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에 불어오는 변화의 물결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2.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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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최근 대한민국 뮤지컬의 트랜드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 라 말할 수 있다. 뮤지컬의 생산과정에서 텍스트, 수용자까지 모든 면에서 대중들의 선입견을 깨고 극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뮤지컬 업계의 흐름에 맞게, “닫혀진 마음을 열어요”라고 외치며, 극의 내용은 물론이고 캐스팅과 관람문화까지 기존의 틀을 깨려고 시도한 공연이 있다. 바로 뮤지컬 <록키호러쇼>이다.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하는 <록키호러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록키호러쇼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리처드 오브라이언이 창작하여 1973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후 컬트문화를 대표하며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1년 개그맨 홍록기가 프랑큰 퍼터 역을 맡아 초연된 이후 2009년까지 총 네 차례 공연되었다.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나간 파격적인 소재와 적나라한 성적 표현, 기괴한 이미지 등으로 인해 일부 매니아들만 향유하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2017년, 알앤디웍스가 새롭게 제작을 맡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며 대중적인 관심을 얻었다. 2018시즌은 지난 시즌의 성공을 이끈 주역들의 참여와 신선함을 부여할 새 얼굴의 투입으로 기존의 관객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사로잡았다.



2. 생산과정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젠더프리 캐스팅을 통해 생산과정에서부터 기존의 젠더관념에 도전했다. 기존의 뮤지컬에서는 여성배우가 여성캐릭터를, 남성배우가 남성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관념에서 탈피하여 작품의 배역을 정할 때 성별이 아니라 해당 캐릭터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만을 고려하는 젠더프리 캐스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젠더프리 캐스팅은 남배우가 여성캐릭터를, 여배우가 남성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애초에 성별이 없거나 남성이든 여성이든 무관한 캐릭터를 젠더에 얽매이지 않고 연기하는 것도 포함한다. 기존의 젠더관념에서 벗어나 캐스팅하는 움직임은 남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던 기존의 공연산업에서 여배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생겨났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크기변환]송유택.jpg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콜롬비아’는 기존에 여성 배우만이 연기하던 캐릭터였다. 하지만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고 있는 <록키호러쇼>인 만큼 ‘콜롬비아’ 역에 남성 배우인 송유택을 기존 캐스트인 전예지와 함께 더블 캐스팅하였다. 이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콜롬비아’로, 개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송유택의 연기를 본 많은 사람들은 성별을 떠나서 고난도의 넘버와, 댄스의 중심, 귀엽고 요염하며 통통 튀는 성격 표현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했다는 평을 했다. 이러한 젠더프리 캐스팅은 해당 캐릭터에 대해 더욱 풍성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고, 성 역할과 젠더의식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3. 텍스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주창한 이항대립 개념은 사회 속에서 이분법적으로 구성된 의미 시스템을 뜻한다. 대중문화의 텍스트 속의 이항대립적 구조는 불평등한 위계를 구축하고 고착화시킬 수 있다. 뮤지컬<록키호러쇼>의 초반에는 이항대립적인 젠더 권력구조가 많이 나타난다. 여주인공인 자넷은 분홍색의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남주인공인 브래드는 하늘색 셔츠를 입는다. 자넷의 의상과 소품에는 분홍색을 지배적으로 쓰는 반면 브래드의 의상과 소품에는 파랑색을 지배적으로 사용한다. 색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젠더 인식을 이분법적으로 스테레오타이핑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자넷과 브래드의 대사에서도 이항대립이 나타난다. 자넷은 “나도 좋아”, “오, 브래드. 나 너무 춥고 무서워” 등의 대사를 한다. 반면 브래드는 “내가 해결할게”, “나만 믿어” 등의 대사를 한다. 이러한 표현은 여성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남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그리며 불평등하고 이항대립적인 젠더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관념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욕구는 억압해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극의 초반 이항 대립적으로 그려진 자넷과 브래드의 모습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을 이항 대립적으로 고정시키는 기성의 젠더 재현방식을 이어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프랑큰의 성에 들어간 브래드가 자넷에게 “나만 믿으라니까” 라 말하며 자넷의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떠는 모습과 같은, 기존의 젠더 재현방식을 비꼬는 연출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회적 통념으로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젠더관념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극이 진행되면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넷과 브래드가 프랑큰 퍼터와 리프라프, 마젠타, 콜롬비아를 만나며, 사회의 인식에 맞춰 가두었던 자신들을 드러낸다. 자넷은 ‘Touch-a Touch-a Touch Me' 노래를 부르며 록키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한다.

이는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로 스테레오타이핑하는 기존의 젠더 재현 방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젠더의 이항대립적인 구조의 붕괴 시도는 의상에서도 나타난다. <록키호러쇼>의 후반부에는 자넷과 브래드 둘 다 프랑큰의 상징이었던 망사스타킹과 가터벨트, 코르셋을 착용한다. 분홍색과 파란색, 치마와 바지의 이항대립으로 고착화 되어있던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4. 수용자

기존의 뮤지컬에서 관객은 단지 공연을 관람하고 박수만을 치는 수용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록키호러쇼>의 관객들은 배우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공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콜백(call-back)’이라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 콜백은 극중 캐릭터들의 대사나 가사에 반응하며 관객들이 내는 모든 소리를 총칭하는 것으로 추임새나 애드리브, 대사나 가사를 따라하는 것은 물론 환호와 야유, 캐릭터들의 행동을 따라하거나 관객들이 무대 위의 배우에게 장난치는 모든 행동을 포함한다. 자넷과 브래드가 신문으로 폭우를 피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도 함께 월간 록키를 머리에 쓰고 팬텀들이 뿌리는 비를 피한다. 또한 자넷과 브래드가 프랑큰의 성을 찾으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손전등을 키고 불빛을 비추며 길을 찾기도 한다.

상심에 빠진 브래드를 위로하며 무대 위로 빵을 던지기도 하는데, 관객들이 던진 빵의 종류나 양에 따라 배우들의 대사나 행동이 달라지기도 한다. <록키호러쇼>의 대표 넘버인 ‘Time Warp'는 관객 참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가 시작되면 객석의 대부분의 관객이 일어나 무대 위의 배우들과 함께 Time Warp 댄스를 춘다. 이 외에도 기존의 뮤지컬을 관람할 때에는 할 수 없는 다양한 리액션을 하며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흐린다.


[크기변환]콜백.jpg
 

이처럼 <록키호러쇼>의 관객은 공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공연의 내용과 진행을 바꾸기도 하며 공연을 완성시킨다. 따라서 뮤지컬<록키호러쇼>는 기성 사회에 만연한 뮤지컬 관객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역할을 확장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5. 마무리하며

2018 <록키호러쇼>는 다방면에서 기성 사회의 편견을 향한 저항의 메시지를 드러냈고, 그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았다. <록키호러쇼>가 탄생한지는 수십년이 흘렀지만, 이처럼 국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극이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회가 만든 많은 프레임에 문제제기를 하는 이 극이 사랑받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변화의 물결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는 제작자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어떠한 담론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대중문화 속에서 재현되는 사회의 모습은 수용자들의 태도를 잠재적으로 계발한다. 실제 오늘날의 현실 반영도 중요하지만, 그 현실이 불평등하고 위계적이라면 그것이 그대로 대중에게 전해져도 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가 잘못되었다면, 이에 문제제기를 하며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대중문화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을 비롯한 많은 대중문화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며 더 낳은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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