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귀 기울여 듣는 < 박완서의 말 > [도서]

글 입력 2018.09.0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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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말.jpg

<박완서의 말>

<박완서의 말>은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 중 
책으로 엮이지 않았던 것들을 호원숙 작가가 엮어낸 책이다.


SNS 피드를 내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스쳐가듯이 본 첫인상이지만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완서의 말’이라는 제목부터 시선에 박혔다. 그분의 성함 그리고 흑백사진을 보고는 그리움이 불쑥 솟아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른다.

<박완서의 말>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기록해보려 한다. 책 속의 문장을 모조리 옮겨 적을 수는 없기에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들만을 최대한 추리고 내용을 덧붙였다.



사람의



요즘 과학이 발달하여 사람의 수명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수명만 길면 뭐해요! 내 보기에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하는 정신적 전성기는 전혀 늘어난 것 같지 않고 되레 후퇴한 기분이에요.

26p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시작하고 싶다. 위 문장은 한 문단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고, 여기에 나의 의견을 덧붙이면서 원래 박완서 선생님의 의견과는 결이 다를 수도 있다.

나는 ‘행동을 막으면 자연히 사고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지나가듯이 본 말이 있다. 설명충이라느니, 선비라느니, 오글거린다느니, 이러한 말들이 생겨나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 소신 있고 곧은 사람,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어디론가 숨어버렸다고.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비교적 최근 생긴 단어들의 영향력은 굉장했다. 그 단어들로 스스로가 규정되지 않도록 눈치를 보게 됐으니까. 행동을 막으면 그 행동을 추동하던 사고도 머지않아 둔해진다. 경멸적으로 사용되는 어휘들이 본성을 공격하는데 쉽게 사용되는 환경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데에 크게 주저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경멸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본질은 점점 바래지고 무뎌진다.

나 또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나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검열하고 깎아내리게 만드는 세태가 머지않아 멈추길 바란다. 정신의 성숙을 꿈꾸는 사람들의 흐름을 차단해버리는 모든 영향들도 사라지면 좋겠다.

사람의 몫과 그 몫을 다하는 일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착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늙음조차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182p


저도 인생의 쓸데없는 허세나 욕심을 덜어버리는 작업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버리면 버릴수록 사람은 더 넉넉해지는 법이니까요.

189p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벌써 고민하기에 너무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의 생각과 경험이 쌓여 먼 훗날의 나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지금부터 조금씩 고민해보지 않을 이유는 또 없다. 결국 어떻게 사느냐는 어떻게 나이 드느냐와 동일선상의 문제 아닐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들 한다. 나의 경우 분명 몸의 성장은 멈춘 지 오래다. 지금은 내면의 성장에 관심이 많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도대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남들의 시선에서 좋은 사람의 기준은 다 다르다. 좋은 사람에 대한 하나의 특징을 놓고서도 완전히 대립된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면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일단 임시 결정을 내렸다.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을 소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기로. 선생님께서 쓸데없는 허세나 욕심을 덜어버리는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을 때 너무나도 반가웠다. 내 가치관의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기분이라 괜히 신이 나기도 했다.



소설가 박완서, 따듯하고 강인한 사람



그냥 살다 보면 문학이란 게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본질적으로 억압받는다든가 서러운 계층, 그늘에 가려진 층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37p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안 겪어봤으니까 더더욱 다른 이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날 것’으로 다가왔다고 말이다. 문학을 하는 능력이 별스러운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처지를 내 것처럼 이해하고 상상하는 능력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127p


소설가로서 박완서 선생님의 따듯함이 돋보이는 문장들이었다.

소설은 현실의 모습을 비추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었더라면 선생님이 글로써 옮기지 않은 모습들은 현실의 소외된 구석에 숨어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통해 드러난 현실은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거나 새로운 시각을 터준다. 어떠한 태동을 만들며 연대하게 한다. 누구라도 가졌으나 누구라도 알아채지 못한 변화의 씨앗을 자극하고, 실제로 변화시킨다.


보통 겪으면서 안게 되는 상처는 묻어두고, 행복한 척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구요. 내 생각을 전달해서 남에게 공감을 얻어내고 싶은 것도 있지요.

144p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뭐든 의식화해서 기억 속에 챙겨두죠.

125p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내게로 오기를 원한다.

128p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똑똑히 보는 것, 모든 일을 기억 속에 꼼꼼히 챙겨두는 것,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은 상처들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것, 행복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한 자신을 오롯이 인정하는 것. 웬만큼 강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소설가의 작품 쓰기란, 보람되지만 그만큼 고된 수행을 반복하여 자처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박완서 선생님은 그런 고행을 견뎌 수많은 작품을 냈다. 공감을 이끌어내 수많은 독자들과 소통했다는 점에서 아주 강인하고 단단한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궤적을 남기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 영감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제 나름의 그물을 치고 있는데, 거기에 걸려드는 부분이 경험과 만날 때 어떤 영감을 부여한다고 할까요. 소위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나 소재는 문학에서 받은 경우는 거의 없고 문학 이외 사람들이지요.

38p


자꾸 자기 작품을 고치는 작가도 있지만, 그것도 성격인 것 같아요.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구요. 어떤 자기의 궤적같이.

87p


장르는 다르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본받고 싶은 문장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자기의 궤적’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감동받았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글을 업로드 하고 있다. 글의 구상과 기획, 작성 시작까지는 비교적 순탄해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글을 퇴고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삐뚤빼뚤하게 튀어나온 내 글을 보노라면 성에 차지 않는다. 퇴고를 하고 또 해도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보이고, 수정할 수조차 없어 답이 나오질 않는 부분들이 많아도 정해둔 마감 기한이 있으니 결국엔 글을 놓아줘야 한다.

나 혼자 보는 글, 혹은 단 한 사람(예를 들면 제출 과제나 대상이 정해진 편지)을 위한 글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이 읽게 될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큰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었다. 책임감이 커지다 보니 글을 올릴 때에도 더 신중해진다. 신중하게 썼어도 이미 올린 글을 다시 보면 철이 없구나 막 썼구나 싶은 글들도 보인다. 죄다 뜯어고치고 수정해버리고 싶다. 죄다 뜯어고쳐도 보다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의기소침해져서 그냥 외면하고 도망쳐버리고 싶다.

박완서 선생님은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더 큰 책임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다. 오래전에 썼던 작품을 리바이벌 할 때 전면적으로 수정을 할까 고민도 하셨다고 한다. 결국 선생님께서 내린 결정은 글을 그대로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자기의 궤적이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써온 글들과 문장들이 나의 궤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모든 글들과 문장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직 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개성 있는 흔적들이 아닌가? 철없고, 치기 어린 문장들마저도 그렇다.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지만 동시에 새롭게 마음을 단장하는 원료가 되어준다. 나의 궤적을 함께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민망하지만 또 더 잘 쓰고 싶고 좋은 글을 내놓고 싶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장 처음 기고를 시작하며 가졌던 건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그때 주인공은 홍차와 마들렌을 대접받고, 과거의 기억을 찾는다. 즉, 홍차와 마들렌이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이 책을 발견한 SNS가 나에게 마담 프루스트의 집이었고, 박완서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홍차이고 마들렌이다. SNS 피드에서 우연히 접한 그분의 성함 석 자가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내가 앉아 있던 교실의 풍경, 한 문장씩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었던 기억이 향긋하게 떠올랐다.

박완서 선생님의 모든 작품과 인터뷰를 섭렵할 정도의 열성팬은 되지 못했지만, 인터뷰들을 쭉 읽어나가며 그분을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듯했다. 이렇게 멋진 어른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오며 깨달은 것들을, 설교하지 않고 담백하게 나눠줄 때, 나는 그 이야기에는 자꾸만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더 이야기 해달라고 재촉하듯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고심하여 문장을 고르고 덧붙인 말을 남겼으나, 기록해두고 싶은 문장과 덧붙이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글을 마무리에 드는 기분은 왠지 아쉽기도 하고, 오늘따라 유독 자기고백이 많이 덧붙여진 듯해 약간 민망하기도 하다. 이 글 또한 나만의 궤적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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