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그 원인을 찾아서 #2

자존감은 어디쯤 위치하는가
글 입력 2018.11.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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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과 학생들은 일주일에 두 번 6학점짜리 설계 수업을 듣는다. 학년에 따라서 월요일, 목요일에 들을 때도 있고, 화요일과 금요일로 배정받을 때도 있다. 우리 학교는 2, 4학년은 화/금요일에 수업이 배정되고 3, 5학년은 월/목요일로 배정된다.

설계 수업은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스트레스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면서도, 세상에 존재할 법한 건물을, 도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성을 기반으로 한 창의력이 요구된다. 구조적으로는 안정적이면서도, 이때까지 세상에 없었던 시스템을 공간적으로, 물리적으로 구현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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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기는 쉽다. "네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데?"라고 물어본다면, 다들 꿈꾸는 집이 어떤지 소리를 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살고 싶은 집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일단 홈 짐(HOME GYM)이 있고, 침실이 다락방으로 따로 있고, 바람이 잘 통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저학년 때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렸다. 네모난 집을 그리고, 공간을 나눠서 여기는 운동할 수 있는 곳, 여기는 거실, 여기는 주방. 이런 식으로 면적 나누기를 했다.

그러나 설계는 이미 존재하는 그런 공간 분할의 개념이 아니라, 시스템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도면으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설계다. 내가 '어떤 공간을 만들 거다'라고 발표하지 않아도 내 도면만 보면 교수님이 '여기가 층높이가 높고 면적이 넓으니 로비 같은 공간이 되는 거구나! 수 있도록 평면과 단면과 입면 계획이 나와야 했다. 즉, 내가 평소에 즐기는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흘러갔다.

이전에 존재하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것을 제안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비현실적이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하면 그래도 자신 있었는데, 현실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니. 그래서 현실적이게 하다 보면 새로운 공간이 사라지고, 새롭게 하다 보면 또 논리적이지가 않다.

선 하나 긋는데도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여기에 길을 낸다.', '직선 말고 곡선으로 하면 부드럽게 공간이 열리고 사람을 유입시킬 것이다'라거나, 자기가 그리는 점 하나하나에까지 이유가 필요하다. 자기가 그리는 공간에 직접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실상 평면만 계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입체적으로 모형을 만들고, 옆에서 보면 어떨지 단면도 그리면서 동시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건축학과 학생들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면서, 몇 날 며칠씩 씻지도 못하고 설계실에 틀어박혀 치킨이나 시켜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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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 하나가 2kg 덤벨보다도 훨씬 무거운 것을 몇 권 빌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의 에너지를 다 소모한 것처럼 지친다. 반납해야 하는 기간이 다가오면 두렵다. 아직 다 보지도 못한 책을 반납하고 저만큼의 새로운 책을 가져와야 하니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연장' 버튼을 누른다. 그래도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반납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학기가 다 지나간다.

두꺼운 책에서 도면을 베끼고, 직접 그려보면서 나의 설계에 적용될 포인트를 찾아내야 한다. 그대로 베껴서 적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계란 것은, 땅마다 다른 건물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여러분은 용산역을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용산역 아이파크몰 앞에는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곳도 있고 담배를 피우는 구역도 있다. 넓은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도 많다. 조금 더 상세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용산역 아이파크몰 앞에 넓은 공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거기다가 어떤 건물을 지으라고 한다면, 그 건물을 짓는 것을 한 학기 당신의 설계 학점이 된다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겠는가.

막막할 것이다. 도대체 그 땅만 갖고 뭘 하란 거지? 뭘 지어야 하는 거지? 어떻게 짓는 거지? 얼만큼을 남기고, 얼만큼을 올려야 하지? 남쪽을 비울지, 북쪽을 비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우리는 SITE ANALYSIS라고 하는 대지분석을 시작한다. 그 땅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이 보통 주말, 주중 어느 시간대에 많이 분포하는지, 어느 길로 많이 이동하는지, 사람들이 거기서 주로 무얼 하는지, 왜 그 장소에 오게 되는지 그런 사람과 관련된 분석에서부터, 그 땅이 과거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남쪽이 어디이고 북쪽은 어디라서 따뜻한 곳은 어디인지, 소음은 어디서 많이 나는가, 차는 어디서 많이 다니는가, 버스는, 지하철은 교통수단은 어디서 탑승이 가능한가 같은 분석을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다른 땅에서 이 땅을 볼 때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여기에 어떤 건물이 어떤 입면을 가지고, 어떤 재료를 갖고 들어서야 어울릴지, 여기에 20층짜리 건물이 들어서서 다른 건물을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일 것인가 등 온갖 추측과 분석을 통해서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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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사람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상업 시설을 두면 매출이 늘어날 것이다.' 아니면 '걷기 좋은 길을 내어주면 대지를 활용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공공적으로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등 디자인 아이디어는 자신의 선택이며, 그것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어떤 게 가장 좋은지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설계다. 그러나 보통은 그런 아이디어가 잘 생기지 않아 CASE STUDY(사례 조사)를 많이 하는데, 그때 필요한 게 도면이 많이 그려진 책들이다.

책을 보고, 도면을 베끼며 이런 상황에서 이런 도면이 나온다고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자신의 설계에 적용해본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는 3일~4일간 그려온 도면, 모형을 전시해두고 교수님께 크리틱(조언/비판)을 받게 된다. 그때 변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점이 더 필요할지를 알게 된다. 최종마감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과정을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늘 완벽하게 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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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초기 계획안이라 비루하지만, 오늘 만들어본 도면들이다. 또 '그놈의 완벽주의' 때문에 전날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정작 과제는 금요일 새벽에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완벽주의 때문에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학교에 아예 가지 않는다. 학교에 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서 뭐라도, 모르는 거라도 물어보면 되는 건데 '뭔가 있어 보이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아파서' 빠진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세지도 못하겠다. 설계 수업은 실기 수업이라 다행히 최저 B+를 받기 때문에 출석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매번 출석하는 성실한 학생들을 따라잡기란 역시 힘들어서 성적과 출석은 비례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화요일 저녁부터 금요일까지, 그렇게 시간이 많은데도 왜 그 시간을 괴로워하고 딴짓하는 데 다 보내고 급해지니까 그제야 시작할까. 회피하는 거다. 귀찮으니까 두려우니까 조금만 미루고 해야지,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밤새워서 해야지, 하고 급하게 만들어진 도면이 좋을 리가 없다. 수업 시간에 크리틱을 받다 보면 교수님도 알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도면에 들어간 정성이 전문가의 눈에는 보인다. 정말 하고 싶었다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했겠지, 생각하면 나는 이 작업을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구나 알게 된다.

11명의 작업물을 벽면에 붙여놓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전부 다 미완성이라서 발표는 <자기에게 더 필요한 것,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을 발표하라고 하셨다. 자기의 잘한 것을 발표하라고 하는 이때까지의 교수님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나저나 모든 학생이 미완성이라고 하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또 나의 바보 같은 완벽주의를 깨달았다. 왜 나는 최종 마감도 아닌, 그냥 평범한 하루마저도 평가받는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을까. 그 평가에 완벽하게 변호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왜 학교에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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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내가 완성되지 않은 것을 가져갔을 때 교수님이 나에게 보일 실망감이. 잘한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나의 미완성된 도면들과 패널, 모형은 얼마나 비루해 보일지, 그때 내가 느낄 수치심이 두렵다. 그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나는 눈을 어디에 두고 있어야 할까. 학생으로서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취미생활이라며 하루에 1~2시간씩 운동이나 하고 있고, 정신병을 극복해야 한다는 핑계로 책이나 읽고 있으니.

사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거다. 실제로 오늘 학교에 가서 크리틱을 받을 때도 그 누구도 완벽한 도면 세트를 가져오지 않았고, 심지어 진도가 너무 늦다고 혼나는 학생들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걱정하는 데는 과거의 실수 때문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한창 새내기 때 술 마시고 노느라 학교, 팀플도 잘 안 가고, 발표도 불성실, 설계도 대충해서 늘 다른 학생들의 학점이 안정적으로 되는 받침돌이 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가 받았던 부정적인 평가를 지금 와서 다시 받게 될까 봐 두려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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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나는 선배들이랑 술 마시고, 클럽을 가고, 공부는 관심도 없고, 친구들이랑 또 술 마시고, 팀플은 오지도 않아서 2인 1조 팀플을 혼자서 다 하게 하곤 했으니까. 설계수업처럼 실기 과목인 제도 시간에 제도판에 얼굴을 박고 코를 골면서 자느라 교수님이 "쟤는 공부 포기했나보다"라고 말할 정도로 답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전 영어 교양 수업 직전에 소주를 한 병 들이키고 학교에 가서 뻗어버리는 바람에 원어민 교수님이 나를 집으로 데려주라고 해서, 나보다 키 작은 친구가 나를 둘러업고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던 수치스러운 기억도 있다.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동기들은 당시 남자친구가 있던 나에게 "이번엔 그 선배를 노리냐?"고 우스갯소리의 농담을 할 정도로 나는 수많은 남자 선배들과 친했다. 이것저것 대외활동을 해보고 싶어 댄스동아리와 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해놓고, 마주쳐서 말하기는 무서우니 문자로 때려치우고 마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대학교에 가기 전의 나는 물론 그런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다. S 대학교에 지역균형전형 교장 선생님의 추천을 받을 만큼 우수한 성적을 가졌고, 친구들은 모두 나를 노력하는 천재 취급했다. 쉬는 날에는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을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들은 많았지만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체육대회 때도 꼬깃꼬깃 영어단어 수첩 한 장 체육복 바지에 넣어두고, 내 순서가 아닌 때에 읽어보는 그런 전형적인 1등의 모습이었다. 그때 그런 나를 좋아하던 같은 반 아이가 물어봤다. 그렇게 공부만 하고 사는 거 후회하지 않느냐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든 후회하지 않을 거다."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한순간, 한 학기 만에 바뀐 것이었다. 한 학기는 즐겼지만, 여름방학이 되자 공허해졌다. 사람들은 나를 알코올 중독자로 여기며 피했다. 부산으로 동기들과 여행을 가서도 맨정신에서는 할 이야기가 없고, 계속 술만 찾으니 더는 같이 여행 다닐 사람이 없어졌다. 건강을 잃어 가슴 수술을 한 차례 하게 되었다. 바로 술을 끊지 못해 수업이 끝나면 늘 맥주 한 병을 집에 사서 들어갔기 때문에 그 뒤로도 수술을 여러 차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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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술에 관한 공부와 건축에 관한 공부를 해서 못다 한 한 학기를 따라잡았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가 자격증인 '조주기능사' 자격증과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술을 공부해서 내가 집착하는 대상을 극복해낸 것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내가 왜 중독이 되었는지를 열심히 공부했다. 나의 전공이 전혀 아님에도, 혼자서 힘으로 이겨낸 것이다.

건축 자격증도 따니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점점 달라졌다. 다들 '야매'로 하는 도면 치기를 전문가급의 속도와 상세함으로 하니 부러워하고,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모범생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술을 좋아하던 것도 자격증이 되니 취미생활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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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여름, 운동을 격하게 하다가 난소에 있던 종양이 터져버려서 응급 복강경 수술을 한 뒤로 술을 끊었고, 식단 조절을 조금씩 시작했다. 학교 공부는 더 열심히 하게 되어 이제는 팀플원을 정할 때 사람들이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나는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며 정말 열심히 팀플을 한다. 밤을 새운 날도, 설계를 끝내고 나서도 팀플을 가장 우선시해서 하게 되었다. 내가 팀원으로 있으면 사람들은 의기양양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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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목적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나는 늘 타인에게 보이는 공부를 했다. 엄마를 만족하게 하는 우등생, 엄마가 학교에 가면 누구나 전교 1등의 엄마라고, 공부 비법을 물어보는 '인싸' 엄마. IQ 테스트에서 85가 나왔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수치는 원숭이나 침팬지와 비슷한 수치여서, 나는 머리가 정말 나쁘구나! 절실하게 깨달았다. 동생은 150 정도에 가까운 수치라서 멘사 회원에 가입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진짜 머리가 나빠서 노력해야 한다고.'

그래서 노력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절실하게. 수학 문제집 그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풀이를 다 적고, 또 풀고 또 풀고 가득 차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가들 찰 만큼 풀었다. 그 페이지는 너덜너덜해졌고, 문제집 전체가 너덜너덜해져서 처음의 2배 정도의 부피가 되었다. 영어 지문은 전부 외워버렸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문법이 나와도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어 풀 수 있도록. 내가 모르는 문제는 시험에 애초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범위 전체를 외워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요즘도 나는 공부를 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핸드폰으로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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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된 작품을 가져가면, 그 암흑기 시절의 내가 되는 것 같아서 두렵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절. 술에 찌들어서 내 삶을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나를 피하던 그 시절.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다른 남자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였던 그 시절. 그리고 사실은 그 시절 속의 가장 허무했던 나. 아무것도 없었던 공허한 내가 될까 봐 두려웠다. 머리는 나빠도 노력하는 게 나였는데, 그 노력마저 없어진 나라면, 나는 뭐가 남는 건가.

타고난 것이 없다. 머리도, 몸매도, 그 어느 것도. 남들은 쉽게 생각해내는 아이디어도 나는 책 8권을 봐야만 겨우 한가지 떠올릴 수 있다. 남들은 수업 한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전공 지식도 나는 6번 이상은 봐야 머릿속에 겨우 기억할 수 있다. 그래, 남들은 정말 쉽게 하더라. 근데 나는 그게 정말 안돼. 비교당할 바엔 아예 가지 않는 게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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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식의 종말 中-


그 공허함의 빈자리는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으로 울고, 괴로워하고 볼 다 꺼진 고시원 방 안에서 핸드폰을 봤던 그 자리를 나는 요즘 음식으로 채운다. 나의 무능함을, 나의 수치심을, 노력하지 않는 나의 공허한 자리를 끝없이 채운다. 채우고 채우다 어느새 거울을 보면 위장이 터질 것처럼 부풀러 있다. 그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다. 씻으러 들어간다. 이번에는 토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씻지만, 이미 음식물은 소화되지 못할 과포화 상태다. 그래서 결국은 제거를 한다. 다시 씻고 나온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다시 공복.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다시 먹고, 그런 자신에게 다시 역겨운 더러움을 느끼며 제거를 하는 무한 사이클.

벗어나야지, 벗어나야지.

하지만 내가 벗어나고 싶은 대상은 나이자, 벗어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면 사랑해야지, 자신을 사랑하라.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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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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