 때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열심히 뛰놀던 딕펑스의 콘서트 현장을 떠올린다. 신 나는 음악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사람인데, 어쩌다 잘못된 선택을 한 번 했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원더랜드’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싶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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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미술하는스누피
    • 잘 읽고가요~~
    • 0 0
  •  
  • 주상
    • 그래서 지금은 원더랜드에 도착했나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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