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고독한 휴머니즘 영화, <이창> [영화]

글 입력 2018.10.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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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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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사 제프리는 카레이싱 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 6주 동안 아파트에 갇혀 지낸다. 방랑 생활에 익숙한 그가 처음으로 한곳에 머물며 얻은 새로운 취미는 창밖의 맞은편 아파트 이웃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속옷만 입은 채 아침부터 몸을 푸는 발레리나, 온종일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곡가, 무더위에 베란다에 침대를 두고 잠을 자는 부부, 지친 세일즈맨과 그의 바가지를 긁는 병든 아내, 외로움에 남자가 있는 상상을 하다 슬퍼하는 한 여자(미스 고독) 등.


눈을 뜬 순간부터 잠 들 때까지 휠체어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던 제프리는 어느 날 세일즈맨의 수상한 행동을 발견한다. 그는 세일즈맨이 그의 부인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하고 그를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편, 제프리를 사랑하는 리사는 그에게 결혼을 청하지만 제프리는 리사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여 밀어내고, 그녀는 그런 그를 계속해서 설득한다. 그러던 와중 세일즈맨의 수상한 행동을 함께 목격한 그들은 한 팀이 되어 그를 관찰하는 것을 계속하고, 결국 그의 죄를 경찰에게 입증한다.




사생활 침해인가, 이웃에 대한 사랑인가?

아파트를 자유롭게 뛰어놀던 강아지가 누군가에 의해 의문사를 당하자 그의 주인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울부짖는다. 그러고도 당신들이 이웃이냐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이웃의 생사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그저 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쌍안경을 꺼내들고, 그도 모자라 무거운 망원 렌즈를 이용해 열심히 창 밖을 엿보던 제프리는 미스 고독의 상처 입은 모습을 보고 불현듯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단 죄책감에 관찰을 잠시 멈춘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벌어진 강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다시 관찰을 시작하고, 이어서 미스 고독이 자살하려 한단 것을 눈치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가운데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단연 미스 고독이었다. 그녀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혼자 치장을 한 채 남자가 눈앞에 있는 듯한 행동을 하고 이내 그런 자신의 모습에 슬퍼한다. 또한 아무 남자나 들여 그에게서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결국 다량의 수면제로 자살 시도를 하는데 불확실한 사건의 정황만을 가지고 친한 경찰 친구에게 수시로 전화하는 제프리는 정작 세일즈맨에게 정신이 팔려 그녀의 자살 시도는 신고하지도 않는다. 다행히 그녀는 작곡가의 피아노 연주에 감동하여 다시 살기로 한다. 또한 그녀의 외로움을 작곡가가 채워줄 것으로 보이는 결말이 희망을 준다.

제프리의 이러한 '엿보기'는 과연 사생활 침해일까 아니면 이웃에 대한 사랑일까. 제프리는 엿보는 행위를 통해 살인사건을 밝혀냈다. 또한 한 여성의 우울증을 눈치챘다. 그러나 범인을 잡는 것은 성공했으나 그녀의 죽음을 막은 것은 그가 아니었다. 만약 자신을 온종일 지켜보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 있는 남자의 존재로부터 위안을 얻었을까. 아마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이 들고 이는 그녀에게 더욱 큰 상심을 가져다줄 것이다.



히치콕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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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관찰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관찰은 프레임 안에 세상 속 이야기를 담는 것이 익숙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놀이였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살인사건을 밝혀냈지만, 그렇다고 '엿보기'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몇 년 전, 집 안에서 나체로 있는 남자를 본 이웃들이 그를 신고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검색해보니, 미국 조지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집 안에서 나체로 있는 것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구조가 문제가 된 것이었지만, 그저 자기 집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만약 내가 창문에 블라인드를 걷지 않은 채로 나체로 있는데 누군가 보고 신고를 한다면, 당연히 나는 내가 옷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아닌, 사생활 침해를 당했다는 수치심과 불쾌함이 들 것이다.

제프리는 한곳에 정착하길 원하는 리사가 위험한 곳을 쏘다니는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며 밀어냈지만, 결국 세일즈맨의 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행동을 한 것은 리사였다. 제프리는 그저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엔딩 앵글은 결국 깁스를 더 얻게 된 제프리를 지나 리사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비춘다. 히치콕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60년이 지난 지금의 몇몇 영화보다도 이미 앞서 있다. 여성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창>이후 60년 뒤 제작된 성차별 영화 <위대한 쇼맨>이 현재 한국에서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져 인기리에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스릴러의 거장

영화 전체를 놓고 따지면 <이창>은 확실히 공포 영화는 아니다. 장르가 스릴러, 미스터리로 분류되어있지만, 오히려 나는 휴머니즘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일즈맨이 제프리의 아파트를 방문하는 시퀀스는 히치콕이 왜 스릴러의 거장인지를 보여준다. 영화 내내 평화롭게 울려 퍼지던 작곡가의 피아노 연주가 사라진 채 겁에 질린 제프리의 얼굴로 들어가는 줌인, 더치 앵글, 카메라 플래시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의 고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공포영화를 잘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영화관에서 봤다면 이 장면이 정말 무서웠을 거 같다.

배경이 한정적이기에 카메라 앵글이 단순하고 롱테이크가 많아 마치 연극을 보는 듯했다. 아파트 이웃들의 동시다발적인 행동을 따라가는 크레인 샷부터 주인공 제프리를 맡은 제임스 스튜어트의 과장된 연기 또한 연극을 떠올리게끔 했다. 히치콕의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아 이게 히치콕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50년대 시대적 특징일 수도. 더 많은 영화를 보고 공부해야겠다.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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