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버 세대에게 닥친 디지털 소외 현상, 그리고 [기타]

글 입력 2019.02.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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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전 어느 주말에 아빠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오늘 햄버거를 사러 롯XX아에 갔는데, 주문을 하려고 알바생한테 말을 걸었더니 무인 주문기를 사용하라는 거야. 처음 이용하는 거라 잘 모르겠어서 직접 주문받아달라고 말을 걸었더니, 짜증을 심하게 내더라고..”


이 말을 들은 나는 “그 매장 엄청 바쁘잖아. 아마 지쳐서 그랬을 거야. 아빠가 이해해.”하고 대답했다, 속으로 ‘무인 주문기 사용이 어렵나?’ 하고 생각하면서. 영어도 잘하고 기계공업에 종사하는 분이면서 엄살을 부리신다고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나 요즘 실버 세대의 디지털 소외 현상 관련 사례가 우후죽순 터지는 걸 보면서, 단순하게 넘길 일이 아니였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SNS에서 경기도 고속버스가 어플로 좌석을 예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분이 있었다. 본인은 미리 예매해서 버스를 탔지만, 노인들은 여전히 일찍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플로 예매한 사람들을 먼저 태우다 보니 현장에서 기다리던 노인들은 버스에 탈 수 없었다고 한다. 어플이 분명 편하고 간단하지만, 폰을 잘 다루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에게는 장벽이 높아 똑같이 편리함을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투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님의 영상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 [박막례 할머니]’ 편을 보면 실제 노년층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영상을 보면, 맥도날드에서 손녀 분이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할머니 혼자서 무인 주문기를 사용해보라고 권장한다. 박막례 님은 ‘주문하려면 터치하세요’부터 막히신다. “뭘 어디를 터치해?” 손녀 분이 옆에서 살짝 알려주지만, 계속 시간초과가 되어 처음으로 돌아가버린다. 결국 할머니는 불고기버거를 원했지만 아무 메뉴나 골라 겨우 결제 단계까지 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영수증도 읽어봐야 하나며 살펴보시고, 주문 번호는 어디 나와있냐고 물어보신다. 최종적으로 주문한 음식을 받아 드셔보시고는 “난 콜라인 줄 알고 시켰는데, 커피네. 내가 시키고 싶었던 게 아냐. 이거 안 먹을래” 하고 다시는 이곳에 안오겠다고 말하신다. 할머니가 "진짜..우리에 맞지 않는 세상이 돌아온가비다요" 라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시는 부분이 매우 씁쓸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무인주문기 하나 이용하는 데 갖가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화면을 터치한다는 안내가 잘 와닿지 않고, 글씨가 너무 작거나 아예 메뉴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기도 하며 버튼이 위에 있어 손이 닿지 않기도 한다. 영상 마지막에 할머니가 “저기서 음식을 먹으려면 영어공부를 해야 하고, 돋보기가 있어야 하고, 의자를 챙겨야 하고(키 큰 사람은 상관없고), 카드도 챙겨야 한다”고 말하신다. 이 말 속에서 편의성을 고려하여 등장했다는 무인주문기가 “누구”의 편리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근래 등장한 무인주문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버스에서 하차할 때 누르는 버튼마저 영어로 ‘STOP’이라고 써있다고 지적했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영어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무인 주문·계산기 들여놓자 60대 단골은 발길을 끊었다


무인 주문기가 문제가 되자 여러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데, 누군가는 ‘실버 세대가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철저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인 주문기 자체는 편리하니까 누구라도 이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교육도 필요하지만, 처음부터 편의성을 제공받을 대상을 최우선으로 ‘약자’로 선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감수하되, 어려움을 겪을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하지 않을까?


더 넓게 보면 우리 사회는 실버 세대만 소외시키고 있지 않다. ‘디지털 소외’만이 유일한 차별 현상이 아니다. 서울시에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점자블록을 앞으로 제외시킨다고 발표했다가 엄청나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덧붙여 디지털 소외 현상이 실버 세대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사회는 늘 힘이 있는 자들의 편리함을 위해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해왔다.


얼마 전 앞으로 초등교육에서 코딩이 필수라는 소식에 이제 코딩을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로 나뉠 거라고 말이 나왔다. 이걸 듣고 문득 두려워졌다. 언젠가 나도 기성 세대로부터 도태되어 세상에 모르는 것과 두려운 것이 넘쳐나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나도’, 혹은 ‘내 지인이’ 해당될 수 있으니까 경각심을 가지자는 사고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보다는 당연하게 약자와 소수자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오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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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쿠쿠코리
    • 글 너무 잘 쓰셨어요 정말 공감가는 내용이 아닐 수 없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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