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 없는 생각의 실타래를 마주하는, 도서 <지중해의 영감>

글 입력 2018.12.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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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영감-표1.jpg
 


알베르 카뮈를 작가로 이끈 영감의 바다와 땅. 장 그르니에가 사랑한 지중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유를 풀어내고 있는 도서 <지중해의 영감>을,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읽어보았다. 지중해에서 받은 영감Inspiration을 풀어내고 있다곤 하지만 여행수필이 아니라 훨씬 더 무거운 사유를 담고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깊은 책이었다.





목  차


옮긴이의 말_침묵과 망설임의 형이상학


1961년 판에 붙이는 말

서문


북아프리카

산타 크루즈

카지노 바스트라나

알제의 카스바

비스크라의 어느 날 저녁

메디나의 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이탈리아

로마의 평원에서

베로나에서 세비야까지


프로방스

프로방스 입문

들판에 돋은 풀


그리스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다

그리스의 묘비명


탐구

가시 없는 장미

코르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변신

코르넬리우스의 답장, 혹은 창조

코르넬리우스의 두 번째 편지의 단편들


해설_장 그르니에와 지중해

 장 그르니에 연보





*



눈 앞에 활짝 열린 공간이 있고 '무엇이나 다 가능한' 이런 저녁에 우리는 어떤 자유 이상으로 모종의 도취 같은 것이 필요하다. 어떤 공연을 통해서 자기 자신 이상의 그 무엇과 맺어진다고 느낀다면 가장 저급한 공연이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본문 34쪽 중에서)



<지중해의 영감>은 너무도 많은 사유들을 함축적이고도 집약적인 언어로 풀어내린 책이었다. 그래서 사유의 깊이가 얕아진 나에게는 황새를 쫓는 뱁새가 된 기분을 조금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 그르니에도 본문 속에서 말했다시피, 나에게 이 책은 눈 앞에 활짝 열린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가 원하는대로의 모든 것을 쫓아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독자로서 이 주어진 활자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아무런 제약없이 어떤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든 다 가능했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 중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맺어진 무언가들에 대해서만 조금 언급해보려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함께 혼자다. (본문 87쪽 중에서)



어릴 때에는, 인생 결국 혼자라는 말에 대해서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항상 내 마음을 채워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과, 인생의 순간들을 함께 헤쳐나갈 때 의지할 수 있는 귀한 친구들이 내 주변에 이미 있는데 왜 인생이 혼자인 것처럼 다들 말할까. 어쩌면 이런 환경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지금도 나에게는 변함없이 내 마음의 안식처인 가족들이 있고, 평생을 함께 할 귀한 인연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함께 혼자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문제도, 정신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다만 본질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더군다나 그르니에는 더욱 본질적인 것을 한 가지 더 짚었다. '인간은 혼자다'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함께'라고 표현한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로 그렇기 때문이다. 욕망이 없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존재하면서 무엇이든 욕망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을 때조차,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그 상태 자체를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혼자인 나 자신과 직면하게 된다. 그 공허함과 허무함이 우리를 압도하는 순간, 삶에서 내가 강하게 욕망해왔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 절망같은 순간에서 쉽게 구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그토록 자주 느끼곤 했던 공허이지만, 카스바에서는 그저 두 눈을 하늘로 들어올리기만 하면 그 공허가 가득 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이 아닌 사람은 대자연이 곧 노래인 고장에서 살도록 하라. 희망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 희망도 필요치 않은 곳에서 지내도록 하라.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한 사람은 이곳으로 와서 어린아이의 가벼운 맨발 리듬에 가슴의 고동소리를 맞추어 보라. (본문 39~40쪽 중에서)



그런 순간에 저자가 알제의 카스바에서 느꼈던 일련의 상념들을 살펴본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히 장 그르니에처럼 알제리의 수도로 가서 그 이슬람 고 성곽들을 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생의 어느 순간에고 우리가 기필코 마주하고 싶은 그 계시 같은 순간이 결국 요동치는 삶을 다시금 고요하게 만들 것을 알기에, 우리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가득한 그 어둠 속에서 마치 계시와도 같은 그 빛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혹은 일탈과도 같은 대자연 속에서, 혹은 일상이 난무하는 도시 속에서. 그 어디에서든 말이다.



나의 모든 행복은 내가 실에 꿰어 하나의 묵주를 만들지 못하는 낱알들에 불과하다.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지만 한순간만 지나면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부, 그러므로 전무. (본문 102~103쪽 중에서)



이렇듯 공허감과 일련의 허무함, 그 모든 것들에서 다시금 털고 일어나서 우리가 갈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사실 모든 것이 결국 허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것에 압도되어 사로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행복을 좇는다. 행복하기 위해 공부하고,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행복하기 위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삶에 완벽한 행복이라는 게 존재하던가. 그렇다고 느끼는 그 행복의 시간조차 사실은 찰나와 같을 뿐이다. 전부, 그러므로 전무라고 말한 그르니에의 표현은 어쩌면 가장 무심하지만 동시에 가장 진실된 삶의 본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르니에의 시선은 무심함과 허무함에 그치는가.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전도서 1장 2절의 구절처럼 그저 모든 것이 헛되어 절망으로 치닫는 것이 삶일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지닌 존재하는 힘 그 자체로 인하여 얼마나 아름다운가! (본문 62~63쪽 중에서)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물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존재의 모습들이 심지어 대리석이나 색채로 된 모습들만큼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본문 135쪽)" 그러나 타인에게서 얻어지는 의미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삶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선택들은, 그 순간에는 각각의 독립된 점들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살펴보노라면 그 점들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그 선들이 이어져 면이 되고 또 형태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과소평가 한다. 가난, 질병, 고독, 낯설음 때문에 마치 막다른 골목으로 내밀린 느낌이 들 때, 우리의 영원성은 우리에게 여지없이 모습을 나타낸다.(본문 89쪽)"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에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는 것일까.


*



젊은이들의 목적 없는 충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도피가 없다면 삶은 멈춰버린다. 그러니 도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 또한 다른 무엇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ㅡ 아니 나를 숨막히게 하는 그 모든 것과는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꺠달았을 때 비로소 살기 시작했다. (본문 108쪽 중에서)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와닿은 대목이었던 것 같다. 살아나가면 살아나갈 수록, 삶은 희극이라기 보다는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비극처럼 느껴진다. 행복에 고취되는 순간은 정말 찰나일 뿐이고 그 나머지 시간은 그 찰나를 조금이라도 맛보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는 일상들로 채워질 따름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가 항상 일탈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도피일 수도 있고, 나를 압도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나기 위한 도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종종 어디론가 여행을 훌쩍 떠나곤 하지 않던가.


저자는 생명이 넘쳐흐르지 않는 한, 젊은 시절 낯익은 이미지들로는 자신의 고독에 자양분을 공급할 수가 없다. 오직 온갖 꿈들만이...(본문 108쪽 중에서)"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 낯선 무언가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반드시 필요해진다. 나에게는 오랜만에 읽은 인문학 서적인 이 책, <지중해의 영감>이 그런 낯섦이 되었다.

저자가 지중해의 풍경들로부터 새로운 자양분을 공급받았고 무한히 열리는 사유를 경험했다. 그가 써내린 이 사유를 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텍스트에 나오는 소제목에 국한되지 않고, 그 풍경을 덧그려가며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온전히 생각하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르니에의 표현들은 아주 집약적이고 함축적인 것들이어서 지금의 내 깊이로는 완전히 담기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것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즐거운 자극이 되었다.


내 삶이 좀 더 다채로워지면, 내 경험의 폭이 더욱 넓어지면, 나는 지금보다도 그르니에가 적어내려간 이 생각의 편린들을 더 잘 받아들이고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깊어지는 순간이 오기까지, 나는 다시금 이 책을 반복해서 곱씹어 볼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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