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열아홉, 스물.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람]

환절기를 지나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18.12.0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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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입시에도 끝이 보인다.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온 나라에서 이번 수능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얹고, 12월 초가 되면 수능 성적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수험생들의 양쪽 귀를 멀게 한다. 그놈의 수능이 뭐기에 이렇게 목을 매나, 싶은 어른들도 있겠지만 다들 되새기자. 수능이든 학력고사든, 입시를 지나온 사람만이 뱉을 수 있는 여유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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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자신의 발에 흙을 묻혀본 적 없는 소년은 흙길보다 더 이상 꽃길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나는 꽃길을 갈망했지만 누군가는 흙길에 내팽개쳐지고 있었다.” - 연극 ‘비클래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춘들에게 채찍질 하지 못해 안달이었던 사회가 이젠 ‘느려도 괜찮아’, ‘도망쳐도 괜찮아’를 중얼거린다. 눈에 확 띄는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표지와 재치 넘치는 제목을 가진 소위 ‘힐링서’들이 서점에 즐비하다. 아파야 청춘이 아니고, 겪어야 청춘이라는 걸 사회가 너무 늦게 깨달은 듯하다.

꽃길과 흙길, 누군가는 꽃길을 갈망하지만 누군가는 꽃의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을 모순적인 세상이다. 누군가는 흙길에 나뒹굴며 눈물을 흘릴 때 누군가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남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단숨에 질주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열아홉, 나의 위치도 제대로 몰랐던 10대 끝자락만큼 위태로웠던 적도 없었던 듯하다.

수능을 마치고 나오니 온 세상이 어둠에 물들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인파를 헤치다가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웃었던 기억도 난다. 나의 수능과 입시는 평범했고 순탄했지만, 입시를 마친 후는 폭풍과도 같았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넌 노력만 하면 돼, 라는 ‘답정너’식 요구는 끝이 났고 이젠 ‘목적지도 네가 정하고 노력도 네가 해,’ 라는 자유 아닌 자유가 주어졌다. 아마 모든 열아홉과 스물들이 겪을 방황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난 뭘 찾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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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클래스’도 아닌 ‘B클래스’에서 B 딱지를 가슴팍에 붙이고 어떻게든 졸업을 위해 백짓장을 맞대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연극 ‘B클래스’다. 각자의 아픈 사연은 묻어둔 채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모두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간접적으로 위로를 건네며 막을 내린다. 너무나 후회되는 과거, 평생 잊지 못할 상처,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극 중에 나오는 이런 거창한 고난 외에도 우리는 각자만의 언덕이 있다. 인물 하나하나에 공감하며 눈물짓게 되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열아홉의 끝자락에서 되돌아 본 나의 인생은 참 단순했다. 내가 걸어야 할 20대, 3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인생은 너무나 아득해 보이지도 않았다. 20대의 어느 연말을 보내고 있는 지금도 미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능에서는 ‘당신의 미래를 계획해 보시오’, ‘당신이 내년 이맘때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상해서 적어 보시오’ 같은 문제는 묻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지식 없이 맞이한 스물은 화려하다기보다 무채색에 가까웠다.

사춘기도 지났는데 방황이 웬 말이냐며 자신을 다그치기 전에, 겨울이 지나면 무조건 봄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이도 저도 아닌 환절기 중간에 서 있는 건 1년에 두 번 씩 꼭 겪어야 하는 일이다. 겨울은 돌아오고, 여름도 돌아오고, 봄과 가을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난다. 어른과 아이, 겨울과 봄 사이에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도 주기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비로소 상처를 토해내고

알파벳 B를 내려놓는다.”



열아홉, 스물, 혹은 그 이상에서 끝자락을 걷고 있을 당신도 언젠가 상처를 토해내고 B를 내려놓기를 바란다. 언덕을 지났다 하여 낙원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니, 봄이 왔다 하여 겨울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 때늦은 사춘기에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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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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