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You Still My No.1 [공연]

안녕하세요, 점핑보아입니다!
글 입력 2019.01.02 22:2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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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더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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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9일, 연말인데 뭐하냐는 주변의 문자에 “나 지금 보아 콘서트 보러 왔어~!”라고 자랑하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날은 이른 아침부터 알람 소리도 없이 잠에서 깨어 집을 나섰다. 아직 공연 시작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새로 나온 공식 응원봉을 사기 위해선 부지런해야 했다. 그렇다, 나는 보아의 팬, 점핑보아이다. 사춘기가 오기도 전에 보아를 좋아하고 있었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다. 그런 보아의 팬으로서 이번 <보아 더 라이브 인 서울>은 3년 4개월 만에 한국에서 열린 콘서트이기 때문에 꼭 가야했다. '보아 더 라이브'는 보통 사람들이 보아를 인식하는 춤을 지우고 오직 목소리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 바람에서 명맥을 이어온 보아의 일본 콘서트 브랜드이다. 그런 유의미한 콘서트임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 기대되었다.

오랜 덕후 생활로 공방과 행사를 밥 먹듯이 따라다녔지만 역시나 콘서트만큼 팬심을 충전하는 곳은 또 없다. 스탠딩석에 노란 응원봉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기하던 주변 팬들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첫 곡은 2006년 일본에서 발매한 ‘First snow’. 온통 일본어인 노래 끝에 한국어 ‘사랑해’가 나오는 부분은 항상 가슴이 뭉클하다. <보아 더 라이브>는 일본 콘서트를 한국으로 역수입한 콘서트이기 때문에 세트 리스트가 일본 콘서트와 거의 같고 일본어 곡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2000년대 한국에서만 활동한 보아를 추억하고자 온 몇몇 분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는 한국과 일본을 바쁘게 오가던 보아의 곡들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감동이었다. 특히 2006년 발매된 일본곡 ‘Winter Love’가 흘러나오자 벅차올라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보아의 일본 발라드 양대산맥인 메리 크리와 윈터 러브 중 모두가 메리 크리를 사랑할 때 나는 꿋꿋이 윈터 러브를 외치던 '윈터 러브파'였기에.




あなたが好きで 會いたくてキスが
당신을 좋아해서, 만나고 싶어서 
ヒャク億の雪を傳うの
키스가 백억 개의 눈을 전하네요
何處かで偶然にめぐり逢える日まで
어디선가 우연히 다시 만나는 날까지
忘れなくてもBaby 好きでもいいですか
잊지 않아도 baby 좋아해도 되나요?
ずっと忘れない
계속 잊을 수 없을 거야

Winter Love - BoA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보아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비공식적 업적(?)으론 강원도의 시골 소녀를 서울로 상경하게 했다. 팬은 가수를 닮는다는 말을 상기하며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되자고 매일 다짐하며 공부했다. 15세, 어린 나이로 홀로 일본이라는 타지에 가서 성공한 보아의 무대 뒤편은 언제나 고독으로 가득했단 걸 알았기에 그에 자극받아 내게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자 다짐했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오면서, 드디어 보아를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팬 사인회에 당첨된 것이다! 그날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았다. 사실 어떤 이야길 했는지 그 후엔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보던 보아의 눈동자가 그렇게 맑고 따스할 수 없었다. 어린 소녀에게 보아는 우상이자, 삶의 자극제였다.


“언니- 저 10년 가까이 팬이에요!”
“와- 그럼 언제부터 팬이었어요?”
“언니의 팬이 아니었던 적은 기억이 안 나요.”




팬 : Fan


참 좋아했다. 동경했다. 항상 설렜다. 그리고 뿌듯했다. 내가 보아의 팬이라는 사실이. 소위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따위는 하지 않고 보아의 팬임을 자랑스레 선전하고 다녔다. 두꺼운 고글과 멜빵바지를 입고 잃어버린 동심을 찾던 ‘아틀란티스 소녀’와 You still my ‘No.1’, 태풍을 몰고 온 비너스 ‘허리케인 비너스’, 외에도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곡 중 보아다움을 놓지 않은 곳이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으니 섹시함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제복을 입고 남자댄서 위에 올라타 세상의 반은 여자라고 외치던 보아를 보고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그때 보아언니를 따라 하겠다며 자른 샤기컷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사진은 영원히 못 보게 만든 나의 흑역사는 묻어두자.
  
내가 보아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보아의 전성기가 2000년대 초반이고 그때의 나는 초등학생쯤이었으니 남들이 보기엔 세대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학창시절엔 한창 잘나가던 최신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이 유일한 점핑보아를 담당했다. 그 사실은 십 년이 지나 20대가 되어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쌓여가는 연차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팬이란 항상 행복함만을 동반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서글픔을 깨달은 것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이따금 덕후는 자기 스타의 걱정과 심란함을 대신 느끼기도 한다. 모든 것에는 시간이 흐르고 나의 영원한 우상도 그 시간은 피해 가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정상이자 스타일 줄 알았던 나의 별이 어느새 잊히기도 하고 평가 절하되기도 하며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팬으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쌓아온 실력과 업적은 둘째 치더라도 언제나 가장 빛났으면 하는 자신의 별이 희미해져 가는 걸 바라보면서 마음 아프지 않을 팬이 있을까? 이때부터 나는 덕질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나의 욕심이었다. 어느 순간,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시간을 거스르려 했던 것 같다.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는 다른 여가수들과 활동을 비교하기도 하고, 연차가 쌓이면서 달라진 음악 스타일에 아쉬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없음에도 그랬다. 연차가 쌓여간다는 건 무대에서 더욱 노련해지고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음악을 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가수와 팬의 음악적 취향이 달라져 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단 의미였다. 더욱더 속상했던 건 이렇게 안달하는 팬에 비해 더는 그녀의 눈에서 욕심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싶은, 일종의 미련이 느껴지질 않아서. 조금 심한 비약이지만, 추억 속에서 회자되는 대중스타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심란했다. 충성심 가득했던 팬에게는 그렇게 권태가 찾아왔다.



보아 : BoA




아무리 휴식기를 가진다 한들 하루의 습관처럼 이어진 덕질은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보아 더 라이브> 공연에 가게 된 것이다. 드럼 소리가 심장을 때리고 그녀의 목소리와 조명이 비치자, 지금까지 느껴왔던 모든 감정에 회의가 들었다. 팬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아쉬움을 느낀대도 그건 모두 나 혼자만의 욕심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근 20년간 끝없이 질주한 길에서 잠시 쉬는 이에게 계속해서 달리지 못한다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정말 욕심이지 않나. 사실 이런 생각은 팬인 나보다 당사자인 보아 본인이 더 많이 고민했을 텐데. 그런 고민에 내린 답이 바로 현재의 모습이라면 팬으로서 지지하고 응원해주기만도 시간이 아깝다고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생각했다. 풀리지 않는 고민들에 해답을 내리자 대표곡 넘버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함께 응원봉을 쳐들며 “You still my No.1”이라 외쳤다. 행복한 듯 미소 짓는 보아에게서 이거면 되었지 무엇을 더 바랐나 싶었다.


수정됨_보아 컴백이 늦어진 이유 - YouTube.jpg
 

2018년 1월에 방영된 리얼리티 <키워드 보아>에서 보아의 후배이자 유명한 팬인, 샤이니의 키가 이런 말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콘텐츠를 들고나왔는데

그게 전작보다 좀 덜해요, 실망이 있잖아,

난 그런 게 없어. 나는 뭘 해도 좋으니까 그냥….

활동만 해줬으면 좋겠는….”



이 말을 듣고 참 많이 공감했다. 비록 이제는 더 이상 전성기 그때처럼 공격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음악 성향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런 것보다도 그냥 노래를 꾸준히 발매해준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그래서 콘서트장에 모인 많은 팬들처럼 줄곧 “노래해줘서 고마워!”라고 소리쳤다. 그저 고마워서, 고맙다고.

‘오래됨’이라는 건 때론 고충도 있지만 그런 사소함 따윈 우리 세월의 견고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만큼 팬이라는 건 참 신기한 존재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 침묵을 유지하다가 그들의 별을 향해 사랑 공세를 퍼붓고, 외국어로 된 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흥얼거리며 눈물짓는다. 그 모든 순간에 노래로 공유한 순정이 소름 끼치게 행복했다. 누군간 단지 한쪽만 놓으면 사라질 인연이라 폄하하지만 나는 평생에 걸쳐 느끼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입장으로서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이든 여전히 보아, 당신은 나의 넘버원 No.1이고 유일한 온리원 Only One이라는 것을 수줍게 고백한다.


 You still my No.1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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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미술하는스누피
    • 잘 읽고 가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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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재이
    • 2019.01.05 17: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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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미술하는스누피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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