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제 오늘 그리고' 언제나 서있는 중인데요 _ 연극 9월

벌써 지나간 9월의 끝에서
글 입력 2018.09.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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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9월_포스터.jpg
 
 
최근에는 꽤 그런 작품이 많은 것 같다. 내용보다 줄거리보다 '보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지는 그런 작품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할 일은 이것이다. 연극이 지나가는 중에 그리고 스쳐간 자리에 남은 감상들을 주워담는 것. 이번 설유진 연출의 <9월>도 그런 것이다.

연극엔 다양한 가족들이 나온다. 얽히고 섥혀 이 관계가 맞는건가 본인의 기억력을 의심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 기차역에 모인다. 모두가 들르지만 결국엔 스쳐가고 마는 그런 기차역. 작품의 '기차역'의 위치는 북한에 인근한 작은 마을로 두고 있었다. 그 기차역에선, (기차역의) 근호와 리아, (기차역을 찾은) 선희와 해리, (기차역을 떠나려는) 영주, 그리고 미묘한 역무원이 잠시 혹은 오랫동안 머무른다.

의자 몇 개와 하얀 선의 미묘함에서 관객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보통의 요즘의 연극은 관객에게 생각하기를 권유하며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쯤되면 관객의 감상의 중요도는 더 높아지곤 한다.

그러면 이번 리뷰에서 필자가 남길 글의 방향은 이것이 되겠다.


'무엇을 느꼈던가'. 나는 그 사람들을 그 기차역을 보며 무엇을 느꼈었나.


어제 오늘 그리고
기차역
그리고 9월

 
이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의 커튼콜 장면이다. 모든 사람이 막무가내로 춤을 추고 조용필의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다. 이름조차 시적이고 범상치 않은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 간 인생길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했나
텅 빈 가슴 속에 가득 채울 것을 찾아서
우린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끝없이 시작된 방랑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는 울었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

<어제 오늘 그리고> 결국 3분 59초에 걸쳐,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정처없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뼈가 저리도록 여러번 느껴온 그런 감정이 아닌가. 기차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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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기차역의 모습은 허전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몰리지만 몰린만큼 또 떠나간다. 기차역이라는 게 그런게 아닌가. 이번의 추석에 수많은 사람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실어 놓았을 기차역의 마지막 모습은 또 결국 허망했을테다. 그 기차역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연극의 제목도 별반 다르지 않다.

9월

9월동안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런 것이었다. 낮 밤으로 온도차가 심해지는 날들을 이제는 살고 있다는 것. 9월에 걸쳐 해는 짧아졌고, 온도는 차가워졌다. 9월은 그런 달이다. 큰 보름달이 뜨지만, 이 또한 언젠간 지나갈 것, 해는 밝고 날은 뜨거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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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목을 달고 있는 연극의 내용은 어떠한가. 결국 모든 것은 풀리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두어진다. 마지막 커튼콜 배우들의 막무가내의 춤사위에 대체될 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노래의 가사처럼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게도, 추석이 지난 기차역의 모습과 같게도, 또 여름밤이 지나간 후의 쌀쌀함처럼 허무하고 남은 것이 없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남은 것은 없지만, 여전히 그곳에 그 모든 것은 서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서있다. 어제 오늘 등을 맞은 우리는 여전히 서있고, 사람들을 보내고 난 뒤의 기차가 지나간 역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곳은, 그곳의 의자들은 서서 있다. 마지막으로 여름밤 뒤의 9월은 차가운 공기 속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서있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 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결국엔 뜨거운 여름밤을 보낸 사람은 여전히 있다. 그곳에 서서. 9월의 기차역에 머물러 있던 근호와 리아, 선희와 해리, 영주 그리고 역무원까지. 갈등과 사건을 겪고 그것이 결국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또 다음의 사건들을 맞기 위해 여전히 자신의 삶 위에서 서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여전히 서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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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결국 내용보다는, '관객의 보는 행위'가 중요할 것 같은 이 연극을 마주하고 느낀 것은 이것이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이 스쳐가고 그래서 허무하지만, 9월과 기차역의 의자와, 그리고 조용필 노래 속의 누군가도 결국엔 계속 서있었다는 것. 무엇이 남았는가보다 시간들보다 이곳에 내가 남아 서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을.

구조와 내용과 시간들이 특이했던 9월의 '9월'을 보내며, 필자는 필자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차표를 닮은 표를 들고 잠시나마 가만히 있어야 겠다. 무엇이 남았는가를 생각하기 보단, 이 곳에 서있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있겠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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