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느 고택이 품고 있는 비밀,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우린, 뭘 믿고 살아온 걸까. 또 뭘 믿고 사는 걸까.
글 입력 2018.11.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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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라는 말은 어딘가 미숙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신선하고 또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를 설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애인의 군복무 제대 이후 '처음'으로 문화데이트를 누린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40주년 기념으로 '새롭게' 지어진 S씨어터의 '첫' 작품, <사막 속의 흰개미>였다. 나에겐 여러모로 처음인 것들로 채워진 이 공연은 관람전부터 설렘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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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교통체증으로 공연의 시작 직전에 간신히 도착해 마지막 좌석, 객석 맨 끝자락의 자리를 얻게 되었지만 무대를 둘러싼 형태로 객석이 마련되어 있어 마지막 자리가 곧 처음이었다. 무대 양쪽 끝으로 배우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배우들이 무대를 향하기 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S씨어터의 블랙박스형 구조를 잘 활용한 <사막 속의 흰개미>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제껏 내가 경험한 모든 공연작품들은 2D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객석으로 무대를 둘러싸니 배우들의 연기를 360도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배우들은 무대에 있는 동안 그 누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완벽하게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여 감정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극중으로 빨려간 듯이, 내 눈 앞이 모두 무대가 되는 공연에서 생생하게 관람하다 보니, 앉은 자리가 곧 극을 보는 관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연극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100년된 고택의 문쪽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문을 드나드는 인물에 초점을 두고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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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개미 연구를 위해 고택을 드나드는 사람들

100년 된 고택이 흰개미의 발원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찾아온다. 연구원들은 흰개미떼가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해가던 중, 집안 사람들이 숨기려고 하는 고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정작 숨기려고 할수록 흰개미떼는 점점 모여들어, 거대한 페어리 서클을 이루고 고택을 갉아먹기에 이른다.

대형교회의 목사인 석필은 교회 내부의 일로도 골치 아픈 터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한편, 고택과 흰개미떼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는 연구소 팀장, 연구소 인턴, 해외 연구원 이 세 인물은, 짧은 호흡으로 극을 빠르게 이끌어가면서도 각기 다른 매력으로 문제를 파고들어가며 관객들도 같이 빨려들어가게 한다.



15년 전 그날, 고택을 드나들었던 사람들

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연구를 시작한 그날, 15년 만에 고택을 찾은 지한은 처음 이 고택을 방문했던 날 있었던 일에 대해 회상을 하고, 석필은 그날이 기억에 나지 않는다며 그를 피한다. 15년 전 그날, 고택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또 누구였으며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극의 흐름은 서서히 파고들어가듯 천천히 흘러간다.

과연, 15년 전 이 집에서 있었던 일은 무엇인지,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일이 현재의 흰개미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오직 공연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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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문과 대들보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흰개미가 이루는 페어리 서클에 대한 에밀리아의 연구에 대해 소개하기 위한 빔 프로젝터와 극의 후반부에 흰개미떼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무대 장치는 눈과 귀를 흥미롭게 했다.

진실을 회피하려는 사람, 진심을 다해 호소하는 사람,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집안을따르는 사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물을 막고 담을 쌓은 사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려는 사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려는 사람, 시끄러운 일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하는 사람. 이들이 드나들었던 고택의 문을 통해 내가 본 것은 비단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였다.

흰개미 떼의 서식지가 되어 버린 고택과 그 주변을 거대한 페어리 서클처럼 둘러싸고 자란 수풀, 그리고 그 안에 무언가를 감추려는 사람들까지 알 수 없는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우리사회를 투영한다. 집을 갉아먹고 있는 흰개미와 무너져가는 고택은 마치 이 사회가 지닌 불안과 위태로움, 허위와 가식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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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속의 흰개미 
- 세종S씨어터 개관기념작 - 


일자 : 2018.11.09(금) ~ 11.25(일) 

시간 
평일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7시 
일 - 오후 3시 
화 - 공연없음 

장소 :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공연시간 : 100분 

문의 
서울시극단 
02-399-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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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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