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성,여성,여성 - 우먼카인드 [도서]

여성은 강인하고 강인할 것이다.
글 입력 2019.03.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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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많은 이들이 나쁜 일을 겪으면서 주눅이 들곤 해요.
마음속 불길이 완전히 꺼져버리는 거죠.
저는 그 불길을 키워주고 싶어요."


부족의 여성들이 모여 이룬 모임에서 그들에게 소방 작업을 알려주는 어맨다 스탬퍼가 한 말이다. 여기서 대상은 부족의 여성들이고 나쁜 일이란 여성혐오를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비단 책에서 지칭하는 부족 여성들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전 세계 여성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처럼 이번 <우먼카인드> 6호엔 공감 가는 구절이 너무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을 위한 소신 있는 발언과 그들의 용기, 미래계획을 읽노라면, 일상생활에서 환경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모든 여성이 우먼카인드의 능력자 여성들처럼 위대한 모험가, 천체전문가, 환경운동가가 될 수는 없기에 혼자서 '규칙'을 만들고 실천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그래서 어떤 여성은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사용하는 도전을 하기도 하고,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한다.

사실 플라스틱 규제법이 강화된 이후로 일상이 불편해졌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면 비닐봉지에 담아주지 않아 주머니 한가득 쑤셔 넣거나 한 아름 품에 안고 돌아가야 하고, 카페에서 탄산이 들어간 음료를 시키면 머그잔에 나와 탄산이 금방 빠져버리거나, 빨대가 종이로 이루어져 입안이 텁텁하기 일쑤였다. 손님만 불편한가? 카페 알바생은 어마어마하게 쌓인 설거지 더미에 한숨을 내쉬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투덜대며 동참하긴 했지만, 속으론 '이런거 해서 뭐 얼마나 영향이 간다고' 그런 생각만 가득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봤자, 지구 반대편 억 단위의 인구가 아직도 먹다 남은 피자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억울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편리함을 불편해 하는 마음이 시작이다." - 이안소영



그런데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한 번에 마음에 와닿은 이안소영씨의 말대로 목적을 위해 기어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 나아가 우리가 모두 잘살기 위한 올바른 길이다. 이 불편함은 결과적으로 여성인 우리를 위한 나비효과라고 생각하니 참을 만해진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듯, 일상에서 무심코 행해지는 쓰레기 배출에 의해 가장 피해를 받는 건 지구, 그리고 지구에 사는 여성들, 그 속의 우리들이니까,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노력이 모인다면 후세의 여성들의 지구의 숨통을 좀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페미니즘을 알아버린 후에 가부장제에 의문을 품지 않던 때로 돌아갈 수 없듯이, 나의 에코페미니즘도 이제 출발한다. 


"모든 산에 올라가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직접 찾아내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 탐험가 휠러


"한계까지 밀어붙여보지 않고,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보지도 않는다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도리가 없죠."

-탐험가 로스 새비지


이 말들은 <린인>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한다. 린인의 저자, 미셸 샌드버그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폭발적 성장을 이루어낸 실리콘밸리의 아이콘이자 여성이다. 미셸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여성과 남성이 직장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 반응하는 차이를 설명한다. 여성은 대게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며 망설이다 포기하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남성은 기회가 오면 자신의 능력 밖인 일이라도 일단 잡고 본다. 자신이 그것을 잘해낼 수 있을지는 일을 해봐야 안다는 생각이 깔린 반응이자, 그들 안에 존재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발화이다. 여성이 열등하고 남성이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이 뚜렷한 사회에서 자라면서 만연한 여성혐오나 성차별적인 대우가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크게 한방 먹은 것처럼 뒷통수가 얼얼했다. 여태껏 나도 그런 태도로 어떤 기회들을 놓쳐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적어도 여러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직감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눈앞에 다가온 기회 앞에서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자존감을 생각하면 분명 그랬던 적이 있을 것이다.



고정된 성 역할


책을 읽으며 특정 직업군 여성들의 인터뷰와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진정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 안에 존재하는 성 고정관념의 잔재를 발견했다. '천체전문가'라는 직업을 보곤 당연히 남성일 거라 생각했다가 무심코 넘긴 뒷장에서 여성분을 발견했을 때,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주 부끄럽게도 순간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해 쓰인 책이 바로 우먼카인드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거다. 지금껏 학습해온 특정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 성 역할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편견들은 이토록 견고했다.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배우 류진의 아내 이혜선씨의 일상을 공개한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꽤 유명하던 국내 메이저 항공사의 승무원이었지만, 결혼 후 가정을 위해 퇴사한 지 7년이 되었다고 한다. 아침 7시쯤 기상해 정신없이 아이를 챙기고,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을 싸서 무사히 학원까지 데려다주는 엄마의 일상이었다. 아내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빠인 류진씨는 작은아들 방에서 엎어져 자느라 무슨 소동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고 또 정말 알지 못한다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아직도 이런 가정을 브라운관으로 여과 없이 봐야 한다니, 복장 터진다. 더욱 가관인 건 그 아래 자막으로 등장하는 '수퍼맘', 부지런히 움직이고 음식을 잘 하는 아내분을 보곤 류진에게 건넨 "장가 잘 갔네!"라는 패널들의 칭찬이다. 아니, 이게 칭찬이긴 한 것인지 무척 회의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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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느라 아무도 없는 공터에 차를 댄 혜선씨는 잠시 숨을 돌릴 틈이 생기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7년 전 승무원 시절을 함께 한 동료는 아직 승무원 일을 하는 모양이다. 친구에게 "비행 안 힘드나?"라고 묻다가 문득 울컥하는 감정이 치고 올라와 한동안 창밖만 바라보던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가정을 위해 선택한 퇴직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지만, 가정을 위해 희생한 젊은 시절의 꿈과 커리어는 7년이 지난 지금도 혜선씨의 마음에서 아물지 못했나 보다.

앞서 말한 패널의 칭찬, "장가를 잘 갔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아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아내의 부지런함과 좋은 음식솜씨가 장점이 될 순 있겠지만, 그게 왜 남편인 류진씨의 기를 살려주는 아내의 역할이 되는 것일까. 2019년에 그 말이 칭찬이랍시고 패널들의 입에서 나오고, 어떤 문제점도 느끼지 못해 전파를 타고, 결국 불특정 다수 여성들의 눈과 귀에 들어올때 느끼는 황당함이란 슬프게도 익숙하다. 혜선씨의 일상은 곧 엄마의 일상이었고, 한국 여성 대부분의 일상이었고, 아직도 그런 일상이 지속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떠맡겨지는 게 다반사지만, 당연하고 쉬운 일로 치부되어 사회적인 인정이나 보상, 대우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니라, 당당히 제 이름이 새겨진 명함 한 장을 내밀 수 없다는 게 전업주부 여성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한국의 수많은 여성이 고착된 성 역할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압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혜선씨의 눈물을 보며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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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보면서 줄곧 생각한 게 있다. 왜 표지가 인간 같지 않은 여성 이미지일까? 갑옷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초파리를 연상케 하는 헤드셋을 낀 표지 속 여성은 아무리 봐도 일반여성처럼 보이진 않는다. 눈에 영혼이 없고 근육 무늬가 얼굴에 드러난 것이 어딘가 로봇 같기도 하다. 그 이유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후에 어림짐작했다. 아마도 초파리의 유전자와 60퍼센트가 일치한다는 초파리를 심볼로 삼고, 미래의 여성을 이미지화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쩌면 지구를 넘어 우주 어딘가를 새로운 삶의 터로 삼고 살아갈지 모르는 미래의 여성들은 표지처럼 강인한 형상을 하고 한층 더 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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