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로의 길 위에서, 도서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

글 입력 2018.10.1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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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가장 완벽한 간접경험이 된다. 전혀 몰랐던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관심이 가고 알고 싶었던 무언가를 담은 책은 독자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큰 불씨가 된다. 이번에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만난 도서 <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가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좀 더 무모하고 어렸던 시절 멋져보였던 까미노가 실제론 어떤지를 느끼고 싶었던 나에게 저자 박재희는 스스로가 겪은 그 비일상 같은 일상의 순간들을 아주 선명하게 풀어냈다.





목차

#작가의 말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지도

#산티아고 제1막_몸으로 걷기

운명은 길을 떠나도록 만든다
버려야 하느니라, 버려야 사느니라
왜냐고 제대로 묻지 않고 살았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여행, 팜플로나 유감
용서는 정말 신에게 속한 걸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짝사랑
머물고 싶지만 머물 수 없는 도시
대체 난 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아이들은 나비가 되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말
길은 문제를 찾을 수 없다?
까미노의 마법,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나타난다
해가 솟듯 무언가 가슴에서 솟아 올랐다
열 여덟살 마엘이 나를 깨우쳤다
제기랄! 순례자는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드디어! 부르고스!

#산티아고 제2막_마음으로 걷기

디어 마이 프렌드
까미노에선 세속의 모든 것이 하찮아진다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삶뿐 아니라 죽음에도 공평한 축복을
엄마, 그 슬픈 이름
어떻게든 다 낫게 해주셔야 합니다
난 뭐가 되고 싶은가?
괜찮아, 다 괜찮아!
레온, 이 도시가 나를 거부한다
세상에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한국 청년이 1만 유로를 되찾은 사연
너의 화살표는 무엇이냐?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빈치 코드』의 템플기사단을 만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

#산티아고 제3막_영혼의 길

헨드릭의 친구 마티와 내 친구 미영이
키스 하는 사람과 키스 받는 사람
까미노는 나를 항복시켰다
순례자에겐 각자 다른 까미노가 있다
밥이 주는 위로
피를 나누지 않았다고 가족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랑의 힘, 혹은 그들의 고해성사
산티아고를 앞두고 또 한 방 맞았다
납득할 수 있는 '엔딩'이 필요했다
그리고 피스테라
마지막 드라마, 콤포스텔라
나의 새로운 순례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까미노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 있다. <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를 쓴 저자 박재희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까미노를 찾은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퇴사 송별회에서 불쑥,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작정이라는 말을 공언해버렸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꺼낸 말인 만큼, 그 말 한 마디에 여러 사람들의 말들이 덧붙었고 이는 곧 까미노로 가는 게 아주 확정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저자가 까미노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이토록 사소했다는 게 의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분명 알 것이다. 생각보다도 인생의 기회들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무언가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거창한 시작에서부터가 아니라 미완의 어떤 것을 불쑥 내뱉고 나서 그것이 점차 다듬어지고 빚어져가며 완성이 되는 것들이 인생에서 드물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저자의 까미노행이 이런 우연에서 시작했다는 게 더욱 기쁘게 와 닿았다.


삶의 모든 일들이 꼭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가. 그건 마치 가치 있는 일이어야만 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물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그 결과가 나에게도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향이 극에 치달으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무언가를 하게 되는 순간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진다. 인생은 어차피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생은 계획과 우연이 엮여 내가 예상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전혀 다른 무언가를 나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아도 좋은 것이다. 그래야 내가 의도한 순간이든 우연의 순간이든, 인생의 편린들을 조금이라도 더 즐길 수 있으니까.


*


지금보다도 더 치기 어리고 또 조금은 더 무모했던 날,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척 들뜨고 기뻤다. 삶을 사는 동안 한 번은, 그 길 위에 서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 순례길에 선다면 나도, 순례자의 마음으로 이전을 돌아보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 때보다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세상을 알게 된 지금, 나는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고 낯선 것에 도전하지만, 사실은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그곳에서 정말 찾아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자 박재희가 이미 사회생활을 오래했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아직 저자만큼의 인생 경험이 쌓이지 않은 나조차 사회의 때가 묻은 건지 기대감과 설렘이 많이 옅어졌는데, 저자라면 그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인생이란, 아니 운명이란 때로 이런 식이다.

운명은 딱히 갈 필요가 없는 길을 떠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우연같은 운명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내한 저자가 너무도 놀랍고 대단하다.


*


저자 박재희에게 까미노는 어떤 길이었을까. 그는 까미노의 현장들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 순례자들끼리 서로를 보듬으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모습도, 자본주의가 잠식해버려 순수한 순례의 모습을 잃어버린 듯한 일부 지역들의 모습도, 삶 가운데 아픔이 있었던 여러 순간들도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채워지는 노라운 순간들까지도 말이다. 결단코 편하지 않은 시간들이었겠지만 그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압도당한 순간이 언제였을까 하고 생각해본다면, 34번째 이야기일 것 같다.

"까미노는 나를 항복시켰다"라고 말하는 소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아주 깊게 가라앉았던 날에, 음악을 들으며 8시간을 내리 걸었던 저자는 그 날의 목적지보다도 더 간 그날의 종착지에서 기약없이 헤어졌던 이전의 순례자들을 다시금 만났다. 그의 까미노 인연을 다시 만난 그날 밤을 그린 이 대목은, 어쩌면 <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의 압축본이었던 것 같았다. 까미노에 선다면 어떨 것인지, 그 어느 부분보다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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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곱씹어보았던 곳은 23번째 이야기, '난 뭐가 되고 싶은가?'였다.


제목부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일생 일대의 질문이 아닌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 질문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인생이 계속 그 질문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생물학적인 나이가 그다지 체감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는 제일의 푯대나 다름없어서 그런지, 이 책의 목차를 볼 때에도 이 챕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꿈이 뭐냐는 물음에 우리는 왜 기껏 직업만을 떠올려왔던 걸까.

장래에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데, 겨우 '앞으로 이런 일을 해서 먹고 살래요'라고 대답하는 건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직업을 꿈으로 삼고 그것에 집중하며 달려왔던 내가, 전혀 꿈꿔본 적이 없던 직업을 가지고 나니 인생의 방향성이 없어졌다는 느낌에 상실감을 느꼈던 것이. 저자는 뮤지컬배우가 되기 위해 2년이나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통역을 업으로 삼은 루시가 아마추어 팀으로 뮤지컬 활동을 계속 하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루시를 보며 '꿈'으로 포장하고 사실은 '장래직업'을 묻던 낡아빠진 문법을 거부할 수 있었다.

높은 수입을 성공이라고 부르는 법칙에 따르지 않을 작정을 하고 나니, 오히려 꿈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이제서야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자 박재희의 글을 본 나야말로, 이제서야 꿈이 커지고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전의 꿈이 높은 수입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꿈이 내 직업이어야 한다는 그 하나의 틀은 확실하게 부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치 이제서야 현실 속의 나와 이상 속의 내가 화해하는 것 같았다.


*


저자 박재희와 함께 걸은 산티아고 순례길. 40일간 그가 느낀 위로는 글을 통해 나에게도 절절하게 와닿았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정말 인생의 단편들의 집약체였다. 바람처럼 물처럼 욕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이 채워지기도 하고, 극도의 고통과 침잠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각자의 순례길을 가는 귀한 인연들과 가장 비워졌을 때 그를 채우는 깊은 감동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서 <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즐거움은, 총 43가지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동안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조가비 모양의 도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장을 보면서, 나도 까미노의 한 지역 한 지역을 찍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도 이 여정이 끝났으니 콤포스텔라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까미노를 생생하게, 그리고 생각해보면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 까미노행을 결단하게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자 박재희가 퇴사 송별회에서 불쑥 내뱉은 한 마디로 운명처럼 까미노를 향했듯이, 나는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만난 까미노 순례기 <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를 만나 까미노행의 운명을 느꼈다. 그 어느 먼 미래 같은 순간이 현실로 도래한다면, 나는 비로소 운명 같았던 지금을 다시금 곱씹게 되지 않을까.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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