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구 손절한 SSUL [스포츠]

야구 입문자를 위한 필독서
글 입력 2019.01.23 12: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 야구 입문



야구팬: [野球fan] 야구 경기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수정됨_1.jpg
△ 2018.10월의 잠실야구장


지난 2018년은 야구가 일상의 전부였다. 스포츠에 관심 없던 사람이 단지 야구장을 한번 다녀왔다고 진성 야구팬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듯 야구의 룰은커녕 구단이 몇 개인지, 몇 명이 야구를 하는지, 투수와 포수가 같은 팀인지도 몰랐으니 그야말로 야구 문외한이었다. 야구는 지루하고 따분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기라고 생각했던 편견은 야구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응원가에 맞춰 리듬을 타는 것으로 깨어졌다. 그저 신나는 노래가 나오니까 같이 춤추고, 공이 멀리 날아가니까 소리를 질렀다. 내 안의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집에 돌아와서 야구 영상을 찾아보며 본격적으로 팀을 정하기 시작했다. 후보는 서울팀인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그중에서 골라 정했으나 여기에 밝히진 않겠다.

   

하지만 현재 본인은 야구를 *손절하려고 한다. 물론 처음엔 모든게 행복했다. 일주일 중 월요일을 뺀 6일 동안 저녁 6시 30분만 되면 TV를 켜 놓고 이기든 지든 2시간 넘게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기는 날은 더할 나위없는 하루의 끝이고. 그다음 날 아침엔 생전 가지 않던 포털사이트의 스포츠 뉴스란에 들어가 어제 본 경기기사를 일일이 찾아보거나, 저녁에 있을 경기의 라인업을 보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나에 꽂히면 지독하게 빠지는 내게 야구란 소위 떡밥이 끊이지 않는 화수분이었다. 그렇게 정규시즌 약 8달가량을 야구에 빠져 살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야구장을 찾았다. 무려 막학기 시험 전전날까지도. 어쩌면 한 집단에 소속되어 팀을 응원한다는 사실에 도취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자체가 너무도 매력적이니까.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위




2. 당신이 모르는 '야구'



야구라는 스포츠는 역전 리얼리티 쇼이자 조금 과장하자면 인생의 축소판 같다. 흔히 말하는 존버(X나 버티기)로 9회 말까지 끌고 가 역전 끝내기 홈런이라도 치는 날엔 그야말로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야구 보기를 왜 그만두었냐고? 여기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야구짤.jpg


bdd64931f5944b952076a73107d3cf0a92919e55.gif
△ 흔한 롯데팬의 절규

 

사실 야구는 화火병의 스포츠이다. 끝까지 버티는 데에는 엄청난 감정이 소모된다. 야구팬들을 떠올릴 때면 점잖고 해탈한 보살 같은 이미지도 있지만, 대부분 화를 주체 못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인터넷을 달구는 수많은 짤들은 야구팬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듯하다. 위 짧은 영상은 야구팬이라면 마냥 웃을 수 없이 공감하는 감정이다.


야구를 보다 보면 저절로 화가 치솟는다. “아니, 저걸 왜 못 잡아? 느그가 프로냐?”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어머, 다들 왜 화를 내지?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사람이면 그런 실수 할 수가 없지.'가 되는 게 야구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스포츠 팬들보다 유독, 야구팬들의 고통이 심해 보이는 걸까? 유난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공수교대를 바탕으로 한 공평한 기회가 있는 게임으로, 9회 말까지 줄곧 이기고 있어도 마지막 홈런 하나에 의해 뒤집힐 수 있는 '한방의 스포츠'이다. 그래서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팀이 지고 있을 때 '야오이마이'(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게다가 야구는 이닝 당 점수에 따라 변화가 크기 때문에 관객은 희로애락을 한 이닝에 전부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선수의 실수가 명확하게 누구의 실책인지 바로 알 수 있고 또 기록된다. 그 실책은 경기의 흐름을 뒤엎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한 번의 실책은 여파가 어마어마하다.

 



3. 경쟁과 혐오




여느 때와 같이 야구경기를 틀어놓고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나 - "아 저 XX, 저기서 저걸 못 잡냐? 저거 사람이야?"

동생 - "왜 그래? 화 좀 안 내고 볼 순 없어? 피곤하게 정말."

그토록 이해할 수 없던 화 많은 팬이 되어가는 본인의 모습을 인지하고

순식간에 창피해졌다.

 

 

집단 스포츠가 주는 경쟁의식은 그 안에 소속된 팬들에게도 만연하다. 그러나 그 경쟁은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혐오와 함께 퍼져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서로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지역 비하도 서슴지 않고 입에 담기도 끔찍한 욕설을 남발하기도 한다. 때로는 구단의 잘못이 팬들에게까지 내려와 오명을 덮어쓰기도 하고 대신 조롱을 당한다. 인터넷 세상에서 벗어난다면 과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 강도만 다를 뿐 다른 팀을 배척하고 은근슬쩍 모욕하는 일은 여전하다. 특히 야구에 입문하는 당신이 20대 여성이라면 앞으로 야구팬이라는 고백 뒤에 한쪽 귀를 살포시 막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나는 선수 얼빠(얼굴을 좋아하는 팬), 철새팬과 같은 비하 목적의 말들을 들어왔다.


그렇다면 야구팬들의 사이는 왜 이다지 안 좋은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집단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집단 간 벌어지는 경쟁에서 편견과 갈등이 생성된다. 야구로 치면 10개 구단에서 하나의 ‘우승’을 놓고 벌이는 각축전 때문에 상대팀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종국에는 상대 집단을 비하하기 위한,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발판이다. 그래서 어떤 A구단의 팬들은 어떠하다, 그러니 XX이라는 비하의 별칭을 붙여 조롱하는 것이 빈번하다. 만약 내가 글 첫머리에 어느 구단의 팬이라고 썼다면, 분명 색안경을 끼고 글을 읽을 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기재하지 않았다. 야구판에서 고정관념은 무의식중에 작동하기에.

 

 

수정됨_프로야구_홈구장.jpg
△ 각 구단별 연고지 지도


또 다른 원인은 과거 집단 간에 있었던 불화가 현재까지 전염되어 대대손손 물려지는 감정이다. 이를테면 B구단과 C구단 팬들 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그 감정이 현재까지 이어져 당시를 겪지 않은 유입팬들까지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뜨리는 것이다. 그것이 깊은 감정이 아닐지라도 과거 구단팬들 간의 사건, 사고를 접했을때 불편한 감정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지역감정이 만연한 한국에서 지역별로 연고지가 뚜렷한 야구 구단은 팬들 사이의 감정을 더 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지역끼리 있었던 과거 사건이나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고 곧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팀을 나눈다는 것은 스포츠의 일부분이지만 때로는 경쟁의 심화를 부른다. 자신이 소속된 그룹을 ‘우리’라고 부르고 상대팀을 ‘저들’이라고 부르는 순간 갈등은 시작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한정된 상품, ‘우승’이 걸리면 그 갈등은 증폭된다. 여기서 생기는 악감정은 자기 집단에 대한 응집력을 강화하고 상대팀에 대한 증오와 배타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악순환이다. 발생한 갈등은 또다시 상대팀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경쟁 속에서 혐오가 발생하는 꼴이다. 서로서로 비난하고 조롱하며 세상에 다시없을 진상 구단팬으로 몰고 가지만 그 모습은 마치 거울처럼 자신을 비춘다.

 

그들이 서로 협력할 때는 단지 세계적 대회가 있을 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뿐이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된 야구팬들을 보며 아이러니했다. 그토록 물고 뜯던 사람들이 세상 제일 친한 동지처럼 전우애까지 느끼며 사이좋은 척 하는데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그 대회가 끝나고 각 구단별로 경쟁이 다시 재개되면 도로 파산될 일시적인 관계라는 사실이 불보듯 훤히 보였다. 야구계에 널리 퍼진 앙숙 같은 이런 관계는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항상 음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험한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야구에 너무 빠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얼마전 읽은 책 <뉴필로소퍼: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에선 스포츠를 본질적으로 모순인 것으로 정의한다. 그 책 속 여러 이론에 의하면 스포츠는 '굳이' 얻지 않아도 될 승리를 위해 '굳이' 어려운 방법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을 심각하게 대하는 이런 태도는 때로는 유희적 요소로, 때로는 갈등과 혐오로 나타나 서로를 상처입힌다.




4. 오늘도 야구, 탈덕합니다.



수정됨_1 (2).jpg
 

최근 야구를 그만 보고자 또다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실력이 오합지졸인 것은 둘째치고, 다른 선수보다 조금만 잘해도 쉽게 억 단위를 버니 더 이상 뵈는 게 없는지 우주 대스타가 되는 곳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판이다. 팬들이 없으면 한낱 공놀이에 불과하다는 프로스포츠계의 명언을 잠시 잊은 건지, 단체로 스타가 된 건지. 사인을 해달라 기다리는 팬들을 무시하기 일쑤요, 심지어 어린아이의 간절한 외침마저 무시한 것이 뉴스를 탔다. 그제야 부랴부랴 이미지 메이킹에 들어서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보며 허탈함을 느꼈다. 어느 프로 스포츠판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옆 배구계는 선수들이 손을 잡아주고 감독이 춤을 추는 판국에 우리 콧대 높은 야구선수들은 그저 사인해 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모양이다. 덕분에 이제 나는 야구팬을 그만두기로 했다.


다만 이 말은 지난가을부터 하루에 네댓 번 한 말이니 믿거나 말거나. 야구란 스포츠가 너무 매력적인 탓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어 본의 아니게 다짐만 수백 번하고 있다. 만약 내가 야구에 입문할 당시, 사전에 누군가 이런 충고를 해줬더라면 조금 덜 상처받게 적당히 좋아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내년 개막식에서도 스포츠 채널을 틀며 "이제 정말 야구 그만 봐야지" 하고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무튼 야구팬이 되려 하거나 이미 야구팬이 된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발 적당히만 좋아하세요, 제발.



[장재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