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루샤가 알려주는 행복의 비밀 [공연예술]

넘버로 보는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글 입력 2018.09.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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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뮤지컬을 혼자 관람한다. 지인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뮤지컬 가격이 만만치 않기도 하고, 혼자 가면 지인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뮤지컬 공연에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연을 보다 보면 가끔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공연을 만난다. 내게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그런 공연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두고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랑스러운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를 소개한다.



#1. 존 그리어 고아원 제일 큰 언니




후원자가 고아원을 방문하는 매달 첫 번째 월요일은 고아원의 맏언니인 제루샤에게 정말 달갑지 않은 날이다. 후원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원장님을 도와 피곤하고 귀찮은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첫 넘버인 ‘존 그리어 고아원 제일 큰 언니’는 제루샤가 분주하게 ‘최악의 월요일’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침대 시트 정리부터 의자 광내기, 바닥 청소, 원생 100명의 머리 빗겨 주기까지. 제루샤는 이 피곤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최악의 월요일' 이라고 표현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후원자들의 모습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곧 키가 큰 후원자의 그림자가 거미를 닮았다며 즐거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하고 밝은 제루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넘버는 불만, 즐거움, 걱정과 같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제루샤의 독백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다른 아이가 제루샤에게 말을 거는 장면, 후원자가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 모두 다른 인물의 등장 없이 오직 제루샤의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이는 이 극의 전체적인 이야기 진행 방식이기도 하다. 극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들이 제루샤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이 섞인 묘사를 통해 전달되므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제루샤의 내면에 몰입하게 된다. 키다리 아저씨가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극이라는 극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순수하고 당찬 제루샤가 묘사하는 세상은 책 위로 올라온 거미 한 마리를 보고 행복의 비밀을 깨달을 만큼, 아름다운 의미로 가득 찬 세상이기 때문이다.


 
#2. Color of Your Eyes




‘Color of your eyes’는 제르비스와 제루샤가 처음으로 만나 대화하고 교감하는 모습을 그려낸 넘버이다. 제루샤는 처음 만난 제르비스에게서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베일에 싸인 키다리 아저씨와도 눈을 보며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제르비스와 제루샤가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2인극으로, 관객들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감정과 대화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로맨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교감과 관계의 성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가 평범한 로맨스 이야기를 넘어 세계적인 힐링 뮤지컬로 손꼽히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3. 행복의 비밀




제 생각에는요,
용기가 필요한 건
엄청난 위기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엄청난 위기에는
누구나 용기를 갖고 맞서잖아요.
하지만 사소한 위험 앞에서 웃을 수 있으려면,
영혼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르비스의 후원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 제루샤는 소설가를 꿈꾸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간다. '행복의 비밀'은 제루샤의 순수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넘버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두 주인공의 로맨스로 끝을 맺지만, 이 극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다루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성장' 이라는 키워드일 것이다. 제루샤는 제르비스의 후원을 받는 처지이지만 결코 수동적이거나 연약하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 다양한 학문과 예술을 탐구하고, 제르비스의 부당한 요구에는 반기를 들 줄도 아는 씩씩한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여성운동, 사회주의와 같은 사상을 탐구하며 성장하는 제루샤의 모습은 이 극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소설가의 꿈을 꾸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제루샤의 모습을 보며 영혼의 용기를 얻어갈 수 있다는 것.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가 여타 '신데렐라 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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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주인공이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을 만나 인생 역전과 사랑을 동시에 이뤄내는 로맨스물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소재 중 하나이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언뜻 보면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신데렐라 로맨스’의 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극은 키다리 아저씨만이 할 수 있는 성장과 교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로맨스라는 주제에 한정되지 않는 인간적인 결말을 이끌어낸다.

제루샤가 알려주는 행복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번 주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를 관람해 보는 것이 어떨까.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미지 출처
달 컴퍼니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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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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