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로크 사람들 [문화전반]

글 입력 2018.12.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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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대륙의 동부 주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반도 하나.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덟 개의 부족이 공존하는 땅. 이곳에는 나에로크인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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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나드(Nugnad)의 후예로 자부하는 나에로크인들은 오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는데, 그것을 살펴보는 작업은 대단히 흥미롭다. 우선, 나에로크 전설에 의하면 그들의 조상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비, 구름, 바람을 다스리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여자로 변신할 수 있는 이 땅의 상서로운 동물 모그(Mog)와 교합하여 마침내 나에로크의 건국자인 ‘눅나드’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나에로크인은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 내지는 우주 만물의 화합 이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곧 그들을 대표하는 부족 문양 ‘쿠에기트’(kuegeat)로 드러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신성한 동물 모그가 신비롭고 독특한 향을 풍기는 마법의 식물 ‘실라그’(cilrag)를 21일 동안 섭취하여, 그 신비로운 기운을 모아 여자로 변신하였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거의 모든 음식에 ‘실라그’를 첨가하여 모그의 상서로운 기운을 나누고자 했고, 모그의 21일간의 고행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자잘한 고통을 자처하는 가학적 풍습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그들은 악마의 열매 ‘랩팹데르’(reppep der)를 주기적으로 섭취하여 온몸이 달아오르고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거나,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한자리에 모여 의미 모를 주문 또는 노래와 함께 사람을 환각 상태에 이르게 하는 음료인 ‘우조스’(ujos)를 섭취하고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으면 다시 그것을 고통스럽게 구토하여 배출했다.

이러한 가학적인 성향 외에, 우리가 주목할 만한 나에로크인들의 특징으로는 그들이 모든 변화에 빠른 속도로 적응한다는 것과 매우 강한 집단적 성향을 나타낸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종합적으로 잘 나타내는 예시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옷차림이다. 나에로크인들은 매년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옷을 집단적으로 착용하고, 다음 해가 되면 그 전해에 입었던 옷을 창피하게 여기고 또다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그대로 따른다. 이들은 자신이 유행에 따르지 않으면 집단으로부터 배척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 사실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곤 한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연구 결과(2017년 기준)에 따르면, 나에로크 지역에는 누에고치처럼 거의 온몸을 감싸는 검은 색의 긴 솜옷이 유행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엉덩이를 덮지 않는 짧은 기장의 솜옷이 유행하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북쪽을 향한 얼굴’이라는 뜻의 특정 기호가 새겨진 솜옷이 권력과 명예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치장을 좋아하는 나에로크인들은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각종 변신 의식을 발전시켰는데, 가장 보편적인 의식으로는 아침마다 정체불명의 마법 용액을 얼굴에 바르는 의식, 주기적으로 머리술사 (머리술사는 성스러운 사원에서 하루 8시간 주술을 진행한다. 전통적인 사원의 입구에는 빨강, 파랑, 흰색으로 구성된 삼색띠가 빠른속도로 돌아가는 신비로운 기둥이 세워져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최근에 지어진 사원에서는 이러한 기둥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젊은 나에로크인들은 더 이상 전통 사원이 아닌 최신식 사원을 찾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에게 찾아가 신묘한 힘으로 머리의 색을 바꾸거나 머리카락의 형태(길이, 굵기, 모양 등)를 변화시키는 의식, 그리고 제자리에서 끝없이 연장되는 특수한 카페트 위에서 땀을 빼며 몸을 날씬하게 만드는 의식 등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 아름다운 외모는 강력한 권력이었으며, 심지어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몇몇 특수한 나에로크인을 우상으로 여기며 신격화하는 특이한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점은 매우 많다, 나에로크인(중에서도 특히 남자들)이 여가 시간에 즐기는 것 중 하나는 연기가 가득한 어둠의 동굴로 들어가 작고 빛나는 네모난 창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는 활동이었다. 이들은 네모난 창을 보며 가끔은 격분하기도 하고 가끔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주제로 한 대회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 대회가 유명해져 점점 더 많은 외부 지역의 주민들이 참가하는 추세이긴 하나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나에로크 사람들이 승리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간략하게 나에로크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았다. ‘낯선’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아마도 편견에 사로잡혀 은연중에 우월감을 가지고 살았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돌아보고, 낯선 것을 이해하여 익숙한 것과 연결 지어 그것을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고정된 틀을 깨부수고, 우리의 낡은 시각에 변화를 주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로크인(Naerok)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Korean)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한국문화인류학회, 일조각, 2006.



[한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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